미셀러니(신변잡기)

아... 네덜란드

홀쭉이 2013. 9. 15. 15:36

아...  네덜란드

 

2013.9.8

 

입사해보니 직원들이 네덜란드 바이어와의 거래에서 상당한 애로를 겪고 있었다.

대강 들어 보니 빙긋 웃음이 나왔다.

요모 조모 까다롭게 따지고 요구하고 소리 지르고...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가 말했단다.

"신은 만물을 창조했다.  네덜란드만 제외하고...

그 곳은 그들이 스스로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아마 만조시 국토의 1/3이 해수면 아래에 있어 해안가에 제방(dam)을 쌓아서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래서 해안가 지명 대부분이 담(dam)으로 끝난다.

수도인 암스테르, 제2의 항구도시 로테르, 불렌, 등등...

네덜란드의 상징인 풍차도 해안가에 늘어서 있다.

풍차를 돌려 제방 밖으로 물을 빼내기 위해서다.

둑에서 물이 세는 것을 팔뚝으로 막았다는 소년의 동화도 있다.

 

 

국명(國名)에서도 그런 특징이 그대로 나타난다.

'Netherlands'에서 'Nether'는 '낮은'이란 뜻이고 한마디로 '저지대'다.

하여 인접한 벨기에나 독일과의 국경에서 네덜란드로 들어오는 입구에는

'Welcome to Lowland' 혹은 'Wetland'라고 쓰인 표지판이 있다.

 

하여 스위스 알프스에서 시작하는 라인강도

프랑스에서 시작하여 벨기에를 거쳐 라인강과 합쳐지는 마쓰강(Mars)도

네덜란드로 흘러와 로테르담을 거쳐 대서양으로 들어간다.

 

그런 척박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네덜란드는 유럽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고

세계에서도 다섯 번째 정도이다.

농업생산성은 세계제일로 높고 무역 규모는 세계 7위로 인구가 세 배로 많은

한국과 호각지세를 이루고 있다.

 

 

'더치페이', '양아치', '독종', '구두쇠', '저항적인', '민주적인', '영악한', '약삭빠른', '뻔뻔한'...

이런 것들이 내가 네덜란드 사람들에 대해 흔히 듣는 말이다.

 

나와 내 가족이 그곳에 여러 해를 살면서 네덜란드 말을 못해도 어려움은 없었다.

어른이나 애들 할 것없이 그곳 사람들 대부분이 영어를 아주 유창하게 구사하고

심지어 독일어 까지도 거의 기본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02년 4강 신화의 주역인 '거스 히딩크' 감독도 영어와 독일어, 스페인어를 구사하여

유럽 전역을 돌아 다니며 감독직을 수행하는데 수월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암스테르담에 가면 은근 기대하는 것들이 있다.

합법적인 매춘가와 마리화나 구입이 그것이다.

그리고 암스테르담 중심가에 상업용 성(性)박물관이 있고 그곳엔 항상 관광객들로 붐빈다.

그외 입장객 모두 발가벗고 목욕하는 전라(全裸)사우나도 있고

지역 별로 약간의 변태스런 마사지 업소들도 있다.

 

 

 

 

유럽에서도 별종자로 통한다.

유럽 다른 곳에 비하면 다소 유별나다 할 정도로 돈을 밝힌다는 소리를 들을만 하다. 

도덕적으로 좀 그래도 남이 욕을 하거나 말거나 대놓고 그런 짓을 한다.

다른 사람들은 하여튼 네덜란드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거라고 비꼰다.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 네덜란드 번호판을 단 차가 지나가면 빈정대는 한 마디씩 던진다.

특히, 고속도로에서 네덜란드 사람이 캠핑카를 매달고 달리는 차를 보면

"저 구두쇠 놈들...  역시 네덜란드 넘들 어쩔 수 없어."

다른 나라에 놀러가면 그냥 그곳에서 돈도 좀 쓰지 저리도 구두쇠 티를 내고 다니냐는 뜻이다.

 

하지만 네덜란드의 근현대사를 찬찬히 살펴보면

한편으로 그들이 왜 그리도 좀스럽게 살아야 하는 지 이해는 된다.

