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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셀러니(신변잡기)

9월의 꽃

by 홀쭉이 2021. 9. 14.

그 패티킴의 '9월의 노래'를 들으면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도 한 줄기 차가운 바람이 지나 가는 듯 등골이 서늘해진다. 그 9월의 바람이 불면 피는 꽃들이 있다. 야생으로 코스모스, 국화, 구절초, 쑥부쟁이, 벌개미취... 등 주로 국화과의 꽃들이 많다.

 

1. 꽃무릇

 

그 중에 예전 파초를 대신하여 절꽃이 된 붉은 꽃무릇이다. 사실은 일본이 원산지이다. 더러 산사(山寺)에 심어 그 씨가 퍼져나가 호젓한 산길에서도 보이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들어온 외래종(外來種)이다. 내가 처음으로 붉은 꽃무릇을 본 것은 전라도 함평 용천사에서 였다. 먼저 용천사의 꽃무릇이 유명해지자 그 산(불갑산) 넘어 불갑사에서 대규모 꽃무릇 공원을 조성하고 축제까지 열었다. 그 다음엔 고창 선운사에 더 큰 꽃무릇 공원을 조성하여 대유행을 예고했다. 지금은 전국의 산사를 대표하는 절꽃이 되어 붉은 꽃무릇 천지가 되었다. 서울엔 북한산 자락의 거의 모든 산사 (길상사, 화계사, 진관사 등)에 심어 놓았다. 오늘 우리집 화분에도 한 송이가 피었다.

 

우리 토종의 아종은 일명 '석산(石蒜)'으로 상사화(相思花)로도 불린다. 상사화는 꽃과 잎이 만나지 못하여 서로 그리워 한다는 의미지만 사실 매화나 벚꽃, 개나리, 목련 등 대부분의 봄꽃들도 그렇다. 추론이지만 '상사화'는 그런 꽃들의 대명사가 아닐지.

 

암튼 9월 중순 지금 시기에 일제히 피는 붉은 꽃무릇은 길다란 연초록 꽃대에 방사형 붉은꽃이 극적인 대비효과로 강렬하다. 그 강렬함도 단 1주일이다. 1년을 기다려 무성한 잎이 갑자기 스러지고 텅 빈 땅에서 가늘고 긴 꽃대가 거의 1m 정도로 올라와 카다란 방사형 꽃을 터뜨린다. 꽃이 지는 것도 드라마틱하다. 빨간 꽃잎과 꽃술이 검게 타들어가면 연초록 꽃대는 힘을 잃고 옆으로 비스듬히 넘어가고 꽃이 완전히 까맣게 타면 산발한 머리가 되고 땅에 스러진다. 그리고 열흘이 지나면 거기서 진초록의 난초같은 잎이 올라온다. 그 잎은 푸른 상태로 월동을 하고 내년 장마 때까지 무성하게 자란다. 그리고 그 무성한 잎이 갑자기 스러지고 여름을 땅속에서 뿌리로만 지낸다.  9월이 되어 꽃대를 올리기 전까지. 이렇게 드라마틱한 꽃은 없을 것이다. 그리 대규모로 무성한 꽃무릇 단지를 조성해도 향기는 없다. 단지 눈을 즐겁게 할 뿐. 

 

서울 성북구 길상사의 꽃무릇
울집 베란다 꽃무릇

 

2. 만리향

 

그리고 '만리향(萬里香)'이다. 금목서와 은목서라 불리는...  먼저 금목서가 9월말 정도이고 은목서가 10월 중순부터 꽃이 핀다. 세상 꽃 중에 이렇게 진한 향기를 내뿜는 넘이 또 있을까. 오죽하면 만리향이겠는지.

수년 전 중국의 수저우(蘇州)에서 주재 근무할 때 9월 말부터 10월까지 도시 전체가 만리향(은목서)의 향기에 취했다. 중국 도시의 아파트는 정원을 잘 꾸며선지 'xx화원(花園)'으로 불렀다. 만리향을 거기선 '귀화(貴花)'라 부르며 많이 길렀다. 향기가 얼마나 강하든지 더러 머리가 아플 지경...  지금 생각하면 참 배부른 푸념...

 

그리고 그 만리향이 필 때면 수저우의 많은 호수 중 '양청호'에서 잡히는 민물 털게인 '팡쉐' 철이 된다. 오동통한 게살이 맛있어 한 때 황제 진상품이어선지 아주 비싼 값에 거래된다. 게 특유의 징한 냄새 때문에 깨끗이 씻어야 하지만 그 비싼 '팡쉐'를 먹었다는 자랑으로 냄새를 지우지 않고 다니기도 한단다. 그래도 활짝 핀 수저우의 만리향(은목서)의 진한 향기가 호수와 운하의 도시 수저우를 가득 채우니 향기롭기만 하다.

 

십 여년 전 초 가을에 변산반도 내소사에 갔을 때 초입에 한 그루의 만리향(금목서)이 만개하여 내뿜는 향기는 절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내 키만한 작은 한 그루만의 향기로도 충분했다. 그리고 군산의 일제 적산가옥에 있는 키가 크고 우람한 고목의 만리향. 그 중 옥구 들판 초입의 이영춘 박사 생가의 정원에 있는 만리향은 압권이었다. 이미 계절이 지나 시든 꽃잎을 비벼 냄새를 맡으니 아스라히 그 진한 향기가 퍼져 나왔다. 글고 경남 불광산의 장안사다. 가을 단풍 속에서도 여전한 만리향(금목서)의 꽃향기는 온 절을 휘감고 있었다. 아예 만리향으로 방문객을 맞이 하겠다 듯 온통 도베를 했다. 사찰 마케팅의 일환이다. 어쩌면 지나친 향기가 스님의 정신건강을 해치고 수행을 방해할 수도 있을 것같았다.

 

지금도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 부산 황령산 아래 처가 바로 앞집에 크고 무성한 만리향(금목서)이 있었다. 그 길로 들어서면 먼저 반기며 툭 터지는 꽃향기. 거실 창문을 열면 바로 눈앞에 보이는 울창한 그 나무엔 새도 많았다. 직박구리, 참새와 딱새도... 하지만 몇 년 전 새 주인이 들어오면서 나무가 너무 울창해서 그늘이 짙다고 여러 번의 전지 끝에 베어 버렸다. 텅 빈 그 자리... 그렇게 설레던 꽃향기도 사라지고 말았다. 

 

암튼 9월에 눈으로 즐거운 붉은 꽃무릇이 있고 향기로 만끽하는 만리향 금목서가 있다. 이어 10월엔 또 다른 만리향 은목서도 있다. KW

 

만리향 (금목서)
만리향 (은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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