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월매(月梅)?
부산 친구 상원이 산청의 단속사지에 들러 세우(細雨) 속에 꽃봉오리를 머금은 정당매(政堂梅)를 보고 찍은 사진을 보냈다. 그리곤 부근의 남사 예담촌에서 진경 산수 수묵화를 그리는 화가 이호신 씨를 만나 그가 보여주는 것 중에 단속사지 정당월매(政堂月梅) 그림의 축소 모작(模作)이 있더란다. 대작인 원화(原畵)는 지금 국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그 그림을 그리기 전에 그곳에 머물며 느꼈던 강렬한 인상과 수령 630년 고목인 정당매가 살아온 얘기를 설명듣고 더욱 감명 깊었단다.
당시 폐사지인 단속사에서 평생 정당매를 자식처럼 아끼며 가꾸었던 지킴이 노인과 함께 저녁 무렵 마루에 앉아 그윽한 향기가 가득한 매화를 보고 있는데 보름달이 떠오르더란다. 그 분위기에 강렬한 영감으로 폭 2.65m의 대작(정당월매)을 그렸단다.
근데 친구는 그 화가와 헤어져 나오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어 픽 웃음이 나더란다. 그 고고한 「월매(月梅)」가 하필이면 춘향전에서 기생 출신으로 주막작부(酒幕酌婦)의 이름이고 그녀의 딸은 왜 춘향(春香)으로 붙였는지. 소설의 내용으로 서로 이름이 바뀌어야 캐릭터에 맞을 것같은 생각이 들었단다. 이미 매월당(梅月堂)이란 김시습의 호도 있지 않은가. 춘향(春香)이 오히려 뭔가 작부(酌婦)의 냄새가 나지 않는지. 그런 뒤바뀐 작명과 편견으로 <월매(月梅)>는 서울장수막걸리의 브랜드로도 사용되고 있지 않은지.
2. 제눈에 안경 (사성암과 금환낙지 운조루)?
구례에 가면 앞으로는 기름진 너른 들판과 섬진강이 있고 뒤로는 지리산을 배경으로 한 문화 류씨 종가인 운조루(雲鳥樓)가 있다. 글고 강건너 깎아지른 언덕 위에 사성암(四聖庵)이 있다. 사성암은 백세 성왕 때(544년) 연기조사가 창건했고 이후 네 명(원효, 의상, 도선, 진각)의 성인(聖人)이 기거하며 수도를 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그 중에 도선국사다. 그는 신라 말 국사(國師)였고 풍수학의 시조다. 사성암에는 그가 수도했다는 도선굴도 있다. 강변 절벽 위의 사성암에서 내려다 보는 섬진강과 건너편의 구례와 하동 일대 들판과 뒤로 지리산은 장관이다. 어쩌면 당시 절벽 위에서 발을 옮기기도 힘든 옴싹한 암자에서 보이는 것이란 그것 뿐이 아니였겠는지. 근데 그가 맞은 편에 들판이 다하여 마주치는 산자락에서 천하 명당인 금환낙지(金環落地)를 발견하고 점지한 것이다.
글고 거기에 문화 류씨 류이주가 99칸 저택 운조루를 지었고 여러 전란에도 위풍당당하고 우아한 품새로 아직도 건재하다. 근데 어쩐지 당시 전국의 명승지를 다 가볼 수 없는 처지에 눈에 번쩍 뜨인 그것이 우연히 천하명당이자 길지(吉地)? 제 눈에 안경이 아닌가? 풍수대가라 하고 시조라 하니 말이다.
3. 우생마사(牛生馬死)?
올해 2021년은 신축(辛丑) 「소의 해」다. 지난 여름 긴 장마에 섬진강 일대에서 홍수가 났다. 구례 부근에는 강둑이 터져 마을과 농경지가 침수되어 큰 고통을 겪었다. 사람은 화급하게 피했다지만 일대의 농장에서 사육하는 가축들은 미쳐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거나 사나운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 갔다. 근데 기적같이 어느 농가에선지 여러 마리의 소가 강 건너편 절벽 위 사성암(四聖庵)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대체 그 소들이 어찌 노도강(怒濤江)을 건너 우중(雨中)의 절벽 암자로 올라 갔는지 기가 막힌다.
소는 우직함과 인내 그리고 끈기를 상징한다. 그래서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에서 어리석을 우(愚)를 소(牛)로 바꿔도 이상하지 않다. 그래서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조선 초 명재상이었던 맹사성(1360~1438)이다. 그의 출신 배경은 철저히 이씨 조선과 대척점에 있었다. 그의 아버지 맹희도는 고려말 유신이었고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한 이색, 정몽주와 정치적 노선을 같이 한 절친이었다. 맹사성은 아버지 친구인 권근의 문하생으로 사사했고 이성계의 최대 정적인 최영 장군의 손녀딸과 결혼했고 최영은 고려말에 장원급제를 한 손녀사위를 어여삐 여겨 지금의 맹씨행단에 살도록 거처를 마련해 주었다.
그래서 맹사성은 고려가 망하자 낙향했고 두문동 유신들과 고려 복원을 위하여 명의 황제(주원장)에게 조선을 정벌해달라는 탄원편지에 가담한 것이 발각되어 죽음의 문턱에 서기도 했다. 암튼 그의 재능을 기특하게 여긴 이성계와 그의 친구들이 그를 천거했고 여러 차례 고사 끝에 입조하여 왕 4대에 걸쳐 벼슬을 하고 좌의정에 이르렀고 천수를 누렸다. 그런 그가 무려 2천 명이 넘는 분기탱천한 개국공신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는 길은 철저하게 자신을 낮추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가 보여준 코스프레 중 하나는 말 대신 소를 타는 것이었다. 그리고 피리를 부는 것이었다. 저렴하게... 대금도 퉁소도 아닌 피리를 불었다.
「우생마사(牛生馬死)... 역시 영특한 맹사성은 그 고사를 알았을 것이고 의연히 소를 탔을 것이다. "저는 어리석고 우직해요. 배신같은 짓은 안해요." 그의 친구이며 고려 말 유신으로 같은 처지의 황희도 그랬다. 조선 초 명(明)이 전 왕조에서 재상의 권력남용으로 국정혼란이 심했고 급기야 난이 일어나 나라가 망하자 명 태조 주원장은 재상제도를 폐지했다. 그러면서 조선에 사신을 보내 압력을 가했다. 당시 조선 태조 이성계는 고려 말 유신 출신으로 황희나 맹사성같은 재상이 함부로 파벌을 조성하고 고개를 쳐밀면 서슬 시퍼런 개국공신들에게 목숨부지가 어렵다는 것으로 우회적으로 거부했단다.
PS. 위 글은 본인이 쓰고 사진은 구글로 뒤져서 찾아 여러 블로그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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