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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영화·문학·음악·사진)

꽃무릇 (석산, 상사화)

by 홀쭉이 2009. 9. 24.

꽃무릇 (석산, 상사화)

 

2009. 9. 22

 

지난 2007년 9월중순에 영광불갑사와 고창선운사에서 꽃무릇을 보고

올해는 서울친구를 데리고 같이 갔다.

 

오며 가며 차막히고 가서도 축제로 북적이는 가운데 이미 꽃은 저만치

물러나 짜증과 불평으로...   가문 날씨에 꽃도 방문객이 일으킨 먼지를

뒤집어 쓰고 죽어가고 있었다.

 

 

 

 

 

차리리 이번에는 장렬하게 산화하는 꽃을 보고싶고 사진에 담고 싶었다. 

스러져 가는 꽃이 아름답고 새롭기는 작년 지리산 쌍계사에 엄마와 함께

갔을 때였다. 

 

 

 

좀 있으면 연두빛 꽃대마져 옆으로 스러지고 꽃의 흔적을 완전히 지운다.

 

 

 

 

 

 

예전에 써뒀던 '꽃무릇'이다.

 

 

꽃무릇 (석산, 상사화)

 

2008.7.13

 

일요일 아침.  늦잠을 자고 아파트 베란다에 나갔더니 엊그제 회사에서 가져온 중국난 옥화(玉花)향기가 코와 폐속을 스며들어 몽롱해졌다.  곁에 잠시 앉아 귀하고 품격있는 자태를 감상하였더니 여러다른 화초들이 자기를 봐달라고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여름 장마철에 자신들도 건강하게 자라고 있노라고.  이기적인 편견그들의 건강하고 싱싱한 모습만을 좋아하여 홀대했던 그루의 화초는그래.  당신이 돌봐주지 않아도 스스로 살아갈꺼야..” 라는 듯이대궁이를 빳빳이 세우고 반짝 반짝한 넓은 잎으로 시위를 하고있다.

 

그중 귀퉁이에 세워놓은 넓고 깊은 화분에 담아놓은 꽃무릇은 지난 5중순까지 곧고 싱싱했던 무더기의 줄기를 장마철이 오기전부터 버리기 시작했다.  장마철이 와서는 완전히 스러져 흔적도 없어졌다.  성질 급한 사람은 화분을 버리기도 것 같다.   그러나 추석무렵의 황홀한 개화(開花)아는 사람이라면 다를 것이다.  

 

시골들녘의 벼가 누럿누럿해지고 마당끝의 감이 노란색을 띄기 시작할 무렵이면 줄기가 스러진 황무지 같은 땅에서 곧디 곧은 가는 줄기가 허벅지까지 올라온다.  추석이 다가오고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내리기 시작하면 대혁명을 시작한다.  볼세비키 공산혁명보다도 붉은 함성으로 골짜기를 타고 내려온다.  그간 쌓였던 한과 열정으로 온통 자신들의 세상으로 만든다. 

 

한편으로 완벽한 사라짐이란. . .   여름이 오기전까지 푸르게 자라오르던 싱싱한 열망과 환희그러나 순식간에 사라지는 단호함과 절제.  흔적없는 잠수 그리고 인고.  그리고 9월이 되었다.  

 

 

패티킴의 ‘9월이 오는 소리어디선가 아련히 들리고 무더위에 악을 쓰며 울어댔던 매미도 지쳐소리가 가늘어지는 때면 줄기가 스러진 땅속에서는 반역일어난다.  뭔가 새싹이 움트는했는데 잠시 고개를 돌렸다 다시보면 한뼘씩 가늘고 곧은 연초록의 대궁이올라온다.  9월말이 되면 꽃대 끝에 암술을 중심으로 둘러 수술대를 배열한다.  그리고 일제히 서러운 열정을 토해낸다.  초록의 꽃대와 끝에 달린 붉은꽃의 강렬한 색채대비는 혁명을 꿈꾸는 자가 아니면감히 어려운 시도다.

 

대궁이가 올라와 꽃봉오리를 맺자마자 불과 두어 주만에 절정에 이른다.  하여 사람들이 꽃의 자태를 제대로 감상하는 기간은 기껏 두주 정도다.  그리고는 연약하고 보드라운 꽃잎은 말라 시들어 산발을 한다.  일이 지나면 아예 까맣게 타들어간다.  혁명의 뒤안길. . .  동학전투에서 패한 전봉준과 일당이 효수되어 저자에 걸려있고 산발한 머리들이 어지러이 매달려 있다.  아니 그곳을 무대로 누비던 빨치산들의 주검일지도... 

 

연약하고 휘청이는 대궁이도 힘을 잃고 옆으로 넘어진다.  다시 일이 지나면 꽃의 흔적마저 사라지고 가끔 늦깍기들이 을씨년스런 잔해를 스산한 가을바람에 흔들거린다.

 

한번의 완벽한 사라짐.

 

그리고 잔해들 사이로 짙푸른 잎이 올라온다.  두터운 난초같은 길쭉한 잎이 하루가 다르게 커올라 오고 겨울을 맞는다.

 

상사화 (相思花). . .

 

그렇게 잎은 꽃을 위하여 꽃은 잎을 위하여 모진 ()으로 억만겁(怯)의 윤회(輪廻) 한다.  그리고 그뿌리는 골짜기의 음지를 메우고 산아래 산밭과 논두렁에도 세력을 키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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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상사화 군락지는 고창의 선암사, 영광의 불갑사 그리고 용천사에 비교적 대규모로 조성되어 있다.  관광객 유치를 위하여 인위적으로 만든 냄새가 나지만 그래도 천년도 유서깊은 고찰곁에서 운치를 더한다

 

 

대체로  가람은 단청의 색채조화가 선명하다.  가장 많이 쓰이는 색도 , , , 청과 진한 고동의 원색이다.  부처가 말하는 진리는 그토록 분명하고 단순한 것이라는 듯이.  다만 그것을 모르는 우리에게는 어렵고 복잡한 것일 뿐일 것이다.  한편으로 속세를 떠나 그들은 산속에서  붉은 정렬과 한으로 세상을 향한 쿠데타를 모의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런 그들 곁에서 상사화가 자라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산한 바람에 매미소리가 잦아들 무렵 함성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오늘 완벽한 사라짐 옆에서 그들의 분주한 모의와 다가올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K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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