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르던 가거도 탐조(探鳥)여행. 지난주 5박 6일의 여정 ...
작년 5월 초에 여길 가려다 현지 민박지(다희네)의 사정으로 못가고 대신 북쪽의 소청도엘 다녀왔다. 재작년엔 거문도엘 가려다 여수에서 안개 때문에 출항을 못해서 그 부근에서 떼우고 말았는데... 아직도 육지에서 먼 섬에 다녀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1. 섬 탐방
전날 밤 목포에서 자고 이른 아침 쾌속선으로 4시간 반 거리. 하루 두 번의 배. (우린 아침 8시 10분 출항) 목포에서 안좌도-도초도-흑산도-하태도-만재도를 거쳐 최종 목적지인 가거도. 흑산도에서 배로 2시간이나 떨어져 있고 섬 모양과 식생이 크게 다르지만 원래 이름은 '소흑산도'였단다. (일제가 행정 편의상 붙인 이름이란다.)
울나라 최서단 망망대해 절해고도. 예전 국어교과서에 '멀리 중국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 지역 사람들은 '대핑이'으로 발음하는 '대풍리(待風里)'도 나온다. 그 만큼 바람이 많고 파도가 거세 방파제가 견디기 어렵단다. 하여 매년 보수공사를 하고 가보니 지금도 그렇다. 이번엔 얼마나 튼튼하게 지을런지 방파제가 주변 경관을 해칠 정도로 두텁고 우악스럽다. 마지막 날 배를 타기 전 식당 주인의 설명으로는 1구의 대리 항구에 방파제가 생기기 전엔 폭이 넓은 아름다운 몽돌해변이었단다. 식당에 걸린 낡은 파노라마 사진이 그 옛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일행이 동시에 탄식을 했다.
망망대해 한 가운데 있으니 물이 깊다. 섬에서 몇 발짝만 나가도 수심이 몇 십 미터가 될 듯한 검푸른 물색. 섬 입구인 항구를 제외하곤 사방이 온통 깎아 지른 절벽으로 절해고도(絕海孤島)를 실감케 한다. 하지만 섬에 들어가면 섬 이름을 왜 '능히 머무를 수 있는 섬'인 '가거도(可居島)'라 지었는지 알 것같다.
울나라 섬에서 드물게 높은 639m의 독실산이 우뚝 솟아 있고 급경사로 사방이 절벽이다. (다음 지도에 독실산은 539m로, 네이버 지도에는 571m로 나오는데 실제 가보면 639m로 표기되어 있다. 아래 기사의 사진 참고http://san.chosun.com/site/data/html_dir/2022/04/26/2022042602077.html ) 그러니 농사 지을 땅이 부족해서 예전에 섬주민들은 주로 해산물만 먹고 살았을 듯. 바람 많고 파도가 거세선지 연안 양식장도 안 보인다. 가는 뱃길에 들리는 흑산도만 하더라도 많이 보였는데.. 그래서 민박집 밥상에 올라 오는 것 거의 다가 그 곳 자연산이다. 매 끼마다 볼락(열기) 구이와 우럭 매운탕이 나오고 기다려지는 저녁 상엔 광어, 돌돔, 해삼, 소라 회가 나왔다. 곰취나 참나물같은 산나물과 미역이나 톳같은 해조류 나물도 입맛을 돋구는 제철 반찬꺼리.
새를 보러 갔다가 잠시 들어가 본 독실산 능선 임도 옆 숲에선 육지 것보다 잎이 훨씬 넙쩍한 곰취와 산나물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독실산 8부 능선까지 우리를 데려다 준 민박지 아주머니가 잠시 동안 채취한 것이 한 소쿠리다. 그 옆엔 육지와는 완전히 다른 괴물 사이즈의 '섬천남성', '고사리', '갯강활', '해방풍', '전호', '암대극' '엉겅퀴' 군락지는 사뭇 원시적이다. 산 아래 한창인 해당화와 찔레꽃도 육지와는 사이즈와 때깔이 다르다.
민박지 식사 중에 만난 식물학도는 가거도가 울나라 육지에서 가장 먼 섬이고 드물게 높은 산이 있어서 수직으로 다양한 생태를 보이며 고유 식생이 잘 보존되어 있단다. 부근의 흑산도만 하더라도 낮은 산세에 침엽수인 해송 숲이 지배적인데 가거도엔 해송이 드물고 활엽수 숲이 짙어 후박나무와 동백나무가 가장 많고 간혹 팽나무, 너도밤나무도 보이고 그외 여러 관엽식물이 혼재 되어 있다. 키가 큰 활엽수 아래엔 다양한 나물류, 양치류와 넝쿨식물이 공존하여 숲의 밀도와 토양 활용도가 높아 빽빽하다. 하여 함부로 길을 벗어나 숲에 들어 갔다간 길을 잃기 쉽상이란다.
