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들면서 꼰대가 되지 않으려 노력해왔다.
직장에선 쿨한 상사로.. 은퇴해서 집에선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그래도 어느 꼰대 테스트 설문에선 가차없이 꼰대로 낙인이 찍혔다.
10개 항목 중 2~3개 정도만 해당되면 아닐 줄 알고 최대한 피했는데 1개만 있어도 꼰대란다.
해설을 보니 그래야 조심하고 노력하기 때문이란다. 어이 상실...
근대 「청년꼰대」라니...
나도 놀랐지만 이런 단어가 더러 사용된단다.
우리 젊은이들이 늙은이처럼 꼰대짓을 한다는거다.
글고 청년들 사이에서도 그런 말을 한단다.
1.
내가 아프리카 봉사활동에서 겪은 갈등도 어쩌면 그런 현상의 연장이 아닐까 생각한다.
파견지에 나가기 전 집체교육에서 선배 출신 강사는 자원봉사자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귀임을 하는 여러 이유 중 단원 간의 불화로 인한 갈등이 많다고 했다.
다소 의외였다.
어차피 자신을 희생하여 머나먼 타국에서 봉사활동을 하는데 왜 우리 단원 간에 갈등이 있는지 궁금했다.
막연한 추측으로 젊은 사람 주축의 단원 사이에 젊어서 발생할 수 있는 불화가 아닐까 하는 정도로...
나는 파견 기수에서 나이가 많은 편이었다. 거의 최고령에 속할 정도...
2~4인 1조가 되어 비교적 열악한 조건의 현지 공립 초등학교에 가서 기초교육을 하는데 여러 가지로 아쉬웠다.
젊은 단원들 사이에 꼰대가 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예기치 않게 오히려 정반대의 충격을 경험했다.
2.
교육태도부터였다.
현지 적응훈련에서도.. 현지어 수업에서도..
우리 젊은 단원들은 강박관념이 심했다. 점수를 잘 받아야 한다는...
거기다 다른 단원의 성적에 관심이 너무 많고 현지 학교에선 하지 않는데도 우리 젊은 단원들이 등수를 매겨 누가 1등이고 2등이고를 가렸다.
심지어 나도 모르는 내 성적을 알아내고 몇 등임을 알려주기도 했다.
참 대단한 정보력이었다.
시험 전엔 힌트 달라 조르고.. 인터뷰 시험에선 점수 후하게 주는 교사를 골라서 가고..
수업시간엔 수업내용과 관계없는 이상한 질문과 소란스러움...
현지교사가 "Quiet Please!!!"를 남발하도록...
수업 중 강사와의 교감을 통한 이해보다 고개 숙이고 일방적인 받아적기.
수업 후 동료와 노트를 비교하며 빠뜨린 것을 채워넣고...
시험 전엔 빠짐없이 핵심정리와 예상문제가 나돌고..
실력향상과 별 무상관인 줄 뻔히 알면서...
그곳 교장이자 주교사였던 분이 수업 중에 대놓고 말했다.
한국 단원들 수업하기가 무척 힘들다고...
대상 기수의 5주 과정 하나를 마치면 며칠 간 휴식을 취해야만 한단다.
그래도 그 활기넘치고 뻑쩍지근한 한국의 단원 기수가 빠져나가면 학교에 갑작스런 조용함으로 시원섭섭하단다.
숲이 많은 현지어 학교에서 한국 단원이 많으면 사람소리가 높아 그곳 야생동물들의 출몰이나 소리가 뜸한데
가고나면 다시 야생동물들이 찾아와 그 소리가 더 시끄럽단다.
거기 아프리카 따오기나 여러 야생동물들의 소리는 더러 무섭기도 시끄러울 정도였다.
그래도 이들을 입시지옥으로 내 몬 기성인의 잘못으로 인한 폐해겠거니 했다.
3.
무슨 유행처럼 답답할 정도의 철저한 규율준수도 있었다.
기껏 하루 2시간의 수업인데 그 이상의 시간할애를 허락치 않으려 했다.
그러니 수업 전에 당연한 수업내용 정리와 교수방법 글고 교보재 준비 등을 등한시했다.
