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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돌아댕기기)

군산기행2_이영춘가옥

by 홀쭉이 2021. 1. 2.

군산 신흥동 적산가옥 (옛 히로쓰 가옥)

 

 

 군산에는 일제 당시 한반도 수탈물자의 운송기지로 북적이던 도시라서 그런지 일본의 유지들이 많이 살았고 예쁜 일본식 정원이 있는 저택의 적산가옥이 더러 있다. 너무 잘 짓고 위세 좋은 선망의 집이라 그랬는지 해방 이후 부자가 된 지역유지들이 앞다투어 사들여 살았고 지금은 구 도심의 관광명소로 방문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그런 시내를 벗어나 드넓은 옥구들판으로 들어서면 나오는 이영춘 가옥(옛 구마모토 가옥)이 있다.

 

 

 

이영춘 가옥_1

 

 시내 외곽의 훌륭한 유원지인 은파호수공원 부근의 호텔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 아침을 먹고 달려간 그곳. 추수가 끝난 늦가을의 호젓한 풍경. 바로 곁에는 군산간호대학이 있고 마치 그 학교 부설의 교장 사택같은 저택. 낙엽진 고목과 마지막 절정의 단풍으로 고즈넉한 적산가옥은 마치 옛노래 속의「산장의 여인」이 살고 있을 듯한 풍경. 마침 코로나로 한가한 별장같은 고택에서 중년의 여자 문화해설사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이영춘 가옥_2

 

 

 그녀가 우리 (민석이와 나)를 따라 다니며 집안 구석 구석을 보여주며 소개하는 집의 내력과 이영춘 박사(1903~1980)의 행적. 그는 평안도 용강 출신으로 세브란스 의전을 나온 국내 의학박사 1호. 위키피디아에는 1935년에 교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하는데 해설사는 당시 박사 학위를 심사할 여건도 안되는데도 굳이 국내에서 학위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런 저런 곡절 끝에 당시 군산과 호남평야 일대에 넓은 땅을 소유하며 경작하고 쌀을 일본으로 수출한 일본인 유지(구마모토)의 초청으로 군산으로 내려가 여기에 둥지를 틀었단다. 조선인 1호 의학박사로 거들먹거릴만도 했지만 당시 일본인 지주 산하의 조선인 소작농민의 의료보건을 챙긴다는 명분으로 진료소를 개원(開院)을 했다. 단순히 찾아오는 환자를 치료하는 것을 넘어 당시 조선인을 가장 괴롭히는 각종 전염병과 질병을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종합대책을 세웠고 그곳에서 평생동안 실천하며 인술(仁術)을 베풀었다. 

 

 

이영춘 가옥_3

 가옥은 기본적으로 일본식인데 훗날 겨울에 추운 한국의 날씨를 감안하여 마루에 유리문을 달았고 온돌로 방을 따뜻하게 했다. 물론 안에는 다다미방이 있고 대청마루같은 복도도 있고 수도시설이 딸린 실내 화장실과 부엌이 있다. 지금은 주인이 살지 않고 기념관으로 사용하니 중앙에 마루를 중심으로 한 바퀴 돌면 실내와 소장품 구경은 하는 셈이다.  밖으로 나와 주위의 정원을 구경하는 것도 좋다. 일본인 지주 구마모토가 살 적에는 그가 일본에서 가져온 나무들로 일본식의 정원이었다가 해방과 함께 그가 떠나고 이 박사의 가족의 거처가 된 이후에는 한국식이 가미되었다. 집의 내부도 그랬다. 적산가옥엔 대게 일본 향나무와 남국풍의 잎이 넓은 나무들이 있기 마련이다. 거기엔 바로 얼마 전에 꽃이 진 고목의 만리향(금목서) 두 그루도 있었다. 말라 시든 노란 꽃에서 달콤한 향기가 아스라히 묻어났다. 내가 본 적산가옥에서 군산시내의 신흥동 가옥(국가문화재 183호)과 이영춘 가옥(지역문화재 200호)이 최고의 수작이었다. 알고보니 그런 적산가옥도 문화재로 등록하여 보존하는 모양이다.

생전 이영춘 박사의 진료 모습

 

 그런 기품있고 고즈넉한 분위기의 가옥과 함께 쨍하게 머리를 치는 것은 내가 몰랐던 고 이영춘 박사의 행적이었다. 울나라에서 처음으로 꼽는 한국의 슈바이처>. 구체적인 분야 별 업적과 함께 <예방의학의 선구자>와 <공중보건의 개척자>란 별칭도 있다. 당시 조선의 소작농민의 보건 위생과 질병을 치료하는 것부터 이후 의사와 간호사 양성 학교 설립과 치과병원, 아동과 뇌 전문병원을 설립했고 정부 정책에도 참여하여 한국의 보건위생 및 의료체계 전반의 기초를 입안했다. 대한적십자사 설립과 나라를 대표하여 국제의료기구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외 업적을 헤아리기 힘들어 다음 싸이트에서 일독하기를 권한다. ( 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45208  의사 출신으로 처음으로 그가 죽은 1980년에 정부에서 그의 업적에 대한 보답으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했다.

 

 

 

 

 

 친절한 문화해설사와 집안을 돌아 가며 설명을 듣는데 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이 박사의 행적을 요약한 액자. 군산에 정착하여 진료소를 개원하고 전반적인 실태를 파악한 그는 스스로 <민족독(民族毒)>이라 명명하고 퇴치하고자 했던 3대 감염병(기생충과 결핵 그리고  성병) 종합대책을 세웠고 거기에 일생을 바쳤다. 놀랍게도 당시 비위생적이고 비좁은 집에서 소작농 가족들이 밀집생활을 하고 성관계가 문란하여 성병이 유행했다는 것이었다. 유교사회 조선의 이면이 보이는 듯 씁쓸했다.

 

 

 

 

 

 

 

 

 

 군산 여행은 이것으로 완결된 듯한 깔끔한 마무리였다. 군산시내의 여러 곳을 둘러보며 여행을 끝내고 이영춘 가옥을 놓쳤다면 후회할 뻔 했다. 시내에서 떨어져 있으니 방문객도 적어 아무 때나 고즈넉한 고택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같고.. 고 이영춘 박사의 행적을 알게 된 것은 또 다른 횡재이고...

 

 

 그렇지만 군산은 이런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수려한 비단강(錦江)의 끝자락에 너른 강하구와 탁류(채만식)가 있고 그 양안으로 중후장대 산업의 군장국가공단이 있다. 또한 군산 옛 항구 앞에 김해의 기수 형이 열광하는 도요새 천국인 뻘섬 유부도가 있다. 그리고 거기서 나와 긴 새만금 방조제를 따라 나가면 그림같은 고군산군도(古群山群島)가 있고 그 섬 중에 선유도(仙遊島)가 있다. 말 그대로 원래의 군산이다. 여긴 다음날 행보다.

 

 거기까지 쓸려면 너무 길다. 이영춘 가옥으로 만족하자. K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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