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셀러니(신변잡기)

거세의 비애

홀쭉이 2014. 9. 10. 14:26

거세의 비애

2014.9.10

 

우리 동네 아파트의 명물은 메타세콰이어.

건축한지 30년이 되어가니 당시 심었던 어린 나무가

5층 높이로 자라 올랐다.

 

부피 자람으로 굵어져 어른 한아름이 넘어 고목의 풍치를 지니게 되었다.

키가 큰 반면 잎이 짙지 않아 아래 풀나무와도 상생하는 편

겨울에는 가는 잎조차 낙엽이 되어 앙상한 가지로 해를 가리지도 않았다.

 

 

 

멀리서도 우뚝 선 이등변 삼각형

그 탁월한 균형 감각은 들쭉 날쭉한 우리 토종에게서는 볼 수 없는 이국적 매력

나무 아래 우락부락한 줄기와 뿌리부를 보고 있노라면 원시적인 느낌이 자연스럽다.

 

그런 나무가 잘렸다.

가지를 자른 것이 아니라 맨 위 자람부를 잘라 버렸다.

그 이유가 기가 막힌다.

너무 잘 자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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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람부가 잘리니 잘 자라던 나무가 생존본능을 발휘했다.

평소 아래가 깨끗했던 나무가 솔방울같은 열매를 무수히 맺고 떨어뜨려 씨를 뿌렸다.

그리고 몇 번의 비를 맞고 그 씨는 싻을 튀웠다.

나무 아래에 온통 자신의 분신을 피워 놓았다.

아...   이 얼마나 거룩한 본능이고 순환인지

 

 

 

 

 

 

 

내 소원이 하나 있다.

인제 인생 2막이 서서히 저물어 3막을 준비하는 이 때

내 전원생활 내 영토에서 자라는 나무는 자르지 않고 키우는 것이다.

내 정원의 어느 한 켠에서는 정글처럼

아무도 손대지 않은 원시같은 우거짐이 있으면 좋겠다.

 

자그만 연못에서도 그렇다.

처음에는 미꾸라지도 물고기도 넣겠지만 그냥 두고 물만 흘리겠다.

그 속엔 고동도 온갖 물고기도 물뱀도 물새도 있으면 좋겠다.

 

K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