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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영화·문학·음악·사진)

노르웨이의 숲

by 홀쭉이 2019. 10. 25.

노르웨이의 숲 (Norwegian Wood)
2019.10.24


최근 촉이 오고 있는 한국의 시대상... <Lost Generation>에 대한 뭔가를 정리하고 싶었다.

생활전선에서 속속 퇴역하는 한국의 전후세대가 겪는 정신적 혼란.

그래서 그 원조격인 1차대전  이후 미국 지식인과 청년들의 좌절과 분노를 이해하고자 인터넷을 뒤적였다.

그런 와중에 우연히 발견된 것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그 원래 제목 <노르웨이의 숲>의 다른 제목이다.


소문처럼 일본과 전세계적으로도 흥행소설이었고 지금도 그의 출세작이자 대표작으로 치부되고 있다.

시작부터 일본스럽지 않은 정서와 서구적인 감성, 현학적인 표현으로 비위를 자극했다.

초중반부터 예견되는 결말...  결국 그러고 말았다.

위키피디아에서 상술한 그의 이력이나 문학적 위상은 정말 대단했다.

일본을 넘어 한국에도 상당한 애독자가 있고 그의 신간이 나올 때마다 줄을 서서 기다린다는...

이른바 '하루키 신드롬'

워낙 노벨문학상 후보에 자주 올라 언제 수상을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


사실 알려진 것과 정반대의 충격으로 이렇게 정리라도 하지 않으면 못견딜 것같다.


내용으로는 혹독하고 처절한 청소년기의 방황...

세상을 부정하고 내면 속을 파고 들어 본능과 충동으로의 섹스와 죽음.

누군 철저히 '청춘연애' 혹은 '사랑얘기'라 했는데 그것도 내내 무겁고 우울한 분위기에 비해 어울리지 않다.

이걸 당시 일본의 시대상으로 허무주의 혹은 히피즘이라기도 뭣하다.

일본 젊은세대의 고뇌와 방황이라 하기에도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67~1970년과는 거리가 있다.

일본은 1964년 동경올림픽으로 패전국의 멍에를 떨치고 재건과 성장의 희망과 활력이 넘칠 때였다.

도쿄올림픽을 기점으로 이미 재건엔 성공했다는 자신감과 함께 1965년엔 예전의 식민국인 한국과 동남아국들에게 단편적인 사과와 배상을 하고 그 멍에를 털어내고 다시 세상 속으로 나아가고자 했다.

그랬던 때 이런 염세주의, 지독한 개인주의, 허무주의, 히피즘적인 현상이라니... 

과연 일본의 당시 시대상을 반영했다고 할 수 있을까.


다르기도 하지만 비슷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같은 느낌?

<미래소년 코난>, <마녀배달부 키키>, <움직이는 하울의 성>, <천공의 성 라퓨터>...

장소적 배경은 유럽인데 등장인물만 일본사람이다.


하루키의 '노르웨이 숲'도 그렇다.

전체적인 시대상황이나 지배적인 정서가 도무지 일본스럽지 않다.

시골마을에서 자란 10대들의 지적 수준이 참으로 서구적으로 무장한 하이 인텔리들이다. (주요 등장인물은 대체로 젊고 주인공을 비롯하여 겨우 18세부터 20세로 그 3년간의 기록이다.)


지배적인 예술의 장르로 소설 속에서 언급되는 음악은 온통 미국과 유럽의 팝과 클래식이다.

잘 알려진 것도 있지만 소설의 제목처럼 별로 유명하지 않은 일부러 찾아야 되는 곡들도 더러 있다.

소설 속 대화 중에 나오는 시, 소설, 연극, 회화, 철학 등 모든 것들이 철저히 서구적이다.


심지어 마시는 술도 위스키, 와인 아니면 맥주다. (사케는 끼어들지 못한다.)

먹는 음식도 그렇다.

시골에서 도쿄로 상경해 어렵게 아르바이트로 기숙사 생활하며 살아가는 고학생이 참으로 여유있고 부티나게 논다.

소설 속의 주요 인물들이 별 이유없이 자살하고 기괴한 행동을 하고 홀연히 사라진다.

