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존스와 나훈아
2013.9.22
1.
내가 대학 입학을 해서 가입한 동아리에는 유난히 골수분자가 많았다.
당시 많은 선후배들은 동아리 활동이 학창생활의 기억 중 대부분일 정도였다.
졸업해서도 동아리 선후배와 어울려 늙어가는 편...
신입 당시 키가 껑충 크고 안경을 쓴 이지적으로 생긴 신모 선배를 만났다.
공대를 다녔지만 영어도 꽤 잘하고 훤칠한 외모로 동아리 행사에서 사회도 곧 잘 보았다.
더러 포크기타를 치며 노래도 잘 했다.
하지만 동아리 활동은 취미 정도로 적당히 하며 뭔가 자신의 길을 찾아 열중인 것같았다.
그런 그가 언젠가 내게 관심을 보이며 미국의 팝가수 '톰 존스(Tom Jones)'를 닮았다고 말했다.
'톰 존스'야 내가 워낙 좋아하는 가수이니 기분 나쁠 이유가 없었는데 왜 그랬는지 의아스러웠다.
나중에 화보로 본 '톰 존스'는 나와는 전혀 달리 머리통이 크고 곱슬머리에 구렛나루가 짙고 야성미와
남성미가 넘치는 멋있는 중년 남자였다.
시간이 지나 곰곰이 비교해보니 그 선배가 '톰 존스'를 닮아 보였다.
그렇다면 그 선배가 '톰 존스'와 닮기를 원해서 남들이 그렇게 불러주기를 바랬는지도 모를 일이였다.
2.
중학교 시절 서양문물에 목이 말라 호기심이 많았던 시절 비교적 조숙했던 큰 형은
우리 집에 당시 유행하는 미국의 팝, 이태리 칸소네, 프랑스 샹송과 포크기타와
클래식기타 그리고 전축 같은 것들을 우리집에 들여 놓았다.
하여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고 '고고'춤을 추기도 하고 정확한 가사는 모른채 팝송도
대강 따라 불렀고 소풍이나 장기자랑 시간에는 팝송 한 두곡씩은 부르기도 했다.
그 중 조영남이 '물레방아 인생'으로 번역하여 부른 톰 존스의 'Proud Mary'도 있었고
'Sunday Morning', 'Keep on Running'이 고고춤을 추기에 가장 흥겨운 곡이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Go Go Hit Festival'이라는 제목의 LP 디스크의 해설에는 당시(1960년대)를 풍미한
대표적 미국가수는 '비틀즈' 말고도 '엘비스 프레슬리', '피터 프램튼', '톰 존스',와 '닐 다이아몬드'가
있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우리나라 가수 '남진'이 월남참전 후 '저 푸른 초원위에'를 부르며 창법과 춤을 따라 했고 서울대 성악과를 다닌 '조영남'이 '톰 존스' 노래를 번역하여 불러 소개가 되었다.
당시는 영어가사 내용을 잘 몰랐으니 그랬는데 톰 존스의 노래가사는 간단하면서도
대부분 통속적인 내용이 주류... 어찌보면 우리나라 트로트 곡들과 비슷한...
조영남은 타고난 끼와 자유분방함, 뻔뻔함, 반골기질이 있었지만 그 근본은 지성(Intelligence)에 있었다. 그런 그가 톰 존스 노래를 미성(美聲)으로 단아하게 불렀던 것은 톰존스의 특성을 잘못 전달한 것으로 생각된다. 의도적일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일반인 입장에서 오해하여 받아 들일 수 있도록 말이다.
한 마디로
톰 존스는 바리톤의 중저음으로 걸쭉한 '막걸리 타입'이고
조영남은 미성(美聲)의 테너로 '코냑 타입'이다.
톰존스의 전성기였던 1960년대말
비슷한 시기의 한국의 '나훈아'같은 남성적 외모와 무대매너 그리고 창법으로 노래했다.
열창 중 무대에서 웃통을 벗어 제키고 휘젖는 모습이나
저음과 고음을 왔다 갔다 하며 꺽어지는 창법
통속적인 가사
참으로 노래를 맛깔나게 하는 가수였다.
어떤 노래도 그가 부르면 꺽어지고 휘어져 그러면서 힘있고 박력있게
남자에게는 부러움과 여자들에게는 섹스 심볼로서...
3.
'Green Green Grass of Home' 일명 '고향의 푸른 잔디'
그리고 나훈아의 '고향역'
원래 '고향역'은 나훈아가 처음 부른 곡이 아니었는데 워낙 나훈아가 잘 불러
나훈아의 대표곡이 되었는데 나는 정말 놀랐다. 부산의 영도에서 태어나 자란 그가 어찌
시골 고향의 정서를 그렇게 구구절절 애절하고 맛깔나게 노래로 표현할 수 있었는지...
이 두곡의 정서는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둘 다 고향을 그리워 하며 꿈꾸는 노래인데
고향을 떠나 외지를 전전하다 금의환향하는 모습이다.
모두 고향역에서 내려 반가운 부모형제 그리고 첫 사랑의 예쁜 아가씨
(이쁜이, 꽃분이 그리고 Mary)가 있고 변치 않은 고향산천과 옛집이 나를 반긴다.
