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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또한 지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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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셀러니(신변잡기)

전원일기(1)

by 홀쭉이 2016. 1. 10.

2016.1.10(일)

이른 새벽 아침

아직도 바깥은 춥고 어둡다.

어제 토요일 반나절 이상을 작업했는데도 불만스러웠는지

기획담당 임원은 퇴근 후에도 계속 전화질을 해대며

월요일 아침에 발표할 자료에 보완을 요청하는 바람에 어제 밤 잠자리가 편치 않았다.

급기야 뭔가에 심하게 쫒기는 악몽을 꾸며 새벽에 잠이 깨고 말았다.

온 몸이 뻐근하고 꿈속에서 이리 저리 도망다니느라 힘을 쓰는 바람에

다리에 알통이 뭉치고 쥐가 나려는 듯 통증이 온다.

어깨는 시린듯 아리고...

 

와이프도 내 코고는 소리 땜에 같이 못자겠다고 거실바닥에서 자니

혼자 일어난 침대 옆이 허전하고 썰렁하다.

아직 불을 켜지 않아 어두운 방...   침대에 우두커니 누워...

월급쟁이 끝무렵에 나와 처지가 비슷하게 피눈물 나게 버티고 있는 우리 아름아름 칭구들의 얼굴을

하나 하나 떠올리며 그들에게 빙긋 웃음을 선사할 스토리를 구상하고 침대를 박차고 나와 책상에 앉았다.

 

아 참!!!  그래도 커피 정도는 같이 해야지.

부엌으로 나가니 모두들 자는 소리가 아직도 새근 새근 들렸다.

 

전원일기(1)

[부제 : 청파토피아(일명 CTC)의 어느 하루]

 

등장 인물

 

 

2024년 4월 3일 오전 9시

 

영식이는 아침부터 부지런을 피운다.

제일 먼저 일어난 영식이는 산에 갈 때마다 들고 다니는 콤팩트 야생화 식물도감을 뒤져서 몇 개 페이지에

빨간 색연필로 칠을 해놓고 아침밥을 먹기가 바쁘게 보챈다.

얄이는 아직도 씻지 않은 채로 보채는 영식이 땜에 억지로 아침을 어기적 어기적 따라 먹고

숭늉 달라고 억지를 부린다.  숭늉을 안 마시면 식사를 제대로 한 것이 아니라면서. 

 

열받은 영식이가 쏘아 부쳤다.

"니가 갖다 무라.  여기가 지금 오데라꼬 누구보고 시킬라 하노"

 

눈을 껌뻑이던 판용이가 일어나 큰 대접에 숭늉을 떠와 모두들 나눠 마셨다.

"꺼~~~~~~~~~억"

우렁찬 소리로 트림을 하는 얄이를 보니 인제 아침 식사는 제대로 된 셈이다.

오늘이 당번인 양규는 군소리 없이 상을 들고 나가 치우고 설겆이까지 후딱 해치웠다.

 

근데 양치하고 옷을 입으며 얄이는 또 시비를 건다.

모닝똥은 제대로 편하게 싸야 된다고

자기는 먹는 것 만큼이나 싸는 것을 큰 낙(樂)으로 여긴다고 또 개똥철학을 늘어 놓는다.

 

오늘 산에서 야생화를 찍을 장비를 챙기던 기웅이가 보다 못해 한마디 쏘아 부쳤다.

"그럼 이층에 가서 싸라.  괜히 바쁜 아래층 화장실에서 냄새 피우지 말고"

 

그러자 얄이는 계단을 쿵쿵거리고 올라가며 군지렁댄다.

"은퇴해갖고 좀 편하게 쉬면 됐지 뭐 할라꼬 힘들게 돌아 댕겨야 되는데...."

 

이때 영식이가 한마디로 못을 박는다.

"딱 오분이다잉...   오분 지나면 놔주고 그냥 간다잉"

 

판용이가 어제 준비한 음식물과 야외용 불판, 버너, 코펠 등을 구겨넣은 룩쌕이 불룩하다. 

