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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셀러니(신변잡기)

출장 단상(호주, 인니)

by 홀쭉이 2017. 2. 5.

출장 단상

(호주, 인니)

2017.2.5(일)

 

1. 비행기에서

 

출장시 가끔씩 운좋게 업그레이드 받아 편하게 가는 비즈니스석에서 불쾌한 것들이 있다.

지난 주 호주 출장에서도 그랬다.

 

자리도 넓고 길어 쭉 뻗어 누워서도 가보고 친절한 기내 서비스도 받아 가며 즐겨야 되는데

이번에도 건너편 자리에 새파란 애들이 요란한 복장으로 앉아 또래 승무원들을 이래 저래 심부름 시키며

거들먹 거리는 장면을 보고 말았다.

그 나이에 대체 일반석 대비 두세 배가 넘는 비즈니스석 티켓을 자기 돈을 주고 사기가 쉽지 않을 건데

첫인상에 '금수저' 태생이고 부모 잘 만난 녀석들임을 짐작케 했다.

 

그곳 승객의 대부분은 나이 지긋한 중년으로 잘 나가는 사업가나 대기업 임원, 고위직 공무원, 고소득 전문인

혹은, 연애인 등이다.  근데 꼭 그런 양아치들이 더러 보인다.

기분좋게 추가 부담없이 업그레이드를 받고도 기분이 찝찝한 비행이다.  kw

 

 

2. 남반구에서 북반구 바라보기

 

울나라에서 집을 지을 때나 세를 얻더라도 반드시 남향(南向)인가를 따진다.

예전 영국과 네덜란드에서 주재원 시절에 집을 구할 때 그곳 부동산 업자들은

남향 주택에 대한 우리의 집착을 이해하지 못했다.

대체로 북반구에서는 남향 집은 겨울에 해를 길게 받을 수 있고 여름에는 해를 줄이고 남풍을 받아

쉬원하다고 설명하니 무슨 궤변이냐고 화를 내기까지 했다.

오히려 그쪽의 서향(西向) 집은 여름에 저녁 늦게까지 해를 받아 정원에서 파티를 즐길 수 있고 주로 서풍이

불어 좋지 않느냐고 항변을 했다.

 

그런데 남반구에서는 반대 방향이 된다.

예전에 누군가 호주이민을 간 사람이 남향집을 구했다 낭패를 경험했다는 우스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곳에서는 북향집이라야 우리식의 남향식 집이 되는 것이다.

다만 해는 오른편의 동쪽에서 떠서 왼편의 서쪽으로 지는 것이다. (북반구에서는 반대다)

개념적인 남반구, 북반구가 그곳 호주에서 비로소 확실한 위치로 와닿았다. (적도를 중심으로한 방향성)

 

3. 즐기라

 

누군가 기억이 나진 않지만 옛 성현은 말했다.

"그 일을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아마 내가 이런 말을 젊은 세대에게 한다면 무슨 고리따분한 멘트냐고 손사래를 칠 것이다.

 

 

요즘 YG나 SM 같은 대형 연애기획사에서 대표 프로듀서들이 나와 숨어 있는 신인을 발굴하는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약간 식상하긴 하지만 심사관으로 나온 그들의 판에 박힌 멘트 중 하나가

"아...  저 친구 대단해요.  정말 즐기고 있네요."  "저 음악을 혹은, 저 춤을 정말 즐기네요." 하는 식이다.

 

그런데 외국사람들과 비즈니스를 하다보면 깜짝 놀랄 발견을 한다.

그들은 오랫만에 만나면 하는 말이

"Do you enjoy your work?" (일이 재미있어요? 혹은, 즐겁게 일하고 있어요?)

"Do you like your job at the company?" (회사에서 하는 일이 좋아요?)

이런 인사말에 익숙치 않는 우리는 대략 난감이다.

 

나중에 헤어질 때 혹은 저녁 식사 혹은 즐거운 자리에서는 

"Have fun!!!" (즐기세요.)

"Do you enjoy your meal?" 혹은, "Enjoy your meal" 혹은, "Bon Appetit" (맛있게 드세요.)

