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최동원...
2011.9.13(수)
추석후 출근하여 처음 접한 기사가 최동원 별세소식
몇 달전 대장암 투병 소식은 들었지만 그리 빨리 갈 줄은 몰랐다.
향년 53세.
한 후배가 말했다.
암은 말할 수 없는 한을 가진 사람이 걸리는 병이라고...
하여 마음 속의 친구를 키우게 되고 그를 벗어날 수 없을 때 그 친구와 함께 같이 저 세상으로 떠나는 것이라고...
그도 그랬을 것이다.
1984년 정점 이후 그렇게 살아왔을 것이다.
1984년은 내가 강원도 철원 FEBA(전투전단지역)에서 근무하던 시절.
일병 고참으로 소대(화기)에서는 식기조장으로 중대전체의 군기반장 역활을 하고 있었다.
당시 나 보다 입대일 기준으로 일주일 늦은 후임이 막먹으려 기어 오르자 중대 식기조가 모두 모인 자리에서 흠씬 두들겨 패서 굴복을 시킨 사건도 있어 기세가 등등했고 우리소대 식기조가 지나갈 때면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그만큼 나는 몸도 마음도 싱싱했고 건강했다.
군생활 내내 대학등록금을 내지 못해 휴학을 하고 군입대를 했다는 불만이 있어서 인지 군에서만은 내가 해보고 싶은 대로 객기를 부려보고 싶었다. 하여 밤에는 민통선안의 부대 위수령을 벗어나 부대 근처의 가게로 가서 술과 안주를 사오고 민간인 집으로 들어가 김치와 고추장을 훔쳐먹기도 했다. 가게는 산넘고 물건너(남대천) 2km가 넘게 떨어진 곳이였다.
그해 가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는 아직도 나를 짜릿하게 한 사건이였다.
우리 소대원 대부분은 당시 리그 우승팀인 삼성을 일방적으로 응원하는 가운데 나는 천신만고 끝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롯데를 응원했다.
한국시리즈 우승이 확정되던 그 날.
전투장으로 들어서는 긴장과 흥분이 소대분위기를 감싸고 모두 TV 앞으로 모여 들었다.
최동원으로 시작하여 최동원으로 끝난 명승부에서 나는 흥분하여 펄쩍 펄쩍 뛰며 소리를 질러댔고 삼성을 응원했던 고참들과 소대원들은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아니나 다를까 제대를 석달 앞둔 인천 출신의 왕고참은 일석점호 시간에 요즘 소대분위기가 느슨하고 군기가 빠졌다며 소대원 전원에게 얼차례를 시켰다. 그러면서 군기반장인 나를 불러 세워 몇 차례의 뺨을 갈겼다. 그 왕고참은 때리면서 점점 화가 치밀어 바깥으로 나를 끌고 나가 막사 뒤에서 제대로 때릴 기세를 취했다. 분위기를 보니 제법 크게 한 따까리를 하겠는지라 가만히 있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차례의 주먹이 배와 가슴으로 들어오자 오기가 생긴 나는 막사 옆에 세워놓은 철항을 뽑아들고 고참에게 휘둘렀다. 순간 죽여버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낌새를 눈치챈 고참은 줄행랑을 놓았다. 눈이 뒤집힌 내가 씩씩대며 철항을 들고 중대 여기 저기를 찾아 헤매자 고참은 점호가 끝나고 취침나팔소리가 지난지 한참이 지나서야 막사로 들어왔다. 몇 달 뒤 그 고참은 제대회식 자리에서 그날 벌어진 사건을 얘기하며 깜깜한 막사 뒤에서 살기에 찬 내 눈빛을 보고 순간 제대도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아무튼 그 사건에 최동원이 있었고 내 젊은 날의 한 페이지로 장식되어 있다.
그 이후 나는 최동원을 잊었고 그는 그렇게 한 맺힌 열정으로 살다 오늘에야 부고를 보냈다.
또 하나 익숙했던 그 이름과 그 사람이 떠났다.
그렇게 나도 우리도 떠나게 될 것이다.
사랑했던 사람이여 그 이름이여 안녕!
가을은 이별의 시작.
k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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