판용이는 지고 다니기 무거운 것보다 먹을 것을 잔뜩 가져가 요리솜씨를 뽐내는 것이 야외행의 주목적인 것 같다.

처음에 우리는 판용이의 요리솜씨에 탄복을 하며 청파토의 보배로 생각했다.

그런데 맨날 먹으니 우리가 마루타가 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얄이는 툭하면 오늘 점심은 읍내로 나가 짜장면을 먹자고 강짜를 부렸다.

우리는 가끔씩 못이기는 척하며 그러면서 판용이의 눈치를 살피며 읍내에서 짜장면을 먹었다.

우리는 안다.

읍내는 짜장면만 먹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치마구경을 할 수 있다는...   특히, 얄이에게는 (아직 쏴라인데!!!)

 

판용이는 아직 농촌(NC)의 감(感)이 좀 떨어지는 편이다.

물오른 영식이가 식물도감을 보지 않고서도 풀나무 이름을 대며 가르치는 것이 못마땅한지 근성으로 듣는다.

지난번에는 산행 내내 보이는 식물이름을 맞혀보라는 물음에 짜증이 나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식물 한 열개 정도만 알 면됐지 뭐 그리 많이 알 필요가 있노?!"

"개나리, 진달래, 산수유, 목련, 장미...."

"뭐 이정도만 알면 되지 머...... 우리가 식물학자될끼가?!"

 

양규는 오늘 당번인데도 벌써 부억을 정리하고 나와 옷을 단단이 차려입고 등산화 끈 묶고 판용이 짐까지

나눠 제 룩쌕에 담아 넣었다.

어제 저녁에 모두 드라마를 같이 보고 나서 양규는 인제 총무가 필요없겠다고 말했다.

뭐 시골에서 돈 쓸일이 별로 없다보니 돈 관리할 일이 없다고

하지만 우리가 백살까지 살게 되면 어찌 될지 모른다는 것과

해외여행을 대비해서 돈 관리 잘해야 된다고 무마를 시켰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기웅이가 웃으며 양규한테 소리낮춰 말했다.

"얄이 영감 즈거...  백살까지 살면 우리가 큰 일인데 그쟈?!")

 

(퍼온 사진)

 

모두들 마당에 나와 서 있는데 얄이는 약간 벌건 얼굴로 어기적 어기적 나왔다.

아직 등산복 지퍼도 열린 채로 그리고 등산화 끈도 묶지 않고서

모두들 쏘아 보는데 구부리고 앉아 등산화끈을 묶으며 또 한소리를 했다.

"오늘 프로야구 개막경기 시작전에는 반드시 들어와야 된다잉."

오늘 야생화 탐방 땜에 설레는 바람에 깜빡 잊고 있었던 야구 개막경기를 급기야 상기시키고 말았다.

하여튼 귀신이다.

모두들 내기가 걸린 경기인지라 동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

롯데  :  NC

  승부는 뻔한데 저리 억지를 부린다.

NC는 지난 3년을 내리 리그시즌과 코리안시리즈에서 우승을 했다.

그리고 지난 스토브리그에서 에릭 테임즈는 43살이 지났지만 재계약을 했고

메이져리그에서 명예의 전당에 오른 추신수와 이대호도 한국으로 돌아와 기웅이와 양규를 위해

마지막 야구인생을 NC에서 장식하겠다고 인터뷰를 했다.

그러면 혹시나 청파토에서 받아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를 갖고 말이다.

나나 양규는 좋을지 몰라도 다른 칭구들의 심기가 불편할 것 같아 그 생각을 접기로 했다.

 

인제 출발준비 완료

영식이는 마치 점호 하듯이 모두들 복장과 장비를 확인한 후에 앞장을 선다.

따뜻한 봄 햇살이 내리 쬐고 상큼한 공기는 어디선가 날라오는 꽃향기를 머금고 있고

코끝은 쨍하며 뻥 뚫려 있다.

새삼 청파토피아를 실감한다.

 

"Here is CTC."

"여기는 청파토피아"

 

KW

(오늘은 요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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