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소리
2009.01.13
내가 어릴적 살던 고향은 경남 진주 하고도 옥봉이란 동네다.
옥봉은 진주에서도 다소 외진 곳으로 앞산과 금산 사이로 주로
언덕배기인데 가운데 개울을 두고 긴 골짜기 양쪽에 생긴 마을이였다.
당시에는 윗동네 아랫동네 사이로 제법 평평하고 넓은 밭과 간혹 논도
있었고 양쪽 산 아래로 주로 비탈진 밭들이 있었다. 아래 위를 가로
지르는 중심도로 옆에는 조그만 개울이 흘렀고 집들이 점차 들어서
나중엔 복개가 되어 아예 개울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국민학교 시절
소위 ‘신작로’라고 해서 옥봉로를 포장할 때 그 매케한 아스팔트 끓는
냄새를 아직도 기억한다. 포장 당시 불편함에도 인제 진주에서도
변두리의 촌놈출신을 면할까 하는 뿌듯함이 있었다. 포장이 끝난
매끈한 도로에 누워서 아스팔트 냄새를 맡기도 했고 여름밤에는
시원한 도로가에 나와 동네사람들은 자리를 깔고 잠을 자기도 했다.
당시에는 거기에 누워 앞산의 ‘새미골’에서 날아다니는 반딧불을
헤아리기도 했다.
옥봉에 사는 아이들은 모두 봉래국민학교엘 다녔다. 한참 나중에
아랫마을에 수정국민학교가 생기고 나서 옥봉남동의 아이들은
그 학교로 이동을 했다. 아무튼 봉래국민학교는 한 학년에 무려
15개 반이 넘는 진주에서 가장 큰 국민학교였다. 당시에는 진주에서
가장 큰 국민학교를 다니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하지만
옥봉을 포함한 인근동네는 진주에서 다소 쳐진 동네 그리고 변두리의
가정형편이 넉넉치 못한 아이들로 알려져 있었다.
당시가 아마도 내가 초등학교 3학년에서 5학년 정도. 70년도 초반이나
후반 정도였을 것이다. 당시에는 트롯트가 가요의 주류를 이루어 우린
남진이나 나훈아 노래들을 따라 부르고 있었지만 뭔가 새롭고 외국적이며
젊은 층에 맞는 흥겨운 리듬과 강렬한 비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남진이가 미국물을 먹고와 ‘저 푸른 초원 위에’를 부르며 개다리
춤을 추며 나타났을 때 우린 열광했고 더욱 강렬함에 목이 말랐다.
그때 나타난 음악이자 춤이 ‘고고(Go Go)’였다. 아마 가장 각광받았던
고고의 대표노래가 ‘Sunday Morning’ 이였을 것이다. 6석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통해 우린 알지도 못하는 가사를 대충 따라 부르며 주먹을 쥐고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운 체 열심히도 흔들어 댔다. 그것은 구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새로운 리듬이자 몸동작의 춤이였다.
하지만 뮤직 플레이어로서 전축이 아직 희귀했던 그 시절 어쩌다
라디오를 통해 나오는 음악에 따라 노래하고 춤을 출 뿐이었다.
그런데 언젠가 가끔씩 초저녁 아랫마을에서 통소리 비슷한 북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곤 젊은 형들이 춤을 추며 노래하는 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왔다. (그동네는 아동보호소 밑동네, 향교 바로 아래, 만물상회가
있는 도로였다. 아마 금태주가 살았던 동네였을 것이다.) 처음에는
무슨 소린가 마루에서 내다보다가 이내 그 흥겨운 북소리에 끌려 동네의
남녀노소들이 모여들었다. 그곳에서는 군입대.제대를 전후로 한 아마도
20대 초반의 형들이 집단으로 고고춤을 추고 있는 것이였다. 신이 난
형들은 고고리듬에 맞춰 윗통을 벗어제키고 그 싱싱한 젊음을 자랑하며
광적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나도 사람들 틈에서 어느덧 신이나 몸을
흔들거리고 있었다. 춤을 추는 형들 가운데 어떤 한 형은 삼립빵통을
엎어놓고 그위에 앉아 맨손으로 치며 리듬과 장단을 만들고 있었다.
그 소리가 춤을 추던 형들이나 모여든 구경꾼들을 그렇게 뜨겁게 달구
었던 것이다. 단지 투박한 나무로 만들어진 ‘빵통’이였지만 노래나
악기 그리고 플레이어를 불문하고 당시의 우리는 뭔가 다가올 변화와
기대로 가슴 조이며 열광하고 흥분했던 것같다.
얼마전 집에서 뮤직플레이어 종류를 한번 헤아려 보니 홈씨어터부터
PMP, MP3 그외 오래된 전축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하지만 그
편리하고 음질좋은 플레이어 보다도 당시 그 형들이 맨손으로 두드렸던
삼립빵통보다 나은 것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열광이나 흥겨움도 없는
것같다. 배고픔만한 맛았는 반찬이 없다 했던가?
우린 그렇게 진주에서도 변두리였던 옥봉 골짜기에서 앞으로 다가올 새
세상에 대해 굶주려 있었던 것이다.
홀쭉이 (문기웅)
PS : 당시 춤을 추었던 형들은 지금 나이로 아마 50대 후반 정도가 아닐까
한다. 우연히도 미국가는 비행기 안에서 생각이나 노트북에 글을 적었고
오늘 멕시코로 와서 이글을 올린다. (여긴 아직 13일 화요일 저녁이다.
저녁 먹으러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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