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아.. 대한민국)
2011.7.16
엊그제 뉴스에 유방암 오진수술에 대한 법원판결이 보도되었다.
먼저 환자는 세브란스병원에서 유방암 판정을 받고 서울대병원으로가서 수술을 했다.
수술을 하고보니 유방암이 아니였단다. 단순 몽오리 정도...
근데 수술로 유방의 대부분은 잘려나가 여성으로서 썰렁한 가슴으로 남은 생을 살아야 하는데...
뉴스의 쟁점은 두 병원중 어디가 유죄냐인 것이다.
법원에서는 세브란스병원이 원인제공을 했고 동급 서울대병원은 그 진료결과를 믿고 수술한 것 밖에 없으니 세브란스만 유죄라 한다.
아...
암이란 선고를 받고 그 환자는 수술전까지 얼마나 당황하고 절망스러웠을까?
또한 오진에 괜한 수술로 가슴을 잃은 그녀는 또 얼마나 큰 낙담으로 살아갈런지...
대체 서울대측은 암이란 중병에 확인진료조차 없이 그냥 수술부터 하고 봤을까?
나중에 오진과 수술잘못이 밝혀져 서로 상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작태로 법정공방까지 벌이고...
병원에서 오진이 흔한것은 이미 경험한 사람들이 많아 그러려니 하는 편인데 암이란 중병선고에 재확인도 않고 수술부터 하다니... 그리고 다른 병원에서 그렇게 판정했으니 그리 믿고 수술한 자신들은 잘못이 없다고 주장을 하고 또 그것이 받아들여지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오늘날 이땅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오진이야 인간의 한계로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이미 의학계에서도 총진료의 60%이상이 오진이라 한다니 말이다.
단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좀 더 세심하게 관찰하고 확인에 재확인을 할 뿐이다.
내가 당한 낭패담이다.
1. 주머니칼 아줌마
재작년 엄마가 심하게 앓아 2주 정도 병원신세를 지게되어 문병을 했다.
내가 병실에 가니 엄마는 인제 거의 나아져 표정이 밝아보였고 같은 병실의 아주머니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아주머니도 수술을 마치고 회복기에 접어들어 기분좋게 엄마와 얘기를 했다.
근데 아주머니가 무슨 수술을 했고 치료를 받는 자초지종을 듣고 기겁을 할 뻔했다.
3년전 홀몸인 아주머니는 가난한 살림에 아픈 몸을 이끌고 장사를 하다 너무 심하게 아파 병원에서 위장병 수술을 했다한다. 수술이 무사히 끝나고 회복하여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사는데 뭔가 뾰족한 것이 옆구리를 자꾸 찌르더란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 하루는 하도 아프고 결려 병원에서 X-Ray를 찍어보니 수술용 칼이 배속에 들어있더란다. 그래서 원래 수술한 병원에서 다시 개복하여 녹슨 칼을 꺼집어내고 접합수술을 했단다. 그리고 인제는 괜찮아졌고 의사선생님이 고맙다고 했다.
나는 우스개로 아주머니가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하던지 협상을 해서 평생먹고살 것을 챙기지 않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순박한 아주머니는 무료로 수술도 해주고 앞으로 치료도 무료로 해준다니 참 좋은 의사선생님이라고 칭찬을 했다.
(아마 우리형제들 같았으면 꺼집어낸 녹슨 칼을 그 의사놈 뱃속에 쑤셔 박아넣었을꺼다.)
2. 경림이의 손가락
첫째 경림이가 네살때 였다.
당시 우리가족은 영국으로 나가기 전 회사 아파트가 있는 산본에서 2년 정도를 살았다.
저녁무렵 wife는 옷을 꽤메고 큰 딸애는 일어서서 TV를 붙잡고 있었다.
그러면서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TV가 방바닥으로 떨어져 경림이의 양손을 내려쳐 왼손 중지가 끊어지고 다른 손가락들은 골절상을 입었다. 당황한 wife는 이웃을 불렀고 바로 119 소방대를 불렀다.
5분만에 소방대가 출동하여 잘려진 손가락을 얼음통 속에 넣고 인근의 병원으로 갔다.
병원이 퇴근시간이라 바로 수술은 못하고 다음날 아침 중지 접합수술은 했고 골절된 나머지는 뼈가 붙도록 깁스를 한다고 했다. 집도의가 내게 분명히 그렇게 설명했다.
그런데 석고실로 경림이를 데려가 수술한 손가락에 깁스를 하려했다. 그래서 내가 집도의에게 들었던 것을 얘기해줬더니 석고실 담당의사는 내게 화를 내며 본인이 의사인데 왜 당신이 의사노릇을 하느냐고 목청을 높혔다.
기가 막혔지만 막상 경림이에게 불리하게 작용할까봐 찜찜했지만 넘어갔다. 깁스가 끝나고 병실로 돌아오면서 수간호사에게 그 얘길하며 혹시 잘못된 치료가 아닌지 재확인을 요청했더니 잠시 여기 저기 확인을 하고 얼굴색이 확 달라진 수간호사가 갑자기 애를 데리고 다시 석고실로 달려가는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수간호사와 석고실 의사가 잠시 다투더니 의사는 좀 전에 깁스를 했던 경림이 손을 돌아가는 원판형 기계톱에 대고 석고를 잘라내고 풀었다. 경림이는 그 고통과 공포로 세번이나 까무러쳤다. 그리고는 붕대를 감았다. (아직도 접합한 중지가 잘룩하고 골절된 다른 손가락도 약간 휘어져 있다.)