지식인과 감수성 높은 사람의 안식처인 듯한 정신과 요양원도 중요한 배경이고 설정이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개방적이고 수준높은 치료를 하는 요양원일 것이다. 과연 일본이?


대체 이런 엄청난 설정이고 심각한 우울증이면 뭔가 의도나 교훈이 있어야질 않는가.

오로지 그때 그때 느낌만이 중요하고 충동적으로 움직이는 청춘의 방황?

그래서 그 상황을 잘 묘사하는 것이 포인트이고 작가의 장끼라고?


그렇다면 예전 우리의 사춘기 때 몰래 읽었던 포르노북, 일명 <빨간책>과 무엇이 다를까.

그 빨간책의 성적묘사는 그런 방면에선 탁월했다.


작가 자신의 서구 편향적인 취향이나 섬세함을 넘은 박식함 글고 관능적인 묘사 능력이 발휘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그걸 시골에서 상경한 10대 후반의 주인공 젊은이에게 대입하고 또래의 주변인과도 일상으로 공유하다니...

어찌보면 작가의 희망사항이고 판타지에 가깝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하고 내용적으로 중요한 비틀즈의 팦송 'Norweigian Wood'가 '노르웨의 숲'으로 번역하는 것도 아이러니를 넘어 어설프고 기괴하기 짝이 없다. 비틀즈가 1960년대 히피즘이나 무정부주의의 전사로서 그 트렌드에 심취라면 몰라도...  근데 한국엔 그 이름을 딴 아파트 브랜드도 있다. 허...  말의 가치란... 그야말로 그 자체가 허하고 공하다.


PS. 그래도 내 이런 충격과 황망함을 달래준 부산 친구의 멘트. 유명세가 있다고 다 훌륭한 작품은 아니라고... 그나마 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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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로 내 경험에서 뭔가 짚이는 것이 있다.

나는 지난 30년간 직장생활에서 일본팀장도 하며 수십 차례 일본을 다녀오고 그쪽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새로운 것을 배우고 받아들이는 것이 미덕이고 강점으로 여기는 것같았다.

그리고 그 중에도 서구문명을 체화하는 것이 수준높은 삶이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내가 이 소설을 읽고 받은 충격으로 wife한테 얘기했더니 네덜란드에 살 때 본인이 겪고 본 것들을 얘기해주었다.

당시 많은 주재원 부인들은 IWC(International Women's Club)에 나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어울렸다.

바자회도 하고 합창도 하고 파티도 하며 친분을 쌓는... (가끔 남편들도 초대받는다.)


그 중에 일본 주재원 부인의 행동이 특이했단다.

미국이나 유럽계의 참석자가 많이 있을 때는 상당히 활발하다 주로 동양인들이 많은 모임시에는 조용히 입다물고 그저 자리나 지킨단다. 그녀들의 언행은 너무도 서구적이고 실제 그들의 집에 가면 그냥 거기 현지인들 이상으로 서구적으로 꾸몄단다.

그래서 한국이나 중국, 대만 출신의 주재원 부인들은 일본사람들은 서양인들처럼 살고 싶어하며

동양인 출신끼리 친하려 다가가면 오히려 같은 동양인이 될까봐 피하는구나는 느낌을 받았단다.


한번은 그런 에피소드가 있었단다.

모임에서 한 대만여자가 "다음에는 마그노나르도에서 만나죠!!"

그 제안에 유일하게 일본여자가 알아듣고 반갑게 반응을 보였단다.

근데 한국 포함 다른 국적의 부인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어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분위기가 어색해졌단다.

그때 누군가가 크게 박수를 치며 "아!!!  맥도날드(Mac Donald)!!!" 라고 하자 전체가 웃음보가 터져버렸단다.

근데 그 분위기 속에서 대만여자와 일본여자가 얼굴이 빨개지며 고개를 떨구었단다.

이후 그 두 여자는 모임에 뜸해졌단다.


나중에 알아보니 대만여자가 '마그노나르도'라고 발음한 것은 일본식민지배기에 대만에 정착된 일본식 발음을 따라한 것이었단다. 거기서도 일본과 일본사람이 보였다.


그래서 하루키의 소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소위 <하루키 신드롬>을 만들까????


K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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