현지 관리자가 강의계획서 양식이나 기타 참고자료를 줘도 그것을 활용하거나 제출할 의무가 없으니 무시했다.
2시간의 수업은 정해진 것이지만 그외 준비나 과외의 봉사는 의무가 아니니 강요할 수 없었다.
매일 수업 준비를 위해 미팅콜을 하고 미리 만나 협의를 했지만 그들의 불평이 많아 중단되었다.
수업이 끝나고 모여 평가하고 다음 수업을 준비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그것도 불과 몇 일 간만 지속되었다.
나중엔 그냥 학교에서 수업 직전에 만나고 수업 끝나면 바로 헤어지는...
학교 출퇴근 왕복에 1시간 정도가 걸린다면 수업 2시간 포함 평일 하루에 기껏 3시간 정도만 할애하면 나머지는 자유시간.
현지 관리자가 특별히 요구하는 보고서나 간섭도 드물었고 간간이 단원에게 필요한 현지 정보를 주거나 좋은 식당을 골라 단체회식을 해주는 정도.
나머지 시간에 대체 뭘 하길래 하며 관찰한 바로는 또래 단원끼리 만나 시내 중심가의 서양식 고급 카페나 식당에서 밥먹고 커피 마시는 정도였다.
혹은 단원 간 상호 숙소를 방문하며 같이 먹고 마시며 얘기하는 정도...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겠지만.
더러 자신의 앞가림을 못하는 어린 단원에겐 주변의 지원이 필요하기도 했다.
대체 20세 이상의 성인 자원 봉사자에게 그 무슨...
그런 그들에게 공정, 평등은 마치 기본 사명같은 가치였다.
'나한테도 똑같이'가 권리처럼... 주저함없이 당당했다.
규정은 잘 지키면서 자신에게 불공정하다고 여겨지는 규정에 대해선 거침없이 항변했다.
"그건 그거고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요."
그걸 경우가 바르다고 해야할지 영악하게 자기 것을 철저히 잘 챙긴다고 해야할지 혼란스러웠다.
4.
비교적 열악한 환경의 그곳 현지 공립 초등학교에선 정해진 수업 외 봉사자의 특별한 노력이 필요했다.
가능한 수혜자를 늘려야 하고 학습효과를 높이기 위한 그런 일반적인...
파견 전 집체교육에서도 그렇게 훈련받았다.
우리가 수행한 프로젝트를 기획한 현지 관리자는 좋은 팁을 주었다.
대부분 점심을 굶고 우리와 수업을 하는 아이들에게 깨끗한 물과 가벼운 다과를 제공하라는 것이었다.
실제 가서 보니 한창 성장기의 아이들이 정규수업이 끝나고 점심도 못 먹고 지쳐 맥이 빠진 상태.
수업 중 졸거나 아예 엎드려 자는 아이들도 있었다.
당연히 출석율도 낮고 들쭉 날쭉해서 일관성있는 수업과 학습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놀라운 것은 동료단원들은 현지의 사정상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별로 개의치 않은 태도였다.
나는 현지 관리자가 준 팁대로 그 곳 재래시장에 가서 양동이를 두 개 사고 아는 분을 통해 미군용 정수기를 빌려 왔다.
글고 수업 전에 미리 가서 물을 길어와 아이들의 손을 씻기고 정수한 물을 한 잔씩 마시게 했다.
다음엔 비스켓을 사서 하나 씩 주다 나중엔 도우넛같은 빵을 단체 구입하여 나누어 주었다.
당연히 효과 만점... 아이들이 생기가 돌고 출석율이 좋아지고 수업 분위기가 밝아 졌다.
우리 수업대상이 아닌 아이들까지 창밖에서 기웃대며 수업을 방해할 정도로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나중엔 수업 10분 전에 아이들이 미리 와서 교실 밖에서 줄을 서서 손을 씻고 물 한잔 씩을 들고 자기 자리에 앉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그리고 착석 후 나눠 주는 작은 빵 하나와 같이 먹는 것이었다.
물론 빵을 하나 더 먹으려고 소동을 벌인 적도 많았다.
