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셀러니(신변잡기)

전원일기(3)

홀쭉이 2016. 4. 10. 17:13

전원일기(3)

2016.4.10(일)

 

지난 일년 이상 회사에서 이런 저런 곤욕을 치르며

버티니 동료들이 위로인지 동정인지 맷집이 좋다는 말을 건넨다.

돌아서 더 서글픈 멘트다.

최근 얼마간 잠잠하니 맨날 꾸중듣고 매맞는 아이가 불안에 떨듯이 주말이 좌불안석이다.

 

요즘 매일 야근과 주말 출근을 하는 딸애가 그나마 위안이다.

오늘 아침엔 제딴에 그간 얼마나 쌓였는지 음악 볼륨을 한껏 높이고 광란의 막춤을 춰댔다.

그것도 잠시... 지쳐 소파에 늘어졌다가 제 엄마를 졸라 머리를 하러 나갔다.

그리고 오늘은 출근하지 않겠단다.

 

우린 그렇게 미쳐가고 또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  "그 또한 지나갈 것이다."를 되뇌이며

그리고

내겐 전원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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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토의 홈커밍데이

(2025년 4월 말)

 

오늘은 PTC 시니어들을 초대하는 'Home Coming Day'이다.

 

인제 부산에서 PTC 선후배로 만난지 40년이 넘었고

서울에서 아름아름으로 만난지 20년이 훌쩍 지났다.

 

그리고 은퇴하고 도시를 빠져 나온지도 3년이 지나자

우리의 보금자리도 자리를 잡아간다.

처음 집을 지을 때 낯설은 주위 환경과 이웃도 익숙해져 가고

우리가 애써 가꾼 정원에 꽃과 나무가 제법 윤기가 돌고

텃밭의 채소들도 싱싱하게 잘 자라 주어 우리의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가끔씩 우리가 기른 싱싱한 과일과 야채들을 도시에 사는 가족들과 선후배에게 보내서

우리의 존재를 알리곤 한다.

몇몇 선후배들과 친구들은 우리 사는 모습을 보러 오기도 하고 전화로 물어 보기도 하고

인터넷 상에 청파토 카페도 운영하며 이런 저런 전원속의 일상사를 전하기도 한다.

 

3월 말부터 그간 우리가 산에서 구한 봄꽃과 시골장에서 사온 여러 꽃들이

정원과 집 주변으로 피기 시작하자 욕심이 생겼다.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말이 나왔고 자연스레 의견이 일치했다.

D-Day는 봄꽃이 절정에 달하고 도시 사람들의 바쁜 날자를 피해서 4월 말로 잡았다.

 

고놈의 학번 타령...

학번대로 명단을 작성하고 전화를 돌리고 4월초에는 초대장을 만들어 보냈다.

모두 이십여명은 오겠단다.

거기다 우리 자식들 가족까지 포함하니 어림잡아도 삼십명이 훌쩍 넘겠다.

 

우리도 나이가 있으니 아무래도 삼십여명은 무리라 싶어

도시에서 대학생 알바 다섯 명과 캔틴 아줌마 두명을 구해서 행사를 치르기로 했다.

알바생 중 세명은 토끼로 하고... ㅋㅋㅋ...

일체감 조성을 위해 우리 다섯 명과 알바생, 캔틴 아줌마들에게도

초록색 티셔츠를 입히고 야구모자를 쒸워 손님을 맞기로 했다.

우리가 가진 차량 3대 외에도 9인승 봉고를 하나 빌려 읍내에서 집으로 방문객들을 실어 나르기로 했다.

 

음식은 사흘 전부터 판용 마스터 쉐프의 지휘하에 동네 아줌마들의 도움과

외부 캔틴 아줌마 2명의 도움을 받아 푸짐하게 장만했다.

마실 술은 우리가 혜경(85)에게 전수받아 직접 담근 막걸리로 하기로 했다.

행사 2주전에 무려 다섯 말이나 담가 여러 개의 통에 나누어 담아 두었다.

지금쯤은 잘 익어 술이 달디 달 것이다.

 

행사 시작이 오후 5시부터이니 아침부터 마지막 점검을 하기로 했다.

