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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중국의 꽌시(关系)란?

by 홀쭉이 2021.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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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년 전 중국 현지법인에서 중국내수를 확대하기 위해 중국 수저우에 주재근무를 한 적이 있었다. 년 중 반복되는 전국의 주요 대리점 방문과 판촉행사나 전시회 참가... 전국의 주요 대리점을 한번 씩만 방문하려해도 1년이 걸리니 조금만 게을러도 한 해 두해 건너뛰기는 쉽상.

 

처음 거래처 채권목록에서 많은 악성 장기채권을 보고 깜짝 놀라 겁에 질렸지만 현지 책임자는 의외로 담담했다. 그래도 돈떼인 적 거의 없고 굳이 손실로 설정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어처구니 없게도 '꽌시가 중요한 사회이니 쉽게 남의 돈을 떼먹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체 어찌 그런 해석을? 그런 아전인수(我田引水)식 해석을 하는 책임자를 해임하려다 이후 거래처를 돌아다니며 현지 사정을 보니 이해가 되는 듯했다.

 

70개가 넘는 주요 거래처 중엔 부실하여 부도가 나는 곳도 있었지만 대체로 채권회수가 좀 늦어졌을 뿐이고 정 안되면 가져간 물건으로 되갚기도 했다. 놀랍게도 갑작스런 야반도주나 행방불명같은 경우는 없었다. 그들은 오히려 한국기업의 야반도주를 비웃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말한 꽌시(关系)가 다시 생각났다. 주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연줄과 줄서기, 혈연, 지연, 학연 등등... 하지만 그곳의 주로 시장바닥 사람들과 거래하다 보니 오히려 신용(信用)이란 말에 더 가까워 보였다. 꽌시를 중시하는 그들에겐 그것이 체면, 평판, 신용 혹은 업계의 이미지 정도로 이해되었다.

 

중국을 대표하는 혁신기업 '알리바바'와 '텐센츠'. 이들이 거대기업으로 성장한 바탕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속을 깊이 파고들면 '신용'이란 것이 있다고 본다. 아무리 혁신적이고 철저한 관리 시스템이 있고 인민 위에 군림하는 공산당 정부의 강압적인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하더라도 15억에 달하는 소비자가 그들을 믿을 수 없다면 그런 금자탑은 애초에 불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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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상품기획업무에서 원가를 담당할 때였다. 우리 한국공장에서 생산해선 채산성이 맞지 않아 중국의 실력있는 유망한 하청업체에서 구매하기로 하여 가격협상을 했다.  우리 오너 사장과 상대방 회사 사장이 주도한 구매회의.  구매자로서 갑인 우리는 우리 원가 기준에서 30~40%를 후려쳐서 목표구매가를 정하여 불렀다. 그랬더니 상대방 회사 사장이 화이트보드에 그 제품의 BOM(Bill of Materials, 부품목록)을 쭉 열거했다. 그러면서 우리한테 그 부품을 세상에서 가장 싸게 살 수 있는 가격을 불러 보라고 했다. 하여 구라를 더한 가격을 쭉 열거하고 합산을 했다. 글고 그 제품을 만들 수 있는 현지의 제조비용(인건비+제반생산비용)을 더해서 제조원가를 만들었다. 그랬더니 우리가 제시한 목표가에서 약 20% 정도가 싼 가격이 나왔고 그것이 그들이 우리한테 팔 수 있는 가격이라고 했다.

 

졸지에 우리의 구라가 들통이 나버렸다. 우리 사장은 얼굴을 붉히며 사과했고 그들을 신뢰하여 계약을 했다. 그 회사는 지난 수십년간 전세계 PC 제조사가 구조조정되는 와중에도 살아남아 업계의 대표주자로 우뚝 섰다. 그런 '꽌시'로 맺어진 파트너는 어려움에 처한 우리회사를 여러 차례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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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내수를 하며 놀란 것은 그들은 단일제품에 그레이드 별 라인업이 무척 많았고 제조사 또한 그레이드 별로 다양했다. 우리도 선진국 대열에서 상, 중 정도로 만들고 구색을 갖추었다면 그들은 대략 10 등급으로 나누어 다양한 소비자를 상대로 판매했다. 우리 기준으로 그 중 절반은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은 조악한 제품. 그 중 재생품도 있었다. 그러니 부품시장도 발달했고...

 

한국에서 유수 브랜드와 유통에서 그들 중국 현지업체와 흥정하는 방식은 대체로 중.상 정도에 해당하는 제품에 하품의 가격을 요구한다. 다른 하품 제조회사와 가격을 비교하면서... 이러다 보니 가격협상과 구매계약을 한 방에 잘 정리하고 나중에 당초 설정한 품질 이하의 제품을 받는 일이 왕왕 있다. 요즘 울나라 식당의 김치가 그렇고 단무지가 그런 것이다.

 

그들에게 항의하고 따지면 너무도 태연하게 그럼 이 가격에 이런 제품을 사가라고 내놓는다. 애초에 우리가 너무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우겨서 마지못해 계약했다는거다. 이런 낭패를 몇 번 당하고 나면 학을 떼고 거래를 끊거나 상호 합리적 수준으로 가격협상과 품질관리를 하는 것이다. 소위 중국식으로 길들이기다. 서양식 합리가 아니지만 나름 오랜 관행에 의한 시스템이 있고 그 바탕엔 믿음 즉, 신용(信用)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15억 인민 혹은 소비자를 움직이게 하는 것에는 공산당의 압제나 제도가 있지만 그 바탕에 긍정적 의미의 '꽌시' 즉 신용이 없으면 안 될 것이다. K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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