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2016.1.24
지난 주 중국 심양에 출장다녀올때 조선족 출신 직원을 통역으로 데려갔다.
길림성 출신으로 나이는 36세
조선족 출신으로는 드물게 대학을 졸업하고 북경과 소주 같은 대도시에서 직장생활
지난 한국의 경제성장 그리고 뒤이어 중국의 고도성장의 수혜를 가장 많이 본 세대
오늘날 탄탄한 경제입지로 자랑스레 털어 놓는 본인의 성공 스토리
15년전 중국 동북3성에는 한국행 붐이 대단했고 초등 동창 23명 중 21명이 한국으로 떠났단다.
본인은 결혼한 누나 두명이 한국으로 떠나고 경기도 시화공단에서 자리를 잡자 부모님도 따라 갔단다.
가족과 친구들은 매번 한국행을 종용했지만 그는 중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대도시로 나와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렸다.
기족들과 친구들이 한국에서 돈을 버는 것에 자극을 받은 그는 한국에서 경제트랜드가
바뀌어 가는 것을 보고 중국에서 적용을 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계 기업에서 한국말을 하는 프리미움으로 과외수입을 올리고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를 했다.
대학을 졸업한지 12년
그는 중국에서도 살기 좋다는 고품격도시 소주에서 여러 채의 고급아파트와 승용차를
가지고 있고 꽤 많은 유가증권과 예금을 가진 중상류층이 되었다.
반면 한국에 간 동창들 반 수 이상이 실업상태로 돌아왔고 두 누나는 힘들게 살아가고
본국에서 번듯한 직장과 여러 채의 아파트를 가진 그를 가장 부러워 한단다.
개인적인 스토리이긴 하나 시사하는 바가 컸다.
본인이 어린 시절 길림성의 주요 도시(연길, 용정, 연변, 등)에는 조선족들이 많아
이른 바 '조선족 자치구'
어딜 가더라도 조선말이면 통하고 초중고와 대학교까지 조선말로 했단다.
그런데 조선족이 한국으로 떠난 그곳엔 한족들이 들어와 차지하고 조선족
인프라가 사라져 조선족 자치구가 무색해졌단다.
그간 한국에선 IMF 사태 이후 팍팍해진 경제여건으로 저임금 조선족이
살아가기가 훨씬 어려워졌다.
이제 그곳으로 돌아가려해도 한족들이 차지한 부동산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라
정착이 어렵게 됐단다. 사실 그것도 한국에서 많이 번 돈으로 스스로 올린 셈.
일제시절 경북의 한 고을에서 할아버지가 이주하여 개척한 그곳
적어도 먹고살 걱정은 없을 정도로 넉넉한 농토와 살림을 이룩하고는
한국의 경제성장의 기회를 찾아 피땀으로 개척한 그 땅을 버리고 와서
다시 빈 손이 되었단다.
그 직원의 얼굴과 귀를 유심히 보니
부자 관상이 보이는 듯 했지만
조선족의 땅이었던 그곳을 잃은 대다수 조선족의 울분과 비통함을 떠올리며 한숨이 나는 출장이었다.
빼앗긴 우리땅 '간도'가 점점 멀어져 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K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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