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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또한 지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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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만사 균형이고 조화다.
시사

사방인 (四方人)

by 홀쭉이 2021. 9. 13.

역사 인물 중에 발탁인사의 대표 사례로 중국에는 강태공, 제갈공명이 있고 이와는 결이 다르지만 조선에는 퇴계가 있다.

 

강태공은 시골에서 은거하며 유유자적 하다 늙어서야 왕의 부름을 받고 재상이 되어 주나라 건국에 기여하고 나중에 춘추전국 시대 패권국인 제나라의 왕이 된다. (우리는 강태공하면 허연 수염을 기르고 낚시하는 시골노인으로 연상) 제갈공명도 깊은 산중에 은거하며 약초나 캐며 살고 있다가 유비의 삼고초려로 촉나라의 군사 총괄지휘자가 되어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조선에는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이 있었는데 이들 둘도 고향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관직에 나가진 않았는데 조정의 부름을 여러 차례 받았다. 특히 퇴계는 네 차례나 선조의 부름을 받았다가 거절하고 마지막엔 지금의 과천의 남태령을 넘어 서울 사당까지 갔다가 한강을 건너기 직전에 관직을 받을 수 없다고 편지를 써보내고 다시 낙향했다.

 

당시 이들 왕들은 현실정치가 답답하여 그들을 무척이나 필요했을 것이다. 현역 신하 중에선 찾을 수 없는 능력을 가진 인물로 인정하여 발탁하려 했을 것이다. 그것도 현역 신하의 많은 시기와 만류 속에... 근데 구중궁궐에 있는 있는 왕이 어찌 시골에 은거하는 그들의 능력과 인품을 알아보고 발탁을 하려 했을까? 요즘같이 인터넷이나 교통통신망이 발달한 개명천지도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현실적인 추론으로 우선 왕의 측근 신하 중에 누군가가 천거했을 것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 자신이 세상을 두루 이해하고 정세파악 글고 왕이 처한 상황을 잘 알고 출사를 했을 것이다. 한 마디로 준비된 상태로 현실 정치판에 나가 요직을 맡아 혁혁한 공로를 세웠을 것이다.

 

그렇담 한적한 시골이나 첩첩산중에서 그들은 도술을 부리지 않은 한 장안이나 궁궐에 친한 지인이 있어 끊임없이 세상물정이나 조정의 상황을 전달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그 지인의 천거로 왕의 부름을 받았을 것이다. 왕이 막연히 소문만 듣고 세상과 담을 쌓은 그들을 일거에 궁궐로 불러 중책을 맡길 일이 없을 것이다. 그 소문도 그들 자신이 스스로 갈고 닦으며 주변 사람과 나누지 않으면 알려질 리가 없고 더구나 구중궁궐의 왕이 알 턱이 없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천거되어 중책을 받고 별 시간적 지체없이 중대 국가사안에서 주도권을 잡고 해결책을 제시하고 밀어부쳐 성과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 것이 학문이 깊고 덕이 높다고 이룰 수 있는 일인가. 그러니 그들은 철저히 준비된 상태로 나갔고 그것이 오래된 구조적 병폐든 새로 시행하는 정책이든 평소 준비하고 계획했던 데로 바로 추진했던 것이다. 일단 나아가 머뭇거리다간 순식간에 정적들의 먹잇감이 되리라는 것은 뻔히 알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네트워크가 좋았다는 의미다. 이미 장안에 살고 있거나 관직에 나가 있는 친지나 아니면 동문수학한 선후배들과의 끈끈한 연결고리가 좋았을 것이다. 정중동(靜中動) 이다. 하여 그들의 한가로움은 겉으로 포장한 유유자적. 속으론 치열하게 세상을 읽고 제세(濟世) 방안을 골몰했을 것이다.

 

퇴계도 마찬가지다. 그가 남긴 여러 책들이 순수 학문(철학?)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조선시대 유교가 처세술에 가까운 것이니 기본적으로 세상을 등질 수가 없었다. 우선 당시 자신의 문하생인 류성룡(서애)과 김성일(학봉) 등이  왕(선조)의 최측근으로 고위 관직에 있었으니 세상물정이나 나라의 환란에 대해 소상히 알고 나름의 비책을 준비했을 것이다. 그러니 선조의 부름을 여러 차례 받았을 것이고...  어찌 시대의 중대 현안이 고매한 학문과 인품만으로 해결될 것인지.

 

오늘날 인터넷으로 사통팔달의 사방인(四方人)이 되어 중국의 강태공과 제갈공명 그리고 조선의 퇴계같이 준비된 인재(人材)가 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KW

 

PS. 밴드에 올린 다른 글

 

중국 고사에서 발탁인사의 대표적 예는 <강태공>과 <제갈공명>일 것이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오래토록 초야에 묻혀 있던 사람들이었다. 글고 미관말직도 아니고 왕의 최측근 최고 직위로 벼락출세를 한 것이다. 같은 사람으로서 그 배경을 추정해 볼 수 있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어찌 구중궁궐에 있는 왕이 초야에 있는 그들을 어찌 알고 찾아내고 발탁을 했을 까이다. 현실적인 추정으론 왕을 보필하던 신하 중에 누군가가 그들을 추앙하며 은밀히 천거했을 가능성이 크다. 아니면 높은 학덕이나 지혜로 장안에 소문이 파다했든지... 아무튼 초야의 은사(隱士)라기보다 사실은 좋은 네트워크가 있었다는 것이다.
글고 왕의 입장에선 이놈 저놈 모두 믿고 기댈 형편이 아닌 절박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절대권력이라도 급진적 권력개편에는 위험을 수반하기에...
글고 최고직으로 발탁되면 예나 지금이나 시기와 견제하는 대신들이 득실거리는데 어찌 그걸 이겨내고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하여 훌륭한 업적을 쌓았는가이다. 일단 절박한 왕이 전적으로 그들을 믿고 밀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초야에서도 이미 조정 형편과 나라가 처한 난관을 잘 꽤뚫고 대책을 준비해서일 것이다. 처음 발탁되어 입궐하면 기존 중신들의 따가운 눈총 속에 신속한 결단과 집행을 주저하면 한 순간에 그들의 먹잇감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미리 준비된 대안을 일사천리로 집행했을 것이다.
그들은 그냥 초야에서 낚시나 하고 산골에서 약초나 캐러 다니진 않았다는 것이다. 장안과 조정에 친구들이나 지인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알리고 상황파악을 했고 나름의 대안을 착착 준비했던 것이다. 글고 기회가 왔을 때 주저없이 붙잡았고 준비된 대책을 즉시 실행한 준비된 인재였을 것이다.
사방인(四方人). 오늘날 인터넷 시대에 그런 인재는 더 많이 있을 것이다. 착실히 준비하고 기회가 왔을 때 과감하게 결행하는 인재다. KW

 

강태공
삼고초려 (유비와 제갈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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