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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셀러니(신변잡기)

축구이야기(2)

by 홀쭉이 2010. 6. 30.

축구이야기(2)

2010. 6.28()

 

잘 싸웠다.  아쉽지만 후회없는 한판승부였다. (지난 토요일 밤 11시 한국과 우루과이 16강전)  모두들 내용에서는 이기고 점수만 진 경기였다고 평가했다.  사실 스코어를 제외한 모든 내용지표에서도 한국팀이 압도한 경기였다. 

 

아쉬운 건 우리뿐만 아니였다.  비록 한국을 꺾고 이겼지만 우루과이도 십년감수했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다.  외신들도 일제히 한국팀의 분전을 칭찬일색으로 도배했다.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한국팀이 홈텃세 혹은 어부지리로 얻은 4강이라고 조롱했지만 인제는 그기사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는 로이터통신의 기분 좋은 멘트도 있었다.

 

 

잘 싸웠네.  우리의 태극전사들!

졌지만 승리한 전투이고 그대들은 우리의 자랑스런 용사들!

그대들의 열정, 투혼, 애국심이 우리를 깨우네.

환영하네.  당당한 승리의 개선용사로!!!

 

경기에 지고 탈락을 했지만 이렇게 뒤끝이 좋을 수가…  그리고 먹고 사는 것에 쪼달려 무관심해 보였던 많은 국민들을 이렇게 달아오를 수 있게 하는지…  비단 우리뿐만 아니라 무엇이 지구인들을 그렇게 축구에 열광하게 하는지? (지난 토요일 경주에서 밤샘을 한 장례식장에서 조차도 마찬가지였다.  고인은 그 게임을 못 봐서 얼마나 서러운 죽음인지…  “이것들이 정말…  !  나 죽었단 말이다.  정말 신경 좀 안써줄래?!")

 

 

축구가 끝난 조용한 다음날 아침.  부산의 친구와 뒷풀이 전화채팅에서 왜 그리도 온 지구인들이 월드컵과 축구에 열광하는지를 얘기하다 나온 결론이다. 

 

 

지구에서 가장 분쟁이 잦았던 지역은 아마도 유럽일 것이다.  적당한 땅덩어리와 인구수 그리고 비슷한 종교와 문화권.  고만고만한 유럽의 여러나라들은 문명의 시작부터 20세기중반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전쟁을 끊임없이 벌여왔다.  20세기에 벌어진 두차례의 대전에서는 지구촌 전체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말려드는 이른바 세계대전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백병전으로 재래식 무기인 창과 칼을 이용한 전투가 주류였고 산업혁명이후 대량살상무기의 등장으로 전쟁의 양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시간이나 장소도 가리지 않는 복잡한 형태로….  도시전, 산간게릴라전, 공중전, 화학전, 핵전….

 

하지만 인류는 동서를 막론하고 수천년동안 창과 칼, 활등 재래식 무기와 나중에는 소총을 들고 싸워왔다.  그것도 탁 트인 들판이나 황야에서 결전을 벌였다.  18세기까지 유럽의 대부분 유명한 전투가 그랬고 미국의 남북전쟁도 마찬가지다.  군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독일의 클라우제비츠의 ‘군사학개론’에는 당시만 하더라도 평원에 포진한 양진영의 사령관이 중간지점에서 만나 상호 결전을 확인하고 악수를 한 다음 “신사여!  그대가 먼저 쏘시오.”라고 상대방이 먼저 쏘기를 기다려 전투를 시작했다고 기록한다.  그 이후 산업혁명의 여파로 나날이 무기가 개량되고 새로 만들어져 인명 살상력이 커지게 됨에 따라 전쟁의 양상은 완전히 바뀐다.  그리고 축구는 산업혁명과 괘를 같이 하여 발전하고 드디어 직업적인 스포츠로 거듭난다. (이유는 전편참고) 

 

 

하여 축구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국가들이 만들고 발전시켜왔다고 봐야 한다.  물론 오늘날에도 세계최고의 프로리그는 영국의 ‘프리미어리그’, 스페인의 ‘프리메가리그’, 이태리의 ‘세리에A, 독일의 ‘분데스리가’, 프랑스의 ‘리게1’ 등이 있다.  한때 유럽역사에서 패권을 잡았던 그들의 리그가 아직도 건재하다.  하여 유럽의 축구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유럽의 여러나라들이 지난 수천년간을 이어온 봉건주의 시대의 구식전쟁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직도 그들은 ‘오렌지군단’(네덜란드), ‘아주리군단’(이태리), ‘전차군단’(독일), ‘무적함대’(스페인) 등으로 군대식 이름을 사용하고 우리도 마찬가지로 ‘태극전사’로 부르고 이웃일본도 ‘사무라이블루’로 결전의 의지를 불태운다.  1966년 영국에서 벌어진 제8회 월드컵에서 아시아 국가중 최초로 8강에 진출했던 북한은 선수들이 군사훈련을 받으며 연습을 했고 실제경기중에도 공격시에는 “돌격 앞으로!, 수비시에는 “일제 후퇴. 방어라인구축!” 등 전투용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렇다.  축구는 전쟁이고 실제 전쟁을 대신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축구는 지구의 평화를 지킨다는 다소 해괴한 억측도 일리가 있다.