아무튼 그것은 수업 전 일종의 세레모니가 되어 정착이 되어갔다.
봉사자의 현지어가 부실하니 수업 전 아이들 떠드는 소란 속에 출석부르기가 큰 난관이었는데 그 줄서기로 자연스레 해결되고 차분하게 수업 준비가 되었다. 아이들 얼굴과 이름 익히기도 수월했고...
처음엔 반신반의하던 현지 선생님들도 반색을 하며 우릴 적극적으로 도왔다.
나보다 젊은 교장, 교감 선생님들도 내겐 "Sir"라 부르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여 다른 학교의 조에선 여전히 서먹서먹했지만 우리 조는 그들의 집에 저녁식사 초대를 받기도 했다.
그런 효과 덕인지 다소간 활기를 띄기는 했지만 동료 단원들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과외 업무에 대해선 탐탁찮은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여전히 같은 조에서 공동으로 수업준비나 수업 후 평가는 하지 못했고 빵을 살 돈을 분담하지도 않고 그걸 주창한 내가 감당할 수 밖에 없었다.
그외 학부모 초청 설명회도 마찬가지였다.
행사 준비물 일체와 발표내용이나 행사 비용 부담은 오롯히 그걸 주창한 내 몫.
동료 젊은 단원은 행사 당일 수업을 대신한 설명회에서 행사장 데코레이션과 학부모들을 안내하고.
암튼 모든 봉사자에게 동일하게 지급하는 월 생활비를 절약하여 감당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래도 부족함없이 넉넉했다.
현지에서 교사로서 봉사하기에... 복장까지 따진다면 영락없는 꼰대가 될 것같아 포기.
근데 그곳의 현지 교사들은 젊거나 늙거나 정장에다 단아한 복장인데 우리 젊은 단원교사는 자유분방...
그래... 젊어서 그렇겠지. 글고 선진국 출신인데 머...
5.
어쩌면 그들은 젊은 혈기에 봉사 자체의 즐거움이나 보람보다 다양한 여러 사람을 사귀고 이국땅 여행에 관심이 더 많은 듯했고 내가 모르는 베니핏을 아는 듯했다.
그것을 위해 착실히 저축하고 그래서 모은 몫돈을 아낌없이 쓰는 것같았다.
우리 정부의 제도로 파견지에 보다 효과적인 원조협력을 위해 일정 명분과 형식만 갖추면 상당 금액을 지원받을 수도 있는데 그것으로 단원의 추가적인 노력과 시간이 소요되면 피하는 것같았다.
굳이 안해도 되는데 일꺼리를 만드냐는 식이었다.
예를 들면 방학 중 특별 체육행사를 하거나 가정방문으로 생활지원을 하는 것.
혹은 현지 학교에 부설 특활실같은 것을 지어주는 것.
아니면 우리 단원이 철수하면 그곳 선생님들을 지도하여 우리를 대신하여 지속하게 하는 것.
또는 학생 중 고학년을 교육시켜 우리의 역활을 대신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 아이디어나 계획을 제시하면 세부계획을 논의하기 전에도 젊은 단원들은 한숨을 쉬기도 하고 안색부터 어두워졌다.
암튼 그럼에도 당당하고 구김없는 우리의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에게 공정, 공평함이란...
나이들어 잠이 없어 일찍 일어나 가족을 깨우지 않도록 조용히 밖에 나가 산보를 할 수 밖에 없는..
그들에게 폐가 되지 않으려는 최선책?
속앓이를 하다 발견한 것이 암말없이 혼자 일을 벌이고 묵묵히 해내는 것이었다.
그들이 동조하든 않든지.. 동참하든 않든지..
그들이 스스로 판단하도록 맡기는 것이었다.
그렇게 체념 반 포기 반으로 마음의 정리가 되었다.
나는 그들 보기에 꼰대가 되지 않으려 애를 썼지만 어쩌면 내가 그들에게서 꼰대의 모습을 본 것이다.
이른바 「청년꼰대」다.
알고보니 요즘 청년 스스로도 자기들 중에도 그렇게 부른단다. 헐.....
K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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