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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셀러니(신변잡기)

요즘은? (쥐구멍에 볕들 날)

by 홀쭉이 2011. 3. 13.

요즘은? (쥐구멍에 볕드는 날)

2011.3.13(일)

 

최근들어 웰빙(Well-Being)이 대세로 자리 잡고보니 뭘 해도 몸에 좋아야 인기가 있다.

그 몸에도 좋다는 걸 찾다보니 예전에 천대받던 것들이 새로이 각광을 받게 되었다.

특히, 음식에 그런 것이 많다.

 

우선 한국인의 주식으로 밥이 그렇다.

하얀 흰쌀밥에 목말라 했던 시절이 불과 십수년 전이였다.

내 부모님은 벽지의 산간마을에서 자라나 너른 들판이 없었고

산간 골짜기에 자그만 논을 개간하여 쌀농사를 지었단다.

 

해서 그곳마을에서 태어나 죽은 사람들은 일평생 쌀 몇말 정도

밖에 못먹고 죽어 한이 될거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근데 요즘은 흰쌀밥 보다는 보리밥이 몸에 좋다하고 또한 잡곡을

일부러 섞어 먹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 천대받던 보리쌀과 잡곡류(조, 귀리, 수수, 콩,

기장)가 쌀보다 귀하고 비싸졌다.

 

 

 

특히, 수산물이 그렇다.

명태는 동해를 비롯한 우리나라 전해역에서 흔히 잡히고 싸게 먹는 고기였다.

엄마가 시장에서 장사를 오랫동안 하여 시장을 자주 자녔는데 어시장은 내게 아주

재미있고 신비한 일종의 수족관(Aquarium) 이였다.

 

당시 어시장에는 도미, 조기, 대구, 농어 

등이 값이 나가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고

명태나 고등어 등은 언제나 한쪽 귀퉁이

에서 상자째로 거래가 되고 있었다.

하여 지금 귀한 대접을 받는 명태는 당시는

그야말로 서민의 대표 어종이였다.

 

하물며 전어나 아귀, 물메기, 복어, 가오리, 멸치, 정어리, 장어, 숭어 등은 워낙 값이

없어 팔다 남으면 버리거나 시장 장꾼들

술국을 하라고 주던지 아니면 파장을 하고

썰렁해진 장판에서 거지들이 깡통에 담아가 잡탕으로 '꿀꿀이죽'을 끓이는데 넣어

먹었다.  엄마가 시장에서 장사를 했으니 그런 고기들을 돈주고 사먹은 적은 별로 없는 것같다.

 

우리 아래집 아주머니가 어시장에서 고기장사를 해서 그집에는 팔다 남은 고기를 말리느라

마당의 빨래줄에는 항상 명태를 비롯한 물고기의 시체가 아가리를 빨래집게에 꿰여 걸려있었다. 

그만큼 그런 고기들이 흔하고 대접을 못받던 시절이었다.

팔순을 바라보는 부모님과 유명하다는 복집이나 아귀찜 식당에서 주문해서 먹을라치면

엄마는 그 가격을 보고 "예전에 이런 것들은 어시장에서 그냥 줏어먹던 고기들인데..." 하며 씁쓸해 한다.

 

 

호남출신의 사촌형수는 잔치상에 늘 잘 삭인 홍어를 내놓았다.

근데 형수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홍어무침을 내놓으면서 자기 고향생각으로 씁쓸한 말을 했다.

그곳 호남의 바닷가 어부들이 바다에 나가 고기잡이를 해오면 배를 뻘 밖에 묶어놓고 잡은

고기를 이고 지고 집으로 가져다 날랐다.

 

무겁기는 무겁고 발은 뻘에 푹푹 빠져 발걸음을 옮기기가 힘들어

천근 만근이였다.  물은 점점 차올라오고 급한 김에 돈이 되는 조기나

대구같은 놈은 가려 담고 무겁고 돈이 안되는 가오리나 메기, 홍어 등은

버리기는 아깝고 해서 뻘을 파서 묻고 그위에 꼬챙이를 꽂아 표시를 

해두었다 한다.   

나중에 다시 물이 빠져 쓸려갔으면 어쩔 수 없고 혹시, 안쓸려 남아있으면

반쯤 상한 냄새나는 홍어를 가져와 마굿간 거름 무데기 옆에 쏟아붓고

왕겨로 덮어 놨단다.  그렇게 두면 대체 똥거름인지 먹는 음식인지 구분이

안됐단다.  형수는 혀를 끌끌찬다.  "요즘이니까 저런 게 음식대접 받지

예전같으면 그곳  바닷가 사람들이나 먹지.  세상 참..." 

 

 

 

포항근처 바닷가에서 많이 나는 과메기도 그렇다.

그곳에서는 겨울에 청어가 워낙 많이 잡히기도 하고

별로 돈이 되는 고기가 아니니 잡은 고기를 버릴 수는 없고

대충 던져 놓아 바닷바람으로 반건조된 청어가 딱히 맛은

없어도 비릿한 냄새를 가리려고 초고추장에 덤뿍 찍어

먹었다 한다.  없는 살림에 밥 반찬쯤은 할 수 있겠다

싶었을 것이다. 그런 것이 인제 겨울철 별미로 전국의

식당에서 손님을 부른다.

 

 

민물고기도 마찬가지다.

잉어 외 대접받는 고기도 없었고 잘 먹지도 않았다.

