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식, 김광석... 마광수
2017.9.7
1.
고(故) 김현식(1958)과 고(故) 김광석(1964)은 나와 비슷한 연배.
모두 서울에 와서야 좀 알게된 가수이자 노래들이었다.
.... 그리고
그들의 노래를 좀 알만해졌을 때 죽어 버렸다.
하여 내가 들었던 노래들은 대부분 정식음반이 아닌 불법 다운로드의 MP3 파일들이었다.
그들의 콘써트에 가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의 노래는 내 심금을 울리고 심지어 노래방 애창곡이 되어 있다.
미안했다. 그들의 추모제가 있는 날이면 그 미안함이 배가 되어
그들의 노래를 들어줘야 하는 의무감도 생겼다.
몇 년전 고 김광석의 추모제에서 음악밴드 '동물원'에서 같이 활약했던 동료가 나와서
친구를 잃은 슬픔을 주체할 수 없어 울부짖으며 독백처럼 얘기했다.
"왜 광석이 살아 생전에 콘써트도 많이 오고 음반이나 좀 많이 팔아주지...
왜 죽고나서 이런 법썩인지..."
그때 이후 나는 충격과 함께 늘 미안한 맘이 있었다.
2.
어제 소설가, 시인, 비평가이자 교수인 마광수의 자살 소식을 접했다.
90년대 초반 처음 알게 되었고 열광했던 그였고 작품들이었다.
회사의 도서구입비 예산으로 외설적인 소설책을 구입한다는 눈총을 받기도 했고
신혼생활 집들이 때 우리 집에 온 당시 회사 임원은 마광수의 소설들이
우리 집 책장에 꽂혀 있는 것을 보고 못마땅하다는 듯 핀잔을 주기도 했다.
그의 책을 좋아하거나 읽는 것만으로 외설스럽다는 눈총을 받았는데
정작 그는 얼마나 모진 학대와 고초를 겪었을까
연세대 국문학과 수업 중 학생들이 보는 가운데 체포와 구속,
교수직 박탈... 그리고 복직... 이후 한직 전전.... 모든 출판사에서 출판거부....
그는 더욱 여위었고 더 이상 살 의미를 잃었을 것이다.
아마 나라도 그랬을 것...
슬프고 미안하다.
왜 더 용감하게 그를 옹호하고 지지하지 못했을까.
그와 그의 작품을 좋아 하는 만큼 왜 표현을 당당하게 하지 못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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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울 생활의 초창기에 알게 되어 정이 들었던 그들이 내가 무심한 가운데
너무도 고통스런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었고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절망적인 상황에서
세상을 버렸다.
서늘한 바람이 내려오는 9월 가을의 초입에 그들은 이런 식으로
부고장을 보내며 가슴을 후빈다.
....................
정리하며 어쩔 수 없는 회한의 눈물이 앞을 가린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KW(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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