우리의 일정 즈음하여 그 곳에 머무런 이방인 중 어떤 일행은 섬 구경을 하고, 어떤 이는 등산을 하고, 어떤 이는 민박지 부근에서 내내 편히 쉬는 가족도 있고, 어떤 이는 나물을 따고, 또 어떤 이는 식물을 관찰하러 왔고, 그 중 새를 보러 온 일행은 우리 뿐이었다. 육지에서 멀고 주말 편도 배싻이 7만원이 넘어 대체로 몇 박은 기본이고 새를 보러 오는 사람들은 더러 한 달 이상 머문단다. 최서단 먼 섬인 만큼 물가도 꽤 비싼 편이다.
우리가 머문 민박지는 배가 들어오는 1구 대리에서 4km 정도 떨어진 2구 항리. 예전엔 15 가구 정도가 살며 자그만 학교까지 있었는데 지금은 달랑 3가구만 산단다. 동네엔 대부분이 오랜 기간 방치된 폐가. (이런 민가 부근에 새가 많다. 어느 때에 가도 새를 볼 수 있었다.) 그래도 그 동네 거주민 모두를 수용할 수 있는 경로당은 건재했다. 마침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경로잔치를 벌였다. 그곳에서도 홍어회는 기본이었다. 목포에서도 먹었던 홍어회 한 점도 거기서 얻어먹고...
그 먼 섬에서도 구석 구석 쓰레기가 많이 보였다. 울나라 연안 섬을 다니면 탄식을 한다. 정말 선진국 맞나 싶다. 내가 행정책임자가 된다면 철저한 대국민 환경 교육과 자연에 버려진 쓰레기 대청소를 상시로 실시하겠다는 생각이다. 그나마 육지에서 먼 가거도는 비교적 깔끔한 편이다. 그곳 해안 급경사 절벽 쪽에서 울타리를 치고 기르는 흑염소도 문제였다. 흑염소가 누빈 그 곳에는 늦봄에도 풀이 안 보일 정도로 황폐해져 있었다. 가거도가 그 곳 몇몇 주민의 이익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지속가능한 섬으로 남기 위해선 모두의 협조와 의식전환이 절실해 보였다.
목포로 돌아오는 배에서 잠시 내린 흑산도에는 입구부터 대규모 양식장이 어지럽고 그 사이를 뚫고 들어간 항구의 선착장 주변은 즐비한 상가로 이미 돗대기 시장이 되었다. 멀리 뒷산에는 봄가뭄으로 말라가는 해송숲이 황량해 보였다. 벌써 여느 연안 섬의 모습으로 변해 가는 흑산도의 모습에 기분이 씁쓸했다. 게다가 목하 정치권에선 그곳에 공항 건설로 갑론을박이니 울화증이 도질라 한다. 십여 년 전 조류단체와 지역 관광홍보 기관의 주선으로 간 흑산도는 내가 처음으로 '긴꼬리딱새' '흰날개해오라기' '제비딱새'와 '장다리물떼새'를 보고 설렜던 섬인데...
2. 탐조 재미
부산 친구따라 수 년째 새를 보고 있지만 항상 초보다. 자주 조류도감을 보고 대조를 하지만 헷깔리는 것은 여전하다. 생김새나 무늬도 여러 방향에서 봐야 하고 때론 울음소리로 혹은 날아가는 날개짓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부산 친구는 녹음된 새소릴 스피커로 틀어주며 새를 부르기도 한다.) 울나라 사 계절 텃새 50여 종과 여름과 겨울 철새 450여 종을 합해 도합 500여 종인데 그 중 대략 150~200여 종의 여름 철새를 보는 것이 이번 가거도 탐조여행의 주목적이다. 부산 두 친구의 카메라 장비가 빵빵해서 새 사진을 맡기고 나는 망원경을 휴대하고 주로 관찰하며 휴대폰으로 가까이 풀나무와 섬풍경을 찍었다. 여기 새 사진 대부분은 두 친구가 찍은 것이다.
큰 특징 중에 하나는 가거도가 절해고도이다보니 육지의 흔한 텃새인 참새, 까치, 까마귀와 오목눈이가 안 보인다는 거다. 하여 거기서 이 시기에 보는 대부분의 새는 주로 남중국과 동남아 등지에서 바로 얼마 전에 날아온 철새다. (빙고! 진국이다.) 철새가 섬에 내려 앉는 것은 육지로 가기 전에 악천후를 만나거나 체력이 달려 위험해졌을 때란다. (그럼에도 이동 중에 많이 죽는단다.) 하여 바람이 적고 날씨가 쨍하면 철새는 그냥 논스톱으로 육지로 가버린단다. 그래서 탐조가들은 섬에서 날씨가 나빠지길 기다려 많은 새를 관찰한단다. 어떤 비바람 심한 날엔 한 무더기의 철새가 곤두박질 치듯이 숲이나 풀밭에 떨어진단다. 전설적인 구라(?)로는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피해 처마 밑에서 비가 그치길 기다리는데 마당에 수 백 마리의 새 떼가 비처럼 떨어지는 것을 보았단다. 그것도 육지에선 보기 드문 귀한 새를 말이다. 그래서 서해의 섬에 갖 도착한 여름 철새는 초췌하고 매가리가 없는 것이 많다. 때론 사람이 다가가 카메라를 들이대도 고양이가 덮쳐도 피할 기력이 없는 새도 있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많이만 볼 수 있다면... 우리 일행은 일정 내내 너무 좋은 날씨를 불평했다.