 

저수지나 강에 나가 낚시로 잉어나 한마리 잡으면

쳐다봐도 붕어나 메기를 잡으면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한마디로 잡어였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게 천대받던 고기들이 대접을 받는다.

붕어찜, 메기매운탕, 추어탕 등. 

그중 자연산 민물장어는 귀하다 못해 거의 양식이다. 

한여름 장마철에 바다에서 올라오는 민물장어 몇마리만

잡아도 월급쟁이 한달치 봉급수준이란다. 

 

 

생선회가 대중음식화 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같다.

주로 부산을 비롯한 남도사람들이 생선회를 많이 먹었는데 수송과 보존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서울을 비롯한 내륙지방에서도 대중음식화 되었다.  하여 부산이나

바닷가 사람들이 딱히 생선회를 더 많이 먹는다는 말을 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어린 시절 내가 남도에 살 적에는 숭어나 방어(히라쓰?), 복어 같은 고기는

회로 먹을 수 없는 고기로 치부됐다.

하여 낚시를 해서 잡아올리면 손맛으로 만족하고 잡은 고기는 방파제에

아무렇게 던져두거나 버리는 고기였다.

나중에 잡으려는 고기를 별로 잡지 못하면 멋적게 반쯤 마른 그놈들을 걷어가고

그렇지 않으면 동네 고양이나 갈매기들 먹으라고 버리는 것들이였다. 

 

근데 얼마전 서울시내를 다녀보니 횟집에 숭어나 방어회를 팔고 있었고 광어나

돔에 비해 가격도 큰 차이가 없었다.

속으로 나는 "저런 걸 비싼 돈 주고 사먹다니..." 혀를 끌끌 찼다.

 

벌써 20년이 거의 다 되어가는 기억이다.

결혼을 해서 만삭이 된 wife를 데리고 대학로에 가서 모처럼 문화생활을 해본답시고 나갔다 거리에 즐비한 포장마차에서 요기를 하러 들어갔다.

 

저녁시간이 임박하여 손님들이 많았다. 

포차 안 가운데 홍합을 잔뜩 담은 솥에서 김이 설설나며 구미를 당겼다.  하여 나는 대수롭지 않게 천원어치의 홍합과 소주 한병을 주문했다.

근데 포차주인은 내 주문을 들은 척 만 척 다른 손님 주문을 받고 조리를 하고 있었다.  오래 기다리다 슬그머니 화가나 다시 한번 홍합 천원어치와 소주를 외쳤다.  근데 뚱한 표정의 포차주인은 홍합은 삼천어치 이상만 판다고 하며 또 다시 다른 손님응대만 하며 딴전을 피웠다.  거기 많은 손님과 wife 앞에서 얼마나 무안했던지...  하여 빨리 홍합탕 삼천원어치를 시켜 대충 먹고 황급히 빠져나왔다.

 

당시 나는 부산에서는 홍합을 '담치'라 부르며 거의 거져주는 술국 정도라 생각해서

천원어치면 푸짐하겠거니 생각했던 것이다.  당시 부산이나 남쪽에서 홍합은 흔히 어시장에 가면 산더미같이 쌓아놓고 삽으로 퍼서 담아주거나 리어커에 싣고 다녔다.  그래서 부산에서는 포차나 술집에서 손님이 자리에 앉으면 그냥 서비스로 내주는 '술국' 정도였던 것같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데...  엄마가 반찬가게를 해서 도매시장에서 생미역을 가져올라

치면 20kg 한 마대에 보통은 1,700원 정도였다.

겨울에 날이 너무 추워 수송이 원활하지 못하면 2,200원 정도까지 오르면 비싸서 잘 사오지도 않았다.

근데 물이 질질 흐르는 20kg이나 나가는 생미역 포대를 메고 올라치면 정말 고역이였다.   

당시 버스기사나 안내양은 잘 실어주지도 않았다.

애써 가져온 생미역을 다 못팔면 말려서 건미역으로 먹기도 했었다. 

그만큼 지천으로 미역이 많았고 그래서 그 가치를 별로 몰랐던 시절이였다.

 

요즘 가을이 되면 제법 대접받는 전어도 그렇다.

서울사람들은 그런 고기가 있는줄도 몰랐다.

어린시절 더러 아버지는 반쯤 죽은 전어를 바께스로 싸게

사와 비늘을 벗기고 내장을 들어내 회를 떠서 우리를

멕이기도 했다. 

그래서 가난했던 시절 그런 고기쯤은 아랫집 고기장사

아줌마가 그저 주는 정도로 생각했다.

작년 가을 작은 형이 다니는 회사 사무실옆 세꼬시집에

가서 전어회 7만원어치를 시켰더니 푸성귀만 잔뜩 나오고

전어는 몇 입거리가 되지 않아 세상이 바뀐 것을 실감했다. 

우리 형제들은 가을철이 되면 전어회로 거의 밥을 대신해

먹은 그때를 떠올리며 씁쓸해졌다.

(이런 전어쯤은 볼이 터지도록 한입 가득 넣고 우적 우적

씹어먹었다.  그래야 제맛이였다.  왜?  밥처럼 먹는 고기라서..ㅋㅋ)

 

세상은 이렇게 끊임없이 변화하고 우리의 생각도 바꾸어 놓는다.

그래서 우리 속의 음지에 갖혀있던 것들이 하나씩 세상의 밝은 빛속으로 나오기도 한다.

 

K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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