다만 '고향역'에서는 코스모스가 피어있고 톰존스 노래에는 푸른 잔디가 펼쳐져 있다.
Green Green Grass Of Home
The old home town looks the same
As I step down from the train
And there to meet me is
my mama and papa
기차에서 내려서
바라본 고향집은 그대로야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를 맞아주시지
Down the road
I look and there runs Mary
Hair of gold and lips like cherries
It's good to touch
the green green grass of home
길 아래로는 달려가는
금발에 체리같은 입술의
메리의 모습이 보여
고향의 푸른 잔디를
만져보니 정말 좋군
Yes, they'll all come to meet me
Arms a reaching, smiling sweetly
It's good to touch
the green green grass of home
팔을 벌리고, 환하게 웃으며
모두가 날 맞으러 나와 줄거야
고향의 푸른 잔디를
만져보니 정말 좋아
The old house is still standing
though the paint is cracked and dry
And there's that old oak tree
that I used to play on
페인트 칠이 말라 갈라지긴 했지만
그 옛집은 아직도 그대로 있고
내가 올라가 놀던
참나무도 그대로 있어
Down the lane
I walk with my sweet Mary
Hair of gold and lips like cherries
It's good to touch
the green green grass of home
오솔길을 따라 아래로
금발에 체리 같은 입술의
메리와 함께 걸었어
고향의 푸른 잔디를
만져보니 정말 좋군
Then I awake and look around me
At four grey walls that surround me
And I realize yes, I was onl y dreaming
그 때, 깨어나 주위를 둘러보니
난 사방에 회색빛 벽에 둘러싸여 있었어
내가 꿈을 꾸었다는걸 깨달았지
For there's a guard
And there's a sad old Padre
Arm in arm we'll walk at daybreak
Again I'll touch
the green green grass of home
왜냐하면 보초병과 슬픈 얼굴의
늙은 신부가 있었거든
날이 밝으면 팔짱을 끼고 걸어 나갈 테지
난 다시 고향의 푸른잔디를
느껴 볼 거야
Yes, they'll all come to see me
in the shade of that old oak tree
As they lay me beneath
the green green grass of home
그 오래된 참나무 그늘아래로
모두가 날 마중 나올거야
내가 고향의 푸른
잔디 아래 누울 때 말이야
고향역
둘 다 꿈 속에 그리는 고향이다.
사무치는 추억과 상상이다.
그러면서 멀어진 나의 고향역이다.
그립고 절실하면서도 갈 수 없는 그런 곳이다.
'Green Green Grass of Home'도 그렇다.
노래 중간 대사는 정신을 차려보니 꿈이었고 사방에는 회색빛 사방의 벽에 갖힌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날이 밝으면 자신을 사형대로 끌고 갈 것이고 마지막으로 고향에 다녀온 꿈을 꾸었다는 것을...
일명 '어느 사형수의 마지막 꿈'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u81CTfbc99c
4.
톰 존스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Delilah(딜라일라)'
변심한 애인 '딜라일라'에게 쳐들어가자 조롱하듯 비웃고 있는 그녀에게
홧김에 칼을 빼어들고 초라해진 자신에 부끄럽고 후회스러워 용서를 구하는 남자
조영남의 번역곡에서 그런 구애자의 참담한 모습을 보기는 어렵다.
http://www.youtube.com/watch?v=CQIK3Te9Coo
이렇듯 톰 존스의 대부분 노래에서는 자극적이며
통속적이고 속물적이다.
여자와 돈
흥청망청하고 출세지향적이고
촌놈의 출세기(American Dream)와 건달스런 사랑얘기
서양에서는 그들의 종주국인 유럽의 도전이었던 1,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동양에서는 신흥강국 일본의 도전을 물리치고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국이 되어 자신만만함과
넘치는 자유와 풍요가 이러한 문화의 대폭발로 나타났다.
소위 미국의 전성기 (1945~1970대)
전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미국으로 귀결되었다.
그 가운데 영국의 웨일즈 탄광부 출신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최고 인기가수 반열에 오른 톰 존스도 있었다.
그런 내게 진주 고속터미널에 들어온 고물 미제 '그레이 하운드'는
미국에 대한 동경이자 미래였다.
(아마도 동남아에서 가끔씩 보는 퇴역한 우리나라 시내버스 같은...)
이번 추석 연휴 첫날
부산으로 내려가는 차안에서 톰 존스의 '딜라일라'를 여러 번 들으며 노래가사를 익혔다.
wife와 애들은 지겨워 "아빠 그만 좀..." 해댔지만
내겐 명절에 형제들과 노래방에서 부를 신곡(新曲)으로 말이다.
1969년 전성기 시절 실황공연 모습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FMCFe2ByLE
http://www.youtube.com/watch?v=i7rVC-_xNng
KW
'문화.예술(영화·문학·음악·사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인호를 그리며... (0) | 2013.11.10 |
---|---|
비오는 가을날 김현식을 그리며... (0) | 2013.11.02 |
Radio Activity (0) | 2013.06.22 |
What a wonderful world!!! (0) | 2013.06.22 |
문재인이 영화 '광해'를 보고 울었던 까닭은? (0) | 2013.02.0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