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기사와 대화
2017.3.18(토)
몇 년전에 갔다가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바람에 정상에 못가 본 화야산을 다녀와 새조개를 먹으러 가락동 수산시장을 찾았다. 술이 몇 순배 돌고 얼큰하게 취기가 올라 귀가를 위해 대리기사를 불렀다. 대리기사는 사십대 중반의 대구출신이었다. (나보다 꼭 열 살이 적은) 아직 초저녁이고 많이 취하지도 않아 귀가하는 동안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했다. 먼저 우리 둘 다 지방 출신으로 서로의 출신지의 입지가 예전만 못하다는 것에 공감을 했다. 모든 것이 서울과 수도권 중심이라 상대적으로 지방은 점점 쪼그라든다는 것이다. 역대 대통령을 가장 많이 배출한 대구조차도 이제 그런 프라이드를 지니고 살기 어렵다고 한다. 최근 대학서열이나 중견.대기업들, 촛불상경시위도 그렇고 지방에서 중요하고 대단한 것들이 서울과 수도권에 묻혀 관심과 주목을 잃어간다고 한탄했다. 또한 최근 대통령 탄핵정국에도 뚜렷한 주관을 드러냈다. 같은 출신지로서 부끄러운 일임을 그리고 탄핵은 정당했고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누가 새로운 대통령이 되든 그간의 적폐를 말끔이 청산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털어 놓았다. 또한 대구에 살고 있는 부모님이나 많은 어르신들은 이번 대선에서는 투표를 포기할 것이라는 언급도 했다. 자신이 투표한 대통령에 너무 큰 실망을 했고 그런 대통령을 찍은 사실이 부끄럽고 또한 보수층에 마땅히 찍을 인물이 없어서라기도 했다. 이 정도 되니 그냥 보낼 수가 없었다. 대리비용을 곱절로 쳐주고 집 근처에서 차 한잔하자고 해서 얘기를 이어갔다. 주차를 하고 집 근처의 커피숍에 들어가 서로 통성명을 하고 본격적인 2라운드에 돌입했다. 놀라울 정도로 사회 전반에 관해 깊은 식견과 함께 표현의 절제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분명한 용어를 사용치는 않았지만 조만간 다가올 인구구조변화와 그 파장에 대해 언급했다. 그리고 지금부터 은퇴로 쏟아져 나오는 전후세대(53~64년생)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전후세대는 스스로는 죽도록 고생했고 오늘날 울나라의 경제성장의 주역이라고 하지만 그것의 가장 큰 수혜자가 아니었냐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자신들은 어느 정도 부를 축적하고 노후를 지낼만한 수준이 되었다지만 2세들이 과연 자신들이 누렸던 그런 기회나 고성장을 누리고 살 수 있게 했는가에 대해서는 분노에 차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 이전에 적어도 공정한 제도나 사회기반을 마련했느냐고도 했다. 로스쿨을 언급하며 과거 조선시대보다도 더 고착된 계급사회에 들어섰다는 불만도 터트렸다. 전후세대의 대표주자로 58년 개띠를 언급하며 그의 분노는 절정에 달했다. 출산인구가 정점에 달했던 그 세대가 '개떼'가 되어 고교평준화 등 사회 여러 분야에서 많은 제도변화를 일으켰고 급기야 은퇴를 하여 국민연금을 알짜배기로 타먹으며 후세를 괴롭히는 골치덩이가 되었다는 말을 했다. 그들이 쓸고 가면 남는 것이 없다는 표현으로 '개떼', '쓰나미', '메뚜기떼'라는 단어로 노골적인 적대감을 표시했다. 그리고 그 전후세대들이 정말로 후세를 위해서 연금이라도 70세 이후로 연장하자는 결단을 내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작금의 나라 상황은 보수와 진보의 이념 대립보다는 모든 것이 왜곡되어 정상처럼 보이는 것, 즉 비정상이 일상화되어 굴러가는 것이라고도 했다. 열을 올렸던 분위기를 정리하기 위해서라도 그는 마지막으로 이번 대선에서는 통일 말하지 않는 지도자는 뽑아선 안된다는 기특한 멘트도 날렸다. 빙고 !!!! 너무도 꽉찬 중년의 대리기사를 만난 행운이 있었던 저녁이었다. K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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