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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돌아댕기기)

캄보디아 뜨내기_19 (자연과 사람 그리고 까르마)

by 홀쭉이 2023. 12. 2.

캄보디아 뜨내기_19 (자연과 사람 그리고 까르마) --- 11월 19일 쓴 글임

 

여기 온 지도 벌써 6개월 째다. 후덥지근한 여름 초입에 와서 지금은 아침 저녁으로 청명한 하늘에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분다. 그래도 한낮이면 30도가 넘고 오후엔 소나기가 내리고 여기 처음 왔을 때 피어있던 '챔파'와 '부겐빌리아'는 6개월이 지나도록 아직도 여전히 피고 진다.

 

한국에 있는 우리 형제 중에 둘이 주로 동남아에서 온 외노자들을 고용하여 사업을 꾸려 나갔다. 작은 형은 강원도 농장에서 필리핀 노동자를 글고 경남 사천의 대기업 조선사의 하청업체를 운영했던 동생은 베트남, 필리핀, 중국 등지에서 온 노동자를 고용했다. 큰형님이 거래했던 축산 농가에서는 주로 예전에 유목으로 살았던 서아시아 출신의 외노자가 많았단다. 또한 주변 지인들이 운영하는 중소 규모의 사업장에 외노자가 흔해서 그들은 우리 사회에 필수 인력이자 중요한 노동력이 되었다. 그렇게 태생이 다른 이질적인 사람들이 섞여 살며 무수한 갈등과 혼란을 겪으며 서로에게 스며들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그들은 서로에게 대체 이해가 안되고 동화되기 힘든 장벽이 있고 갈등은 여전하다. (식당을 하는 지인은 눈치없는 외노자 종원업 땜에 속병이 날 정도란다.) 글고 나 또한 여기 반 년 남짓 살며 그 답답함에 때론 미칠 지경이 되기도 하고 당장 때려 치우고 귀국하고픈 맘이 굴뚝같을 때가 있다. (지난 주에도  여기 중학교에서 느닷없이 1주일을 앞당겨 방학을 맞았다. 그것도 금요일 오후에 수업 마치고 나가는데 슬쩍 알려줬다. 1주일 간 방학이 길어져 더 쉴 수 있다는 기쁨보다 그런 변덕과 일방적인 통보에 더 원망스럽고 화가 치밀었다.)

 

예정에 없던 방학을 당하여(?) 갑자기 여유가 생긴 나는 마침 몇 주전부터 알고 지내는 젊은 캄보디아 친구와 주변 유적지 및 메콩강을 따라 인근 시골을 수 일간 다녔다. (그 청년도 코로나 이전에 이미 한국에 5년간 일했었고 내년 3월에 다시 한국에 갈 예정이다.) 그와 함께 내가 사는 도시(깜퐁짬)를 벗어나 시골길을 달리며 여기 자연과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며 큰 각성과 함께 내 속의 분노를 달랠 수 있었다.

 

발견과 각성 (자연과 사람)

 

1. 자연.   우리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크고 작은 도로와 시골 비포장 도로를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달리는 자유가 있는 것같다. 새삼 오토바이를 갖고 싶다. 처음엔 몇 개의 주변 힌두교와 불교 사찰들을 보고 다음엔 그의 고향과 주변 농촌길을 달렸다.

 

메콩강의 누런 물결이 넘실대는 다리를 건너 그가 아는 사람이라며 정차한 수박농장을 둘러 보고 '속노란수박'을 한 덩이 샀다. 놀랍게도 한쪽에선 여러 인부를 동원하여 수확을 하고 농장 가운데 길 반대쪽에선 새로 씨앗을 심은 수박 모종이 자라고 있었다. 아직도 가끔 세차게 내리는 소나기에 어린 싻이 유실되지 않도록 비닐을 덮어 놓았다. 수박이야 대표적인 열대성 작물로 한 여름에만 자라지 않는가. 고위도 북반구에선 겨울 초입인데 지금 여기선 그냥 노지에서 수확도 하고 그 옆에서 새로 씨앗을 심어 싻을 튀우는 것이다. 새로 심은 것들은 아마도 한 달 후엔 12월 중순 경이면 수확이 가능할 것이다. 대체...

 

수박을 수확중인 농장.
속노랑 수박이다
왼쪽에선 다 익은 수박을 수확하고 오른쪽에선 인제 싻이 돋아나 자라는 어린 수박이 있었다.