 

 

선수들은 영주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영지를 지키는 전사인 기사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영지를 상징하는 색의 유니폼을 입고 가슴에는 자신이 속한 영주의 방패문양을 달고 있다. (우리나라나 이웃 일본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인제 결전장인 평원에 집결하여 적을 굴복시키기 위해 상대진영을 괴롭힌다.  적의 최후의 보루인 견고한 성…  그것은 수문장이 지키는 골대다.  그것을 돌파하는 것은 곧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다.  그러나 수비가 없는 공성을 유린하는 것은 금지다.  오프사이드(off side).  반칙이란다.  세상에…  뭐 이런 해괴한 룰이 있는지.  상대를 죽여야 하는 전쟁에도 최소한의 인간존중 혹은 신사도라 할까?  심지어 경기중 선수가 쓰러져 있으면 공을 바깥으로 차 보내 다친 선수를 일으켜 세우고 한다.  인제는 아예 ‘오프사이드트랩’(off side trap)이라고 해서 그걸 이용하는 수비전술도 생겼고 ‘헐리우드액션’이라는 불쌍함을 가장한 전술도 있다.  심판도 전지전능하지 않기에 그런 전술도 통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런 주심을 속이는 제스쳐나 심지어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 하니 어쩔 수 없는 전장터의 현실이다.

 

 

유럽의 축구가 남미로 건너가 원주민과 결합한 그들의 야성을 깨웠다.  월드컵이 시작된 1930년 우루과이대회 이후 1950년 제4회 브라질대회에서 우루과이와 브라질이 맞붙은 결승전.  홈팬의 열광적이고 압도적인 응원속에서도 브라질은 2-1로 아쉬운 패배를 했다.  그날은 브라질국민에게 통한의 날이였고 그것에 좌절하지않고 리우데자네이로에 20만을 수용하는 세계최대 경기장을 건설하고 대대적인 유소년축구 투자로 8년뒤 불세출의 스타 ‘펠레’를 탄생시켜 6(58), 7(62) 연속 우승컵을 거머쥐게 되었다.  그리고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간에 벌어진 이른바 ‘100시간의 축구전쟁’은 그들의 열기를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요즘도 남미는 인구나 국토면적과 상관없이 모든 나라가 세계적인 축구강국으로 자리메김하고 있다.  파라과이, 니카라과, 온두라스, 칠레…  우습게 보다간 개망신 당하는 수가 있다.

 

그렇다.  아무리 대패를 했어도 조국을 포기할 순 없다.  지역예선전에서 탈락을 했건 본선에서 조별예선에서 탈락을 했건 아님 아쉽지만 결승에서 분패를 했건 우리는 우리의 자랑스런 전사들을 결코 미워할 수도 없고 포기할 수도 없다.  축구는 곧 국가이고 또한 그것의 승부로 판가름나는 총알없는 전쟁이기 때문이다. (아마 이번 남아공월드컵에서 조별예선에서 탈락한 이태리, 프랑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올림픽이든 다른 스포츠에서 발군의 실력으로 금메달을 획득하거나 또한 분패를 했다 하더라도 그영광이나 참패의 기억은 잠시 정도이다.  하지만 축구는 다르다.  어느 나라를 불문하고 그들에게 최고의 대우를 하고 예우한다.  전세계 대부분의 구단들이 대규모 적자와 빚에 시달리는데도 그 열기가 식거나 팀을 포기하는 경우는 드물다. 

 

 

왜냐구??? 

 

그들은 그들이 속한 영주와 영지를 지키는 선택받은 전사이고…   에이…  구질구질하네.  깡패같이 들릴지 모르지만 한마디로 ‘축구’이고 목숨이 달린 ‘전쟁’이기 때문이다.  억울하면 가장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대안은 튼튼한 아들을 낳아 축구를 시켜 스타플레이어로 만들면 되는 것이다.  -_-

 

K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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