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세의 비애
거세의 비애
2014.9.10
우리 동네 아파트의 명물은 메타세콰이어.
건축한지 30년이 되어가니 당시 심었던 어린 나무가
5층 높이로 자라 올랐다.
부피 자람으로 굵어져 어른 한아름이 넘어 고목의 풍치를 지니게 되었다.
키가 큰 반면 잎이 짙지 않아 아래 풀나무와도 상생하는 편
겨울에는 가는 잎조차 낙엽이 되어 앙상한 가지로 해를 가리지도 않았다.
멀리서도 우뚝 선 이등변 삼각형
그 탁월한 균형 감각은 들쭉 날쭉한 우리 토종에게서는 볼 수 없는 이국적 매력
나무 아래 우락부락한 줄기와 뿌리부를 보고 있노라면 원시적인 느낌이 자연스럽다.
그런 나무가 잘렸다.
가지를 자른 것이 아니라 맨 위 자람부를 잘라 버렸다.
그 이유가 기가 막힌다.
너무 잘 자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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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람부가 잘리니 잘 자라던 나무가 생존본능을 발휘했다.
평소 아래가 깨끗했던 나무가 솔방울같은 열매를 무수히 맺고 떨어뜨려 씨를 뿌렸다.
그리고 몇 번의 비를 맞고 그 씨는 싻을 튀웠다.
나무 아래에 온통 자신의 분신을 피워 놓았다.
아... 이 얼마나 거룩한 본능이고 순환인지
내 소원이 하나 있다.
인제 인생 2막이 서서히 저물어 3막을 준비하는 이 때
내 전원생활 내 영토에서 자라는 나무는 자르지 않고 키우는 것이다.
내 정원의 어느 한 켠에서는 정글처럼
아무도 손대지 않은 원시같은 우거짐이 있으면 좋겠다.
자그만 연못에서도 그렇다.
처음에는 미꾸라지도 물고기도 넣겠지만 그냥 두고 물만 흘리겠다.
그 속엔 고동도 온갖 물고기도 물뱀도 물새도 있으면 좋겠다.
K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