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의 부재
2019.2.15
어릴적 사춘기 청소년들을 설레게한 영화 <고교얄개>가 있었다.
그런 아류의 청춘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가 제법 흔하던 시절이었다.
근데 요즘은?
사람은 전반기로 유아기와 청소년기를 거치고 중.후반기에 장년기와 노년기를 거친다.
하지만 소위 '청춘'이라는 청소년 시기가 사계절 중 요즘의 봄처럼 짧다.
계절이나 인생에서도 춥고 더운 두 계절 밖에 못 느끼는 것같다.
단지 봄은 추운 겨울을 끝내는 의미의 추상이나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그토록 기다린 봄 그 자체를 만끽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파릇한 새순과 화사한 꽃, 나풀대는 벌과 나비 그리고 지저귀는 새를
바라보고 보드라운 햇살을 즐기기보다는 성큼 다가오는 더위를 먼저 걱정하고 준비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 또래 어른들은 청춘을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배웠고 그렇게 앓으며 그 시기를 지나왔다.
그 앓는다는 것이 마냥 고통스럽지만은 아닌 가슴앓이, 흥분, 감동, 분노, 비탄, 정의감, 갈등, 희망 같은 것이 혼재된 <아노미>가 있었다.
역사에서 우리가 고대와 중세 그리고 근세와 현대로 구분할 때 근세는 청장년기 정도로 보인다.
서양에서 근세는 인간에 대한 재발견이었고 세상에 새로운 눈을 뜨게 하는 시기였다.
감히 신을 부정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외치며 자유의 가치를 목숨과도 바꿀 기세의 청년기였다.
불행히도 우린 그 기간이 있었는지도 모르게 지나가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아이들에게도 대물림되고 있는 것같다.
누군가는 "아프니까 청춘이다."고 했지만 그 아픈 느낌이 다양하지 않고 통증만 있다.
쌔빠지게 공부하느라 힘들고 취직하느라 눈치보며 바쁘고 정신이 없을 뿐이다.
그 대열을 벗어나 그 시기의 정상적 고민과 갈등으로 앓으면 단지 문제아일 뿐이다.
글고 우리사회는 그 통증 완화에만 신경을 쓸뿐 제대로 앓고 면역을 키우도록 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서도 감정표출이 너무 단순하다.
먹고 살기 편해서 만족스럽거나
먹고 살기 힘들어서 불만족스럽거나
먹고 사는 이슈 외에는 진지한 토론이든 뭐든 무감각하고 쉽게 지겨워져 고개를 돌린다.
"그래서 어쩌라구?!"
"그런 시시한 얘기로 밥이 나와 떡이 나와?!" 는 식이다.
2018년에 드디어 우리는 개인소득 3만불로 30-50클럽의 경제대국이 되었지만
우리의 젊은이들은 사춘기와 청춘을 건너뛰고 먹고 사는 일에만 매진하는 불행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그것은 우리의 미래에 핵폭탄보다 무서운 폭탄을 만드는 일이다.
어른으로서 부모로서 부끄러울 뿐이고 한탄스러울 뿐이다.
대체....
KW
'시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한민국 중국 임시정부의 의미 (0) | 2019.03.01 |
---|---|
자연의 자정작용 (0) | 2019.02.27 |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0) | 2018.11.28 |
청춘(靑春)의 부재(不在) (0) | 2018.11.13 |
영화 '공작'에서 보는 북한의 실상 (0) | 2018.10.2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