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2018. 11.28
학창시절 국사시간에 고려말기에 간행된 <고금상정예문> 이니 <직지심경>을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로 찍은 책으로 달달 외우며 문화민족으로서 자부심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서양에서 '구텐베르그'가 처음으로 금속활자를 발명한 것은 우리보다 200년이나 후일의 일이라니 참으로 대단한 사건이었다. 구텐베르그의 금속활자는 바로 인쇄기로 만들어져 초기에는 주로 성경같은 책을 찍어내다가 나중에는 서양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혀졌다는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도 대량 인쇄되어 널리 베포되었다. 그 책은 당시의 서양사람들을 열광시켜 동방진출과 함께 미지의 지리상 발견을 위한 탐험과 도전을 키우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지금은 프랑스 영토가 된 남부 라인강변의 고적도시 '스트라스부르그'에 가면 대성당 앞 중앙광장에 구텐베르그의 동상이 있다. 당시 거기서 인쇄업을 했던 그는 금속활자 인쇄술이 얼마나 문명을 발달시키고 사업적으로도 큰 돈을 벌 수 있는 대단한 발명품이란 확신이 있었던 것같다. 그러니 그 사업을 위해 큰 돈을 빌려 투자하기도 했고 나중에 금속활자 인쇄기와 인쇄술 소유권 관련하여 동업자와 소송이 벌어져 많은 고초를 겪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후 그간 손으로 써왔던 필사본의 책들이 대량으로 인쇄되어 문예부흥을 이끌고 근세문명을 발전시킨 원동력이 되었다.
반면 독보적으로 세계 최초의 입지를 가진 우리의 금속활자는 불교경전이나 나라의 일부 책자나 찍어 일반인에게는 그 존재를 알기가 힘들었다. 오히려 이후 조선시대에 문자는 사대부의 전유물이 되어 책의 대량생산이나 보급은 언감생심. 이러니 나이들어 구텐베르그의 동상을 굽어보며 세계 최초 뭐 이딴 게 뭐가 중요하냔 생각이 들고 오히려 욕이 치민다.
고려 말 화약과 조포 기술도 그렇다. 그 기술에 힙입어 당시 왜구나 여진족도 물리치고 국방을 단단히 했는데 이후엔 거의 사장되었단다. 200년이 지나 조선에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 없었던 수군(해군)도 있었고 또 세계 최초라는 철갑선(거북선)도 발명했지만 그 시기가 지나자 또 사장되었다. 그렇게 우리가 개발하고 세계 최초라 했던 그 기술을 발전시킨 여진족은 후금을 세우고 조선을 짓밟고 조선이 그토록 섬기던 명나라를 화포로 거꾸러 뜨렸다. 그것도 소규모 병력으로 말이다. 또한 일본은 임란 후 300년이 지나 철갑의 신식 군함을 이끌고 부산 영도 앞바다에 나타나 무력시위를 하고 이어 강화도에 나타나 조선을 집어 삼켜버렸다. 일본이 임란 당시 우리의 거북선과 판옥선에서 쏘는 화포에 얼마나 놀라고 겁이 났던지 태평양 전쟁 당시 건조한 전함에는 모두 세계 최대의 함포를 장착했다. (전함 '무사시'에는 무려 46cm 구경의 함포가 장착되었다.)
지난 2011년에 외규장각 사고에서 약탈된 조선왕조실록본(아마 강화사고본)이 프랑스에서 반환되어 공개되었을 때 많은 학자들은 당시 조선의 빼어난 종이기술과 그림과 함께 화려하고 사실적인 역사기술에 감탄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장면을 본 기억이 난다. 사실 나도 그랬고 반환 서적을 전시했던 박물관으로 달려가서 그 책 냄새라도 맡고 싶었다. ㅆ~~~~ㅂ 그러면 뭐하나. 당시 그 놈들만 향유하고 유세를 떨었던 잔재들일 뿐인데.
나이가 들어 다시 보는 우리의 자랑스런 역사와 발명품에 새삼 한숨이 나오고 분노가 치미는 것은 나뿐일까. 그냥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라는 말로 넘어 가기엔 너무 안타깝고 답답한 심정이다. 쪼 ~ ㅁ !!!! K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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