 

그 농장을 나와 메콩강을 따라 북쪽으로 시골길을 달리는데 같은 밭에서 한쪽엔 완전히 다 익어 키가 큰 옥수수가 늘어서 있고 바로 옆에선 새로 심어 무릎까지 올라온 푸른 옥수수가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얼마 전에 수확했는지 밑둥이 조금 자란 빈 논이 있고 또 그 옆에는 인제사 한창 자라는 벼가 싱싱하게 푸르렀다. 물이 가득한 그곳에선 개구리 우는 소리가 왁짜지껄 했다.

 

우리가 학창시절 배웠던 '인문지리'에서 벼의 2기작, 3기작이다. 단지 벼만 그런 것이 아니다. 다수의 열대 과일과 채소도 그렇다. 아무리 둘러봐도 비닐하우스나 별 다른 시설 농가는 보이지 않는다. (버섯농장엔 지붕을 덮어 놓았을 뿐이다.) 특별한 농법도 돈을  들여 지은 시설도 아니다. 그냥 자연이 그걸 가능케 하는 것이다.

 

한쪽 논에선 이미 수확했고 그 옆에는 수확 직전이고 최근 볍씨를 뿌려 어린 모가 자라는 논이 같이 있다.
수확기에 접어든 풍성한 들판
시골길에 아침 저녁으로 가축이 길을 따라 이동한다. 흰소가 많다.
같은 시기에 여긴 한창 자라는 벼가 있다.
건기의 벼는 씨를 뿌리거나 그냥 알곡이 떨어져 저절로 자라는 논이 흔하다. 밀식을 해서 소출이 적어 가축의 먹이로 사용하기도 한단다.
뒤에 보이는 옥수수는 다 자라 수확기다.
여기 밭에는 옥수수 모종을 심어 인제사 뿌리를 내리고 자란다.

 

지난 주에 강원도 형님은 계곡에 얼음이 제법 두껍게 얼었다 하고 농장의 겨울 채비를 끝냈다고 했다. 어제는 서울의 울집에선 첫눈이 내렸다고 사진을 보냈다. 작금 고위도의 한국에선 모든 활엽수는 탈색하여 낙엽이 졌고 단단한 목질의 앙상한 가지로 월동을 할 것이다. 야생 짐승도 마찬가지다. 이미 겨울철새가 왔을 것이고 동면하는 짐승들은 깊은 굴을 찾아 긴 겨울을 지낼 것이다.

 

근데 고위도의 한국과 달리 여기선 야생짐승의 동면이 없단다. 산짐승도 그렇고 개구리같은 수서 양서류와 작은 벌레나 곤충도 그렇단다. 요즘 한국의 겨울에도 따뜻한 실내에선 모기가 설치는 것처럼 기온이 그렇게 내려 가지만 않으면 굳이 겨울잠을 자지 않아도 되는 모양이다. 하기야 코끼리가 동면을 한다는 얘긴 들어본 적이 없는 것같다. (그래서 아마도 작년 11월 중순 경에 태국의 국립공원에서 어린 곰과 대왕도마뱀을 본 것같다. 코끼리나 물소도 마찬가지다.)

 

소나기가 쏟아져 집 앞이 물바다가 되었다. 여름엔 흔한 현상
처음 왔을 때 6월초부터 지금까지 계속 피고지는 챔파꽃

 

여기 자연에서 식물들도 마찬가지다. 모든 활엽수들이 아직도 싱싱하게 푸르다. 물론 12월부터 다음 해 3월 정도까지 건기엔 물이 부족하여 풀들이 누렇게 말라 시들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에선 겨울을 넘기지 못하는 일년생 초본류들이 여기선 다년생이 많단다. 열대고추, 아주까리나 목화 등도 그렇단다. 줄기가 단단히 목질화되어 해를 넘겨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단다. 아직 여기선 못 봤지만 예전 탄자니아에선 아주까리가 10m가 넘게 자라 속은 비었지만 딱딱하게 목질화된 것을 볼 수 있었다. 야생 숲 속에 간간이 있는 땡초 하늘고추도 그랬다. 열대지방 나무엔 나이테가 없거나 아주 옅게 나타난단다. 고위도 북반구의 겨울처럼 휴지기가 없이 연중 내내 생장하기  때문이다.

