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를 따라간 여행
2009.12.06(일)
부산친구들과 벼르던 가을여행을 차일피일 미루다 겨울의 문턱에 들어서야 갈 수 있었다. 작년에는 11월초쯤 순천만과 섬진강일대 그리고 주남지를 거쳐 마무리를 하였다.
올해는 포항에서부터 동해안을 따라 강릉까지 가보잔다. 무얼 테마로 할까 하다 겨울에 북극에서부터 시베리아, 만주 등지에서 동해안으로 월동을 위해 찾아오는 주로 바다오리류의 철새를 보기로 했다.
기온이 갑자기 떨어져 하얗게 서리가 내려있었다.
아침 첫 비행기로 김해공항에 내리니 친구가 픽업을 하고 바로 포항을 향해 달렸다. 가는 길에 양산에 들러 상원이도 태웠다.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경주를 지나 출구를 놓치는 바람에 건천 방향의 산줄기에 치골이 선명히 드러난 ‘여근곡’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최근 인기있는 드라마 '선덕여왕'과 그녀의 여근곡 전투 설화와 함께 신라인의 개방적인 태도와 치밀함에 대해 야설을 했다.
만추의 여근곡 (퍼옴)
거기서 안강 방면으로 가는데 ‘옥산서원’이 눈길을 끌었다. 골짜기로 들어서는 시골논밭에는 버~얼건 감이 주렁 주렁 달려있었고 치기를 이기지 못해 기어이 차를 세우고 기수형은 감나무에 성큼 올라 홍시가 다된 감을 여러 개 따서 그 달콤한 맛을 보았다. 지나치는 시골집 앞에는 노랗게 잘 익은 모과가 따지도 않고 떨어져 있어 몇 개를 주워 담아 차안에서 여행 내내 상큼한 향기로 코가 즐거웠다.
옥산서원과 자계천 (퍼옴)
서원 본관 (퍼옴)
옥산서원… 예사롭지 않은 곳이였다. 가서 보니 조선중기 당파 정쟁으로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한 이언적선생을 기려 헌액한 서원이란다. 초입부터 노송(老松)사이 길을 지나고 계곡을 지나고 맑고 깨끗한 자계천 위로 서원이 나왔다. 조선시대 서원이라야 규모는 아담하지만 일대의 젊은 자제들을 모으고 지역인재를 양성하던 요람이었다. 그리고 서원에서 계곡을 따라 조금 올라가니 이언적선생의 사저인 ‘독락당’이 나왔다. 선생의 바램대로 혼자 은밀한 즐거움을 누리자 했는지 옥계 옆으로 운치있게 놓여있었다. 제법 규모가 있고 아직도 종손이 살며 옛집 체험을 위한 민박도 받고 있었다. 마당에는 수령이 몇백년이나 된 토종향나무가 하늘을 향해 휘휘 감고 서 있었다.
독락당 솟을대문 (퍼옴)
독락당 정자(자계천) 퍼옴
독락당 정자 (자계천앞), 퍼옴
독락당 토종향나무 (이언적선생의 곧은 절개를 보는듯), 퍼옴
독락당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니 통일 신라시대 절터가 나오고 그 가운데 13층 석탑이 세련된 모습으로 우뚝 서 있었다. 평소 보지 못하던 균형잡힌 아기자기한 모습이라 다가가니 입간판은 국보 40호 란다. 그 모습으로 무려 천년이 넘도록 버텨 우리에게 모의젓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웬 횡재…
정혜사지 13층석탑(국보40호), 퍼옴
석탑을 지나 좀 더 올라가니 서원이 하나 더 나왔지만 최근에 증개축을 했는지 옛맛이 없어 횡하니 지나쳤다.
안강을 지나 기계천과 형산강 합수지점의 양동마을을 지나고 포항시내로 접어들었다. 철강단지가 즐비한 산업단지를 지나 구룡포로 달려갔다. 호미곶도 지났다. 호미(虎尾)란 조선중기 김정호가 한반도의 최동쪽임을 확인하기 위해 여섯번이나 발품을 팔아 지은 이름이란다. 그의 지도에서 한반도는 만주와 중국대륙을 향해 포효하는 형상으로 그려져 있다. 중국에 대한 사대(事大)로만 인식된 조선시대에 중국을 향해 호기를 드러내는 그의 기상이 가상했다.
사실 우리가 굳이 거길 가고자 했던 것은 점심요기로 싱싱한 참가자미회나 과메기를 한점 먹어보기 위해서였다. 바닷가 여기 저기를 기웃대다 결국은 포항제철이 멀리서 보이는 식당에서 도다리 물회를 먹었다. 씹을수록 달콤한 회살맛이 느껴지는 내가 먹어본 것 중 최고로 맛있는 물회였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구룡포 해안가를 굽이 굽이 돌아가는데 바람도 세고 파도가 제법 높은데도 해안가에서 ‘검은목뿔논병아리’ 한쌍이 자맥질을 하고 있었다. 그 이후 울진으로 올라가는 길에 지천으로 앉아 있는 갈매기 사이로 여러 종의 오리류 철새를 볼 수 있었다. 울진에 도착하니 날이 저물었다. 왕피천 계곡을 따라 불빛 하나 보이지 않은 청정계곡 위로 별이 쏟아질듯 반짝이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왕피천을 따라 민박을 찾았지만 마땅치 않았다. (모두 노인네들만 고개를 빼꼼 내밀뿐이였다.) 내심 울진읍내에서 시골아낙네들의 술시중을 받으며 노래나 한번 해볼까 하는 기대감에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매번 그렇지만 이번에도 포기를 해야 했다. 어쨌던 우리끼리나마 곤드레 만드레 거기다 목청껏 노래 몇가락… 새벽 1시가 되어 근처 모텔에서 곤죽이 되어 자고… 아침에 운좋게 맛있는 복국을 먹고 강릉을 향해 달렸다.
해안가 길로 이름을 알 수 없는 오리류와 아비, 가마우지 등이 우리의 발길을 붙잡았고 친구들은 망원렌즈로 당겨 사진에 담았다. 강릉을 지나 경포호로 들어서서 우선 요기를 하고 경포호 배후습지에서 우아한 큰고니(백조)와 가창오리, 흰뺨 검둥오리, 청둥오리, 논병아리 등 주로 오리류 철새를 볼 수 있었다. 나중에 해안을 한 바퀴 더 돌고 오니 ‘흰비오리’도 와 있었고 비교적 가까이서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하얀 몸체에 날렵하게 뒤로 날리는 뒷머리 깃털 그리고 선명한 대비의 검은색 눈테두리와 반짝이는 눈망울… 제일 기분 좋은 발견이자 수확이였다.
동해시 근처의 갯바위 낚시
경포대 해수욕장
경포대 해수욕장 옆 갯바위를 때리는 파도 (바람이 장난이 아니였다.)
경포호 습지의 흰비오리 (왜 한마리만 있을까?)
경포호 습지의 청둥오리와 가창오리떼
오리들 날다.
큰고니 우향우!
큰 고니 편대 착륙
큰 고니 편대... 수상스키를 타다.
도란 도란... 반상회를 하는 갑다.
우리는 언제나 함께 해요.
거기서 경포대 해수욕장과 그 일대를 돌아다니며 혹, 뭔가 새로운 종(種)을 기대했지만 바람도 세고 날씨가 차서 오래 서서 관찰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럭 저럭 날이 기울었다. 친구들은 나를 원주까지 데려다 주고 중앙고속도로를 따라 부산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우리의 늦은 가을여행은 끝이 났다.
경포호 습지의 석양
K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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