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 묵고 산다
2011.12.2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시골에는 대게 씨족 집성촌이였다.
하여 내고향에도 종씨들 몇 가구가 옹기종기 한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아직도 조상님들을 모신 선산이 거기에 있고 명절이 되면 일가 친척들은 꼬박 꼬박 모여 성묘를 한다.
거기에 재종형님 한분이 고향을 지키고 계시니 여간 큰 의지가 아닐 수 없다.
그 형님네는 모두 9남매의 장남으로 부모님 모두 세상을 떠났지만 대가족의 좌장역활을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출가한 모든 일가친척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 형님이 곧 우리 고향을 대변하는 격이다.
몇 년 전 추석에 성묘를 가서 그 형님을 만났더니 산돼지가 밭으로 내려와 피해가 크다고 불평이 심했다.
하여 밭 근처에 개를 묶어 놓기도 하고 철조망도 쳐 보았지만 별 효험이 없는지라 나중엔
동물원에서 일하는 조카에게 호랑이 똥을 구해다 밭 근처에 흩어 두기도 했단다.
처음 얼마간은 산돼지가 얼씬도 안해서 편했는데 몇 달이 지나자 산돼지가 호랑이 똥을 차고 다니더라는 것이다.
다시 몇해 후 추석에 고향으로 가서 형님네를 들러 인사 삼아 산돼지 피해가 어떠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형님은 의외로 껄껄 웃으며 얘기했다.
"뭐 갈라 묵고 사는 기지 뭐!"
"우짤끼고? 나도 살아야 하지만 지도 살아야 할꺼 아이가?.."
"요즘은 속 편하게 지 반 묵고 내 반 묵는다."
혹시나 해서 쭈뼛 쭈뼛 물어봤던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나도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형님. 잘 됐네예. 우리가 살몬 울매나 살끼라꼬... 막걸리 한잔 주이소"
이래서 고향이 넉넉한 것이다.
k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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