 

배롱나무다. 우리보다 잎과 꽃이 크다
이웃집 마당의 코코넛 트리
깜퐁참 청소년센터 앞의 챔파꽃
이웃집 정원의 바나나. 항상 열려 있는 것같다.

 

아무튼 이런 자연환경에서 사람들의 기본적인 의식주는 풍부해 보인다. 특히 먹거리는 그렇다. 사시사철 곡류나 과일과 야채가 풍성하다. 별 달리 시설농가에서 재배한 것도 아닌 그냥 노지에서 재배되기 때문이다. 요즘은 감귤과 비슷한 과일과 엄청난 크기의 '잭푸르트'가 제철이란다. (생각보다 참 맛있는 과일이다.) 망고는 다 자라 주먹만 하지만 아직 푸르고 내년 2월 쯤 되어야 충분히 숙성되어 맛있단다. 바나나는 그냥 사계절 과일같다. 아래서 익어면 잘라먹고 그 위로 다시 열려 익어간다. 그래서 연중 언제봐도 바나나는 열려있고 익은 것은 골라서 따먹으면 된다. 그 곳 원숭이 마져 익지 않은 바나나를 주면 던져 버린다.  

 

개도국에서 농업 외 대체로 가장 먼저 시작되는 산업은 옷가지를 만드는 봉제산업이다. 그래서 여기엔 옷도 다양하고 값은 싸며 질은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다. (제발 헌옷 좀 보내지 마시라.) 사계절 나오는 농산물은 경작면적 대비 인구가 적은 편이라 많은 양을 수출한다. 캄보디아 농산물의 주 수출국인 중국이 수입을 중단하면 캄보디아 농가는 폭망한다. 시골의 집도 여기 기후에 알맞게 크게 지어 1층은 필로티 구조(기둥)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사람들은 주로 2층에 기거한다. 인구 대비 땅이 넓으니 집도 크고 시원시원하다.

 

시골 농가에 흔한 가옥구조다. 기둥이 한결같이 사각형인 것은 뱀이 기둥을 감아 올라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란다.

 

 

2. 사람.    실제 그런지는 모르지만 캄보디아는 공식적으론 불교도가 95%인 나라다. 오래되거나 새로 지었거나 불교 사찰이 정말 많다. 사찰에 딸린 학교도 많다. 부지가 넓고 건물이 많으니 불교계의 부동산 자산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여기 불교를 흔히 남방불교, 상좌부불교 혹은 소승불교라고도 부른다. 인도와 비슷한 위도에 위치하여 고대부터 인도문명권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여길 인도차이나 반도라 부른다.) 제반 문자나 종교, 정치 제도 등이 고대 인도에서 전파된 것들이다. 인도에서 불교가 힌두교 속에 존재하듯이 여기 불교도 힌두교와 구분이 잘 안된다. 그들의 국기에도 그려져 있는 씨엠립의 '앙코르와트'도 힌두교 사원으로 짓다가 이후 불교가 득세하자 부처상이 세워진 것이다. 하여 관련 자료를 찾아보면 앙코르와트를 힌두.불교사원으로 소개한다. 씨엠립에는 초기 힌두교 사원이 여러 개 있는데 (대표적으로 '반데스라이', '바콩', '룰루오스' 사원 등) 건축양식이 비슷하니 이방인에겐 구분이 잘 안되는데 가이드는 부처상이 있으면 불교사원이고 없으면 힌두교 사원으로 보면 된다고 한다. 심지어 힌두교 여러 신들의 부조나 상이 있는 곳에 부처상이 있는 사원도 보인다. (작년에 태국 치앙마이에 있는 '도이수텝' 불교사원에 들렀는데 입구에 브라만과 크샤트리아 상이 있었다.)

 

여기 깜퐁참 주변에도 천년 고찰인 '왓 노코 바쩌이'가 있고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프놈 스라이'가 있다. 부지 면적이 무척 넓고 절집과 탑이 많은 대찰이다. 거기서 수행하는 스님들은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하다. 그들은 예전 그대로 초기 불교 수행자의 복장으로 도심이나 거리에서도 자주 보인다. 아침이면 공납물을 받듯이 줄지어 사람들의 공양을 받고 낮에도 가게나 집을 방문하여 탁발을 한다.