중세까지는 유럽의 국경이 분명치 않았고 국가의 정체성이 분명치 않았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기독교가 지배하며 교황이 유럽 모든 나라 정세를 좌우지하던 시절 중세말 로마교황청은

네덜란드의 존재를 인정하며 규모가 비슷한 벨기에까지 통치하도록 했다.

그래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대륙에서 가장 먼저 산업이 융성하여  벨기에에서 네덜란드 해안으로

이어지는 플랑드르(플랜더스) 지방을 중심으로 번성과 풍요를 누렸다.

 

하지만 네덜란드 북쪽으로부터 종교개혁이 싺트고 교황청 지시를 거부하자 당시 남유럽의 맹주였던

스페인에게 네덜란드 통치를 명했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오렌지공을 중심으로 끈질기게 저항하여 스페인군을 물러나게 만들었다.  당시 얼마나 치열한 전투를 펼쳤던지 국민 반 이상이 죽고 오렌지공과 그의 가족 및 추종자 모두 교수형을 당해야만 했다.

(그 오렌지공을 기려 국가대표 유니폼이 오렌지색이고 우리는 '오렌지군단'이라고 부른다.) 

다행이 우기에 접어 들어 어슬어슬 추운 날씨와 그곳에 흔한 습지를 방패 삼아 게릴라 전을 벌여 물리칠 수 있었다 한다.

 

그 후 벨기에가 떨어져 나갔지만 영리하고 악착스런 근성으로 다시 번성했다.

하지만 자신들과 상관없는 이유로 유럽에 1, 2차 대전이 벌어지자 약소국으로서 어쩔 수 없이

전장터가 되었고 로테르담 같은 전략적 요충 항구를 뺏기 위해 초토화가 되었다.

또한 같은 게르만 민족으로 독일 편을 들지 않고 연합국 진영에 선 네덜란드를 괘씸하게 여긴

히틀러는 주요 도시는 모조리 맹폭하여 유럽에서 남겨진 옛유적이 가장 적은 나라로 만들었다.

전쟁 초기 승승장구했던 독일은 라인강 중하류 부근의 네덜란드 Arnhem을 통일유럽의 수도로 점찍고 전쟁사령부를 차리기도 했고 전쟁 말기에는 그곳 사수를 위해 연합군의 맹폭과 치열한 전투를 겪기도 했다. (그곳이 바로 영화 '멀고먼 다리-The Bridge Too Far'의 배경이 된 곳이다.)

 

 

 

 

 

 

이러니 기민하고 영악하지 않을 수 있겠는지.

살기 위해 주변국 눈치를 보고 돈을 벌기 위해 다소간 얼굴 뜨거운 짓도 마다하지 않는

그리고 남의 나라 말을 잘 해야 하고 그것도 여러 개씩이나...

작은 나라에 인구도 많다.

비슷한 면적의 벨기에 보다 밀도가 1.7배나 높다.

그래서 경쟁도 심하고 생산성도 뛰어나다.

작은 땅을 알뜰하게 가꾸어 농업생산성은 전세계에서 가장 높단다.

네덜란드의 대표적 놀이공원인 에프텔링은 규모로 따지면 파리 디즈니랜드 보다 훨씬

작지만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고 재미있게 운영하여 최고의 효율성을 자랑한다.

네덜란드는 모든 것이 국제적이다.

자기 나라가 작으니 처음부터 외국의 수요를 계산하고 진출할 것을 염두에 둔다.

지방의 작은 도시나 마을의 기업도 외국에 대한 견문이 넓고 지사를 두고 거래를 하는 편이다.  

 

하여 노무현 대통령 시절 '강소대국(强小大國)의 모델을 네덜란드로 지목하여

벤치마킹을 하려했던 적이 있었다.

한편 네덜란드가 주변국으로부터 약간의 비아냥거림을 받고 너무 철저하여 인간미가 떨어진다는 것을 알았다면 과연 그 나라를 따라 갈 필요가 있겠는지 하는 면에서 그러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다행스럽다.    

 

아무튼 이웃 강대국과 전세계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 남기 위해 악전고투를 하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려 했던 그들에게 박수와 함께 동정을 해주고 싶다.

우리도 그들과 처한 형편이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눈치 빠르고 영악한 그들을 그냥 미워할 수 없고 측은지심의 눈빛으로

그리고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쓰다듬어 주고 싶다.  

 

K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