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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영화·문학·음악·사진)

추사(秋史) 김정희_1

by 홀쭉이 2018. 11. 8.

추사(秋史) 김정희

2018. 11.8


<완당평전>을 다 읽고 나니 그의 많은 명호 중 하나인 '추사(秋史)'처럼 그는 내게 2018년 <가을날의 전설(의역)>이 되었다. (실제 그는 18956년 10월 10일 향년 71세로 세상을 떠났다. 아마도 과천의 거처에서 앞으로는 관악산과 뒤로는 청계산의 초가을 옅은 단풍을 보며...) 


1.

많은 사가(史家)나 문사(文士)들이 추사를 흠모해도 감히 사후 전기나 평전(評傳) 집필을 주저했단다. 내가 읽은 평전의 저자 '유홍준'도 40세에 박사논문으로 시도를 했다가 포기를 했다가 세월이 한참 지나 더 내공을 쌓은 후에야 여러 곡절을 거쳐 겨우 탈고를 했단다. 그마져 잘못된 고증과 빠진 부분이 많을 것같아 앞으로 많은 부분을 뜯어 고쳐야 할 것이라는 토를 후기에 달아놓았다. (실제 그랬고 그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나긴 시간의 방대한 작업에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그 만큼 그의 생애는 종횡무진 열정적이라 교류한 당대 문사가 엄청났고 다양한 분야에서 학식과 토론, 작품을 남겨 그의 생애 전체를 제대로 아우러 평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후세 중 그가 도달한 경지의 여러 분야 중 한 가지에만 일가견(一家見)이 있어도 할만한데 그러기가 힘드니 말이다.


아무튼 그간 관광지로 몇 차례 다녀온 예산의 '추사고택'은 <완당평전>을 읽고 난 후 새로운 느낌으로 그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가까이 있어도 못 가본 그의 말년 고택 <과지초당>과 그 뒷산의 부친 김노경의 묘도 그렇다. 허... 한가한 이 때 갈 곳이 하나 생겼네.  

  

2.

그의 방대한 작품과 정신세계는 감히 내 영역 밖이라 언급하기 불가하고 다만 하나의 아쉬움은 남는다. 당대 조선을 통틀어 최고의 석학이자 지식인이고 청나라를 드나들며 문식(文識)을 교류했던 그가 서구로부터 밀려오는 개화의 물결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조선을 개조하는데 힘쓰지 못했는가이다. 


아무리 서체, 시, 서화 그리고 금석학(오늘날 고고학 혹은 고증학)에 대가라 하더라도 미래보다는 대체로 옛 것 지향적이었다. 당시 서구 열강의 엄청난 근대문명이나 청나라의 변화 그리고 곧 이은 일본의 융성... 참 아쉽다. 특히, 추사가 청장년기의 북학파 스승들 박지원, 박재가, 홍대용 등이 그의 뛰어난 재능이 조선의 미래를 개척하는 것보다 수구적인 문식에 매몰된 것을 지하에서 탄식하지 않았을지. 나 또한 그렇다. 아주 많이.


아무튼 추사는 추사답게 거침없이 살다 갔다. 이런 내 아쉬움 쯤이야 그런 위인에게 아무런 누가 되지 않을 것이다. 비가 추적 추적 내리는 2018년 11월초 가을이 깊어 낙엽이 쌓이는 어느 날이다.       


K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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