각자 맡은 보직대로

판용이는 캔틴 아줌마들과 음식 일체를 챙기고

영식이는 정원과 집 주변의 꽃과 나무를 다듬고 물도 주고

양규는 행사진행과 방문객 연락과 수송을 책임지고

기웅이는 스크린에 예전 학창시절 찍었던 사진과 동영상들을 보여줄 장비와

들려줄 음악 그리고 행사 중 찍을 카메라를 챙기고

얄이는 이리 저리 어슬렁 거리며 전반적인 점검을 하며

마당과 뒷뜰 청소도 하고 저녁 9시까지 1부 행사를 하고

밤이 깊어 날이 싸늘해지면 거실과 방에 들어가서

2부 행사 준비를 하기로 했다.

 

아침 일찍부터 각자 분주히 점검하고 다듬느라 시간이 후딱 지나

점심 때가 되어서야 제법 잔치집 분위기가 나는 것같다.

평상에 쭉 둘러 앉아 대강 국밥으로 점심을 떼운다.

모두들 차례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 입는다.

알바생들은 초록색 티셔츠를 그대로 입히고 우리는 깔끔한 연미복으로 갈아 입는다.

 

오후 3시가 되자 부산에서 온 선배들이 읍내에 도착했다고 연락이 온다.

양규가 황급히 9인승 봉고를 몰고 나가고

우리는 뒷뜰 잔디 위에 테이블과 의자를 군데 군데 갖다놓고

바닥에 둘러 앉을 사람들을 위해 자리를 깐다.

 

음식과 마실 것들을 길다란 탁자 위에 늘어 놓고 캔틴 도우미를 배치시킨다.

사람들이 모두 도착할 때까지는 과일이나 가볍게 술을 한잔씩하고

해가 어느 정도 기울면 행사시작과 함께 본격적인 식사를 할 셈이다.

 

알바생과 켄틴 도우미에게 행사 중 해야할 일에 대해

다시 한번 설명하고 정위치를 세웠다.

 

기웅이는 정원과 뒷뜰에 설치한 스피커로 밝고 경쾌한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을 켜고 분위기를 한껏 띄운다.

 

우리는 마지막 점검을 위해 같이 걸으며 앞 정원의 꽃나무들을 지나 뒷뜰의 잔디도 다시 한번 다듬는다.

그리고 우리가 가꾼 텃밭의 여러 야채들도 눈인사를 하고 한쪽에 쌓아둔 농기구들을

창고에 넣어 놓고는 깔끔하게 마무리한다.

 

텃밭 가장자리에는 작년부터 삭힌 거름더미가 단정하게 삼각산을 이루고

그 위에 한 무리의 참새 떼가 앉아 재잘대며 우리가 지나는 줄도 모르고 먹이를 줍고 있다.

다시 앞마당 쪽으로 지나가려는데 작년 가을에 파놓은 작은 연못에 고기 한마리가 펄쩍 뛴다.

군데 군데 개구리와 도룡뇽 알집이 연잎 줄기와 노랑창포 아래에 걸려있다.

이른 놈들은 꼬리를 달고 고기와 함께 헤엄을 치며 다닌다.

옅게 흘린 물은 그 아래 야채밭으로 흘러 적시고 있다.

 

앞 정원에는 과실수가 유난히 화려하고 향기가 진하다.

배꽃과 사과꽃이 창백하도록 눈부시고 복숭아는 진분홍의 색기가 섬찟하도록 도발적이다.

이미 목련과 매화도 지고 진달래도 졌지만 늦은 벚꽃은 절정으로 하얀꽃을 날리며 떨어진다.

시골의 청명한 바람에 라일락은 사람의 혼을 빼놓을 정도로 진하다.

작약과 모란은 피기 직전으로 꽃망울이 주먹만하다.

그간 영식이가 정성들여 심고 가꾼 야생화들도 우리 발아래서 자신들을 봐달라고 고개를 쳐들고 있다.

하얀 쌀밥을 쏟아 부운 것처럼, 싸락눈이 내린 것처럼 빽빽하게 화려한 무리를 이룬다.

 

행사장소인 뒷뜰 잔디밭으로 가는데 양규 전화가 온다.

곧 1진을 태운 차가 도착한단다.

우리는 황급히 문앞으로 달려나가 도열을 한다.

 

저기서 먼지를 날리며 양규가 모는 차가 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이윽고 차가 부드럽게 우리 앞에 서고 차문이 열린다.

 

드디어 청파토의 잔치는 시작된다.

 

KW(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