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셀러니(신변잡기)

유유상종(類類相從)

홀쭉이 2013. 12. 1. 07:40

유유상종(類類相從)

 

2013.12.01

 

유유상종(類類相從)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말이다. 

별로 의미없이 써왔던 말이였다.

 

지천명(知天命)에 이르러 문득 이 말은 얼마나 무섭도록 섬뜩한지

 

주변을 둘러보았다.

 

년말이 다가와 망년회를 해도 직장에서는

직원은 직원끼리 임원들은 임원끼리 회식을 한다.

잠시 있어 본 공무원 사회는 더 심했다.

서로 자리를 바꾸어 함께 하면 어색하고 불편하다.

애써 태연한 척 할라해도 눈치가 보이고 심지어 등떠밀려 반강제로 자리를 비켜야 한다.

 

어릴적 발가벗고 같이 놀았던 죽마고우들이나 동창회에서도 그렇다.

처음 만난 얼마간은 어린 시절 추억으로 서로의 신분을 잊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의 사는 처지를 얘기하면서부터 거리감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거기서 조금 더 오래되면 불편해진다.

 

동네 배드민턴 체육관에서도 그렇다.

고수와 하수의 신분 차이는 뚜렸하다.

고수의 코트는 엄연히 구분되어 있다.

누가 고수 전용 코트라고 선을 그은 곳은 없다.

하지만 그 코트는 감히 하수가 들어가서는 안될 지엄...  혹은 신성...

뭣 모르는 체육관 초보가 그런 사정을 모르고 한참 땀을 흘리며 코트를 누비면

참다못한 고수, 혹은 아니 다른 하수가 와서 젊잖게 경고를 한다.

어쩌다 코트에서 실랑이가 벌어지곤 하지만 다녀본 여느 체육관 모두에서 그런 구분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고수전용'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는 곳은 보지 못했다.

결국 비슷한 수준끼리 게임을 하며 운동을 한다.

 

스포츠에서 어디 배드민턴만 그런가

축구에서도 좀 잘한다는 애들은 최전방 공격수로 공을 제일 많이 만지고 골게터로서 영광을 누린다. 

수비수가 드리볼을 할라치면 핀잔을 받기 일쑤다.

배구에서도 공격수가 득점을 하도록 밥상을 챙겨준다.

기분나쁘게 테이블세터라는 말까지 있다

한마디로 밥상을 받는 놈과 차려주는 놈이 따로 있다는 거다.

어디 야구는 안 그런가

같은 팀이지만 그들 사이 선수 대우 즉, 복리후생과 수입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여기서 누군가는 '포지션' 즉, 역활론을 들먹이겠지만 궁색한 변명이다.

  

 

돌이켜 보니 어린 시절 학교에서도 그랬다.

공부 잘하는 범생들은 범생끼리 중간치들끼리 찌질이들끼리

그리고 좀 논다는 일진들은 일진끼리

 

어린애들끼리 중년들끼리 아줌마들끼리

나이들어서는 노인들끼리 노인정과 파고다 공원에서 웅성거린다.

 

심지어 한 뱃속에서 나온 형제 사이에서도 그런 어색함이 있다.

부모 슬하를 떠나 분가하여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아가면서 쌓은 것으로

형제 간의 위계 보다는 새로운 신분으로 다시 만난다.

 

어릴적 유유상종이란 말은 동물의 생태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알았다.

자연 생태계의

하늘에서 기러기는 기러기끼리 두루미끼리 참새끼리

뭍에서는 소는 소끼리 말끼리 노루끼리 사자끼리 뱀끼리

물에서도 악어는 악어끼리 꽁치끼리 오징어끼리 전어끼리 무리를 짓는다.

 

인간사회에서는 그런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것을 무색하게 하는

온갖 형이상학적인 언어와 철학과 제도가 있지만

유유상종 그것은 인간사회에서도 통하는 그것은... 엄연한 질서였다.

 

그리고 왜 나는 인제서야 그걸 깨닫고 몸서리를 치는지

 

끌고가지 않으면 끌려가야 하고 지배하지 않으면 지배당해야 하는

아주 단순하고 분명한 현상과 논리...

그것을 벗어나는 것은 죽음 밖에 없다는 사실도

그래서 인간의 삶이나 모든 생명체의 본질은 '혼돈'인 것이다

그 양자가 대립하며 순서 바꿈을 하면서 일어나는 갈등

 

다시 한번 '인간사회에서의 자연의 법칙'을 통감하며 깨달음의 깊이를 한탄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오늘도 절박한 그 화두를 놓을 수 없다.

 

KW(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