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2011.12.27
wife가 먼저 보고 우리 가족 모두에게 꼭 보라고 해서 지난 주말 집에서 VOD로 보았다.
사회고발을 목적으로 만들었으니 짐작은 했지만 이외로 배우 캐스팅부터 연기력 그리고 구성이 뛰어난 작품이였다. 하지만 이런 영화를 보고 작품성 타령이나 할 수 없다.
이미 공지영의 원작소설을 통해 알려질 만큼 알려졌으니 장애아 학교에서 벌어지는 인권유린 정도는 충분히 짐작하는 바가 있었다. 다만 영화가 얼마나 리얼하게 가해자들을 가증스럽게 그리고 피해자들을 얼마나 억울하고 참혹하게 묘사할까 하는 정도의 관심사였다.
영화는 충분히 그 양쪽을 일반 관객에게 전달하고도 남았다.
대통령도 이 영화를 보고 일갈을 했다하고 그 결과 해당학교(인화학교)를 단칼에 폐교하고 복직을 꾀하려던 재단측 인사들을 더 이상 학교에 얼씬도 못하게 했다 한다. 일각에서는 성추행관련한 인권유린 사건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법안도 제정중이라고 한다.
사실 나는 우리사회의 인권사각지대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에 대해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와 탐욕으로 발생하는 사건들이나 현상들로 치부하는 한편으로 그런 사태를 예방하고 치유하는 공공기관의 역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영화에서 학생폭력과 성추행을 당한 학생과 그것을 도와주는 인권단체 간사(서유진)가 교육청을 찾아가 사건의 전말을 설명하며 고발하자 담당직원은 겉으로 아주 부드럽고 격식있게 방과후 사건에 대해서는 시청소관이라고 넘긴다. 마찬가지로 시청에서는 그런 사건들이 학교에서 벌어졌으니 교육청 소관이라고 떠밀기를 한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경찰. 경찰은 이미 학교재단측과 결탁되어 오히려 재단측을 보호를 하려하니 더 이상 갈데가 없다. 결국 찾은 곳은 검찰. 현재 우리의 법정은 재력과 권력이 지배하는 곳. 힘없는 검사는 온갖 물증과 증언에도 불구하고 참패. 결국은 기득권들의 적당한 타협과 지분확인으로 일단락된다.
어떤 조직이든 '정의'나 '민주화' 혹은 '효율'을 위해 개혁을 부르짖는다. 그리고 결국에는 관련 제도나 법 제정 혹은 개선을 들먹인다. 과연 제도나 법이 없어서 그럴까?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에서 가장 심각하다고 하는 교육문제나 부동산투기문제에 있어서 관련 제도나 법들을 수시로 제정.공포.시행되어도 효과가 없었을까? 이미 그런 법이나 제도를 만든다 하면 불리해진 당사자들이 일찌감치 법망을 교묘히 피해 달아나 버리기 때문이다. 그걸 막을 방법이 없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치명적인 이권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우리사회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다.
그 희망의 불씨는 노무현전대통령이 지폈다. 그는 철저히 아마츄어였다. 퇴임하고 죽는 그 순간 까지도. 전혀 계산되지 않은 순수함과 진정성으로 말이다. 처음에는 그것이 답답했고 부끄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저 뺀질뺀질한 철밥통 기득권의 철옹성을 뚫고 근본적인 개혁을 하기 위해서는 그것 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현정부는 너무도 극명한 대조로서 보여주었고 그 조짐은 집권말기에 봇물 터지듯 나타나고 있다.
지난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신호탄으로 전혀 정치이력없이 사회봉사를 평생의 업으로 해온 박원순씨와 재벌과 대항하여 온갖 시련을 겪으며 기업을 키워와 불공평한 경쟁구조와 기회불균등 해소를 부르짖는 현직 서울대교수인 안철수씨의 등장이 그렇다. 그 이후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시라. 기존 정당들이 모두 조각나고 새로운 틀을 짜고 있지 않은지. 벌써 다선(多選)을 훈장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거추장스러워 용퇴나 불출마 도미노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그것이 얼마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런지 미지수 이지만 그것을 불러온 기저에는 '순수함'과 '진정성'이 있다. 그들이 아무리 경험이 없고 투박하고 거칠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지금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일은 적어도 그런 엄청난 억울함과 고통을 겪고 그들이 내게 찾아와 하소연을 했을 때 충분히 들어주고 위로하며 감싸주는 것일 것이다. 적어도 권력의 편이 아닌 사람의 편에 서서 함께 울고 같은 길을 가는 것이다. 바로 그 '순수함'과 '진정성'을 간직하고서 말이다.
k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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