"Enjoy yourself!!!" (즐기세요)

식사를 하거나 혹은 술자리에서 몇 번씩이나 물어 보기도 하고 재미있게 즐기라고 멘트를 날린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공자의 지엄한 교훈을 생활화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  언 

이넘들한테 동양의 깊은 정신세계에서 나온 교훈을 하나 줄려고 했는데 우습게 됐다.

아마도 내가 그런 멘트를 날리면 그들은 내게 영락없이 그럴꺼다.

"You too. Thanks."  (어째 해석이 '너나 잘해'로 들린다.)

 

 

4. 챔파 (생존과 삶)

 

바로 위의 '즐기라'하는 것과 맥락이 비슷할 것이다.

 

호주에서 일을 마치고 인도네시아로 건너가서 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챔파꽃' 이었다.

김해의 기수형 덕택에 알게된 챔파는 단지 예쁘고 향기 좋은 꽃을 넘어 새로운 동경이고 발견의 기쁨이다.

즉, '사람은 밥으로만 살 수는 없다.'는 무언의 항변이다.

그것도 내가 정신적으로 괴롭고 힘든 실업자 시절에 발견한 것이다.

 

자카르타 공항에 내려 시내로 들어가는 차창으로 연신 두리번 거리며 챔파를 찾았고 급기야 답답하여

그곳에서 삼대째 살고 있는 거래선 젊은 화교출신 사장에게 휴대폰에서 사진으로 보여 주며 지금 어디서

챔파를 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대강 어디선가 보기는 한 꽃인데 잘 모르고 어디에서 자라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동행한 과장이 베트남에서 2년 남짓 주재를 했다고 해서 물었더니 역시 모르는 꽃이라 했다.

 

지금이 챔파가 피는 계절이 아니라서 그런가 했다가 다음날 아침 내가 묵는 시내 중심의 호텔 앞

정원에서 활짝 핀 챔파꽃을 발견하고는 감격의 환호성을 질렀다.

한번 보고 나니 자카르타를 돌아 다니는 내내 챔파꽃이 여기 저기서 보였다.

길거리와 일반 주택의 정원과 공원 심지어 장바닥에서도.

꽃에 코를 박고 폐속 깊이 향기를 채워 넣기도 하고, 나무에 달린 꽃과 정원에 떨어진 꽃을 이런 저런 모습으로

사진을 찍기도 하고, 꽃 몇 송이를 식당과 호텔 방으로 가져와 식탁과 커피포트에 올려놓기도 하고.... 

나중에는 책갈피에 넣어 한국으로 가져오기도 했다.

 

어제 챔파를 모른다 했던 거기 젊은 사장은 부모를 잘 만나 미국의 명문주립대에서 유학을 하고

영어가 유창하며 외모도 그곳 현지인과는 다른 훤칠한 친구였다.

그리고 동행한 부하직원 과장도 호주 멜버른에서 2년간 유학을 하고 베트남에서 주재원을 지낸 우수인재다.

내가 아는 한 챔파는 위도 20도 정도 아래에서 잘 자라는 아열대성 꽃나무다.

중국의 장강(양쯔강) 이남에는 대부분 자라고 잠시 들른 복주, 샤먼, 항주, 광주, 쉔젠, 동관, 홍콩과 대만에서도

보았고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등에서도 흔하게 보았다.

아마 짐작에 인도에서부터 동쪽으로 모든 동남아에서는 흔히 잘 보이고 잘 자라는 꽃나무일 것이다.

그래서 '샤넬넘버5' 향수의 가장 대표적인 원재료가 되는 꽃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절에서 흔히 태워 사용하는 향도 바로 챔파의 향이기도 하다. (불교의 꽃, '니르바나의 꽃'이라기도 한다.) 

 

그런 꽃이 찾지 않는 사람에게는 잘 보이지 않고 잘 모르는 꽃인 것이다.

'살아 남으려 사는 삶'과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삶'의 차이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챔파.

그 발견의 환희가 그 꽃에 있다.

 

기수형이 인도 헤마쿠다 언덕에서 찍은 챔파 (2012년)

 

내가 자카르타에서 찍은 챔파 (2017)

 KW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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