씨발놈... 나는 그 놈 대가리를 원판형 기계톱에 쳐넣어버리려고 달려들었지만 주위사람들이 뜯어말렸다. 그 놈은 상기된 표정으로 미안하단 말도 없이 멀뚱 멀뚱 서있기만 했다.
2. 경은이의 X-Ray
둘째 경은이가 세살때였다.
그날은 우리 가족이 구정연휴로 고향 진주로 가기로 한 날이였다.
새벽부터 경은이가 고열과 기침으로 울었다.
괜찮아지겠거니 하면서 잠을 설치다 5시가 되어 인근의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일단 폐렴이 의심된다하여가자마자 X-Ray부터 찍었다.
나중에 진찰실로 들어가 무척 사무적으로 보이는 여의사로부터 진찰을 받았다.
X-Ray 사진을 놓고 일단 폐렴은 없다고 하며 애 옷을 벗겨 청진기를 갖다대고 뭐라 뭐라 주절댔다. 그리곤 진찰서에 알수없는 말로 찍찍 적어 간호사에게 넘겼다.
그때 나는 그 X-Ray가 경은이 것이 아닌 것으로 보여 의사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그 여의사는 아래 위로 눈을 흘기며 본인이 의사이니 본인이 알아서 한다고 하며 무시했다. 불안과 의심으로 진찰을 마치고 나가는데 바깥에서 간호사가 "문경은 X-Ray 나왔습니다." 라며 사진을 가지고 들어왔다.
그때 썰렁한 분위기란...
그 여의사는 X-Ray 사진을 받아들고 나가던 경은이를 다시 앉히고 좀 전에 했던 진료를 그대로 재연했다. 아까 적었던 진찰서와 비슷하게 휘갈겨 간호사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곤 우리가 나갈때까지 미안하다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썩을 년...
3. 우리동네 돌팔이
벌써 8년이나 된 얘기다.
당시 나는 속이 쓰리고 신물이 넘어와 병원에 갔다.
예약을 안하고 가서 거의 한시간을 내과 진찰실 밖에서 기다렸다.
오랫동안 기다려 들어갔더니 의사는 처음 앉으라고 나를 쓰윽 쳐다보고는 줄곧 눈을 깔고 혼자 주절거리며 진찰서에 뭐라 영어로 휘갈겼다.
"직장인이지요?"
"스트레스 많이 받지요?"
"식사가 불규칙적이지요?"
"술 자주 하시지요?"
"담배 많이 피우시지요?"
내가 아무 대꾸를 않자 그제서야 고개를 들고 왜 대답을 안하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직장이긴 한데 스트레스 받을 일 그리 많지 않고 밥도 제때 꼬박꼬박 먹고 술은 가끔씩만 마시고 담배도 안피운다고 했다. 그러자 의사는 아까 혼자 찌껄이고 적었던 진찰서를 찢어버리고 그제서야 내가 왜 왔는지를 물었다. 그래서 내증세를 얘기해주었더니 다시 진찰서를 작성하여 간호사에게 넘기고 나왔다. 그래봐야 기껏 5분이였다.
바깥에 나와보니 내 뒤에 줄서 있던 환자들이 바글바글 했고 또 다른 환자가 불과 3분짜리 진료를 받으러 진찰실로 들어갔다.
대체 이래서 무슨 진료가 되겠는지...
- 0 - 0 - 0 -
나는 의사도 인간이라 실수도 하고 능력이 한계가 있어 오진도 인정을 하는 편이다.
그리고 그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다시금 같은 오류를 범하지 않는 노력을 보여주는 것이 정당하다고 본다. 근데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의사나 병원은 무슨 조폭인지 개인과 조직의 실수와 오류를 인정도 사과도 않는 편이다.
어떤 이유보다도 그들의 이익.... 기득권을 사수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그렇데 않은 의사와 병원도 더러 있을 것이다.
문제는 찾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더구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나는 병원에서 아기를 분만하면 아기가 바뀔까봐 가장 걱정된다.
아기 인큐베이션실에서 누워있는 기백명의 아이들이 바뀔까 그것이 두렵다.
몇년전 인기를 끌었던 '가을날의 동화'는 병원에서 바뀐 남매의 맺지못할 사랑을 비극으로 보여주었다. 이렇게 우리 사회에서는 병원이 저지른 잘못으로 고통받는 일화가 너무 흔하다. 그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인정하고 개선하려는 노력만 보여주더라도 우리사회는 한결 살만해질 것이다.
kw
PS : 엄마도 안해도 될 위장수술로 위의 3분의 2를 잘라내 반평생을 힘들어했고 큰 딸은 굳이 안해도 될 제왕절개수술로 태어났다. 그들은 나중에 머쓱해 했지만 사과는 하지 않았다. 아마 지금은 잊어버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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