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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또한 지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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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만사 균형이고 조화다.
미셀러니(신변잡기)

“전 몰라유.” (언어유희)

by 홀쭉이 2010. 5. 6.

전 몰라유.” (언어유희)

2010. 5.6()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 라고 했다. 

성철스님은 이것저것 사족을 떼고 “이 뭐꼬?” 라고 했다. 

어떤 철학자는 자신이 가장 확실하게 깨달은 것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요즘 경제난국을 맞아 형편이 어려워지자 세간에 위기(危機)’기회(機會)’에 대한 언어유희가 유행이다.  한자 문화권에 있는 한국은 그런 뜻글자 풀이식 반의어로 위로를 받으려 한다.  심지어 영어단어(Chance, Opportunity)로도 비슷한 유희를 확장하기도 한다.

 

우리는 앞날을 예견하기 힘들 때 불안하고 힘들어 한다.  한마디로 우리인생의 앞날에 전개될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불안하고 초조하여 불행한 상황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왠만히 본능적으로 혹은 학습적으로 반복되는 인생의 일상사는 아는 것 같지만 개개인의 행복과 불행으로 이끄는 추상적인 일상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얼마나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나 결혼을 할 수 있을지, 돈을 얼마나 벌어 풍족하게 살 수 있을지 또한 얼마나 무병장수할 수 있을지, 어떤 좋은 친구와 가족들과 살아갈 수 있을지 등등 행복과 불행에 이르는 결정적인 것들은 정말 알 수가 없다.  더군다나 인생사에서 무수히 일어나는 모든 것들의 매트릭스(조합)에서 내가 얼마나 행복할지 불행할지는 더 더욱 알기가 힘들다.  가령 위의 조건 중에서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잘 살더라도 만약 찢어지게 가난하다면 그리고 주변 친구도 없고 가족도 없다면 과연 내가 만족스런 삶을 살고 있다고 느낄 것인 것인지?  그렇다고 엄청 부자가 되어 풍족한데도 사랑하는 사람도 없고 주변에 친한 친구나 가족이 없다면 과연 내가 행복할까?

 

그러나 이러한 모르는 것 투성이 속에서 인간은 희망이라는 추상을 창안했다.  희망의 대전제는 앞날에 대해 모른다는 것이다.  하여 모른다는 그 불안 속에서 자신에게 유리하고 긍정적인 시그널만 모아서 추상화한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이성의 동물이라고 한다.  하여 어찌보면 인간은 뻔한 반복이나 확실한 자신의 미래예측이 가능하다면 아마 모두 자살을 하고 말 것이다.  말 그대로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차피 죽어야 하고 앞으로 남은 인생의 본능적 혹은 추상적 현실이 모두 자신의 예측대로 진행이 된다면 굳이 살아서 확인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렇다.  이토록 영특한 동물을 살려놓는 가장 확실한 조건은 그들이 그들의 미래를 모르는 것이고 그걸 그들만의 장끼인 이성으로 희망화 작업을 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든 그리고 앞으로 어떠한상황이 전개될지 몰라 불안해 하든 바로 그것이 우리를 살아있게 하는 근원적 이유이자 에너지인 것이다.  그것의 또 다른 표현으로는 희망인 것이다. 

 

모르니 산다.”

 

부처도 예수도 공자도 마호메드도 거지도 늙은이도 아이도 몰랐으니 살았고 지금 나도 그렇다.  단지 모른다는 것 뿐이다.

 

K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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