그런 우린 쾌청한 날씨에도 70여 종의 새를 관찰했다. 대략 50여 종은 두 찍사 친구가 촛점을 잘 맞추어 선명하게 찍었고 나머지는 육안으로 보고 가슴에 담았다. '긴꼬리딱새', '진홍가슴'과 '섬휘파람새' '흰배뜸부기'가 그랬다. 그 깜찍한 자태를 살짝 보여주기만 하고 카메라 촛점 맞추는 사이 숲으로 사라진 놈들... 자세히 동정하기도 전에 방파제에서 휙 지나간 '흑로' 한 마리. 쩝... 그래도 같은 시간 소청도에서 새를 관찰하고 있던 강릉 출신의 탐조가는 휴대폰으로 새가 거의 안 보인다고 하소연하는 것에 비하면 얼마나 큰 다행인지.
맹금류 중엔 가까이서 비교적 선명하게 본 '붉은배새매'가 있고 그 밖에 하늘 높이 빙빙 돌던 '조롱이'와 '새매' 등이 있었다. 민박지 부근의 가장 흔한 깜찍하고 귀여운 여러 딱새(flycatcher) 종류 글고 숲과 풀밭에선 지빠귀, 직박구리, 파랑새와 섬촉새를 비롯한 여러 멧새와 밭종다리 글고 바위 쪽에선 울새. 포구 쪽에선 도요새와 선명한 흑백과 노랑의 할미새들. 그 중 아쉬운 것은 숲 속에서 가장 가까이서 예쁜 소리를 냈던 '섬휘파람새'를 제대로 못 본 것이다. 역시 휘파람으로 추파를 던지는 '히야까시'는 숨어서 하는 것이 제격인 모양이다. 또한 귀신 울음소리를 내는 '흑비둘기'도 그랬다. 원없이 실컷 본 것은 기력이 없어 보이지만 화려한 색조의 '황금새'와 여러 무리의 건강한 '밀화부리'와 '백로떼'. 그 중 육지에선 잘 안보이는 '흰날개해오라기'가 있었다. 그 외 내가 잘 모르는 여러 드문 새를 보고 탐조가 친구는 흥분했지만 초보인 내겐 그저 덤덤...
탐조가 친구는 '황금새'의 영명이 'Narcissus flycathcer'라 일러 주었다. 얼마나 예쁘면 '나르시소스'라고 이름 붙였을까. 새는 대체로 모양이나 색깔 혹은 먹이 습성으로 이름 짓는데 그런 예외도 있다. '긴꼬리딱새'도 그렇다. 영명으로 'Paradise flycather' 처음 본 탐조가 눈에 얼마나 황홀했으면 'Paradise'라 이름 지었을지. 역시 빼어나게 예쁜 것에 주어지는 예외는 어쩔 수 없는 듯... 그런 놈들이 울나라에 찾아 오는 여름철새다. 그 '긴꼬리딱새'는 민박지에서 멀지 않은 언덕에서 우리 바로 앞을 휙 지나가다 바위 뒤에 숨어 40cm가 넘는 긴꼬리를 흔들며 속을 태우다가 카메라를 들이대자 사라져 버렸다. 그리곤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도 이 놈은 요즘 부산 근처 연안 섬이나 해안가에서도 더러 볼 수 있으니... 다른 한편으로 긴꼬리딱새 숫컷은 봄철 찍짓기 시즌이 지나 여름철에 접어 들면 그 길고 화려한 꼬리가 떨어져 나가고 잘록해진단다. 마찬가지로 그리도 낭랑한 소리로 울어대던 뻐꾸기와 꾀꼬리도 더 이상 그 소릴 내지 않는단다. 봄과 청춘은 새한테도 사람에게도 짧기만 하고 아쉬운 맘은 어쩔 수 없다.
민박지에서 멀리 나가 새를 보다가 돌아와 점심을 먹는 것이 귀찮은 일이었다. 소청도에선 아침을 먹고 도시락을 싸가서 숲에서 먹고 온전히 하루 종일 새를 보기도 했는데... 암튼 섬에서 산길을 다니며 새를 보는 것은 제법 체력소모가 심하고 허기가 지는 일이다. 다들 저녁엔 그곳 부근에서 잡은 생선회를 곁들인 반주 한 잔 후엔 코를 골며 곤한 잠을 잔다. 열성적인 프로들은 이른 아침에 새가 더 많이 보인다며 해 뜨기 전에 벌써 한 바퀴 돌고 들어와 아침을 먹고 다시 나가 어두워져 새 보기가 힘들어져야 숙소로 돌아온다. 다들 일처럼 부지런히 새를 보러 다닌다. 연휴 기간인데도...
5박 6일. 다소 짧아 아쉽지만 그래도 가거도의 가치를 새삼 발견할 수 있어 좋았던 2022년의 봄 탐조. 적어도 내겐... 내년에 또 가자면 흔쾌히 가고픈 섬 가거도(可居島). 가히 머물 만한 섬이었다. K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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