 

프놈 쓰라이에서 메콩강 방향으로 쳐다본 전경
프놈 쓰라이
반 노코 바쩌이 (천년 고찰이다)
크라체 시내에 있는 고찰
메콩강변의 한쩌이 고찰
한쩌이 고찰 (아마 부처와 가장 먼저 득도한 5대 도반)
프놈 쓰라이 산 꼭대기에 있는 기도처 (아래로 경치가 일품이다.)

 

절에서 보이는 스님들은 수행자의  모습보다 그냥 절집에 사는 일반인같은 느낌을 준다. 때론 독경소리도 들리고 예불하는 모습도 보이지만 그들이 '견성성불(見性成佛)'을 위해 치열하게 용맹정진한다는 것을 느낄  수 없다. (한국의 왠만한 큰 절에선 스님들이 수행하는 선방 근처엔 접근금지와 함께 발자욱 소리조차 죽여야 하는 삼엄함이 있다.) 여기 동자승은 속세의 여느 아이들처럼 절 마당에서 웃고 떠들며 공을 차며 논다. 개도 뛰어 다닌다. 원숭이도 더러 나와 사람들이 던져주는 바나나를 받아 먹는다. 절 안에 가게도 있고 자리에 앉아서 음식이나 음료와 다과도 사먹을 수 있다. 여기 명절이면 사람들은 죽은 조상의 영혼을 달래고 복을 받기 위해 절에 음식과 많은 돈을 바친단다. (일반인도 그렇지만 부자들은 전국의 여러 유명사원에 그런 기부를 한단다.) 여기 절은 그냥 부처님을 모시고 사는 직업 스님들의 거처이고 속세인 망자의 영혼을 달래는 곳인 것같다. 그냥 이 나라 사람들의 풍습 정도로 보인다. 하여 현실에서 견성하고 득도한 역대 조사(祖師)의 얘기보다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오는 신비한 전설만 난무하는 것같다.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이다. 여기 지역 교육청 산하의 청소년센터엔 널찍한 정원과 텃밭이 있다. 직업상담소와 컴퓨터가 설치된 도서실같은  부속시설이 있다. 근무 시간은 오전 3시간(8~11시), 점심 3시간(11시~오후 2시), 오후 3시간(2시~5시)으로 6시간이다. (다른 관공서도 마찬가지다.) 몇 개월을 다녔는데 그럼에도 제 시간에 출퇴근을 하는 사람은 부소장 하나인 것같다. 그 외는 대체 무얼 하는지 근무 시간에 잘 안보이는 경우가 많다. 여기 초.중학교는 오전에 4시간 오후에 4시간 도합 8시간 수업한다. 학생과 교사는 2부제로 오전과 오후 중 반나절만 수업한다. 교사는 학교에서 반나절 수업을 하고 학교 밖에서 2~3시간 정도 과외수업을 하여 부족한 급여를 보충한단다. (학교급여 $350 + 과외수업 $200 정도) 무슨 사정인지 학교에서 교사가 수업에 지각이나 결근을 하는 경우도 흔하고 학생들이 자율학습을 하며 소란스런 학급을 더러  볼 수 있다. 글고 교사가 수업 중 앉아서 가르치는 모습이 흔히 보인다.

 

위가 이곳 중학교이고 아래가 청소년센터다

 

11월 지금은 방학인데 12월에 신학년이 시작된다. 내가 다니는 중학교의 교장이 얼마전 한국 코이카 주선으로 열흘 정도 한국의 ICT 교육현황을 둘러보고 와선 갑자기 5~9학년 모두에게 컴퓨터 수업을 실시하겠단다. 정식 교재도 없고 컴퓨터를 전공하거나 전문 교육을 받은 교사도 없이 봉사자인 나와 두 명의 젊은 영어교사에게 그 수업을 맡기겠단다. 기가 막혔지만 우리 셋이 모여 수업시간을 나누고 교안을 어찌 만들어야 할지 결론없는 상의를 했다. 나머지 두 현지 교사는 수업시간을 많이 맡게 되면 방과 후에 과외수업을 못하여 수입이 줄지 않을지 걱정하는 것으로 보였다. 헐... (속으론 욱.. 화가 치밀었다.)

 

여기 사람들과 약속을 하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시간개념이 희박하다. 몇 번 낭패를 당해보면 화가 치밀고 나중엔 피해의식이 생길 정도다. 몇 번을 미리 확인해야 하고 제 때 나타나지 않은 사람에게 연락을 해야 한다. 대체 뭘 하고 있었는지 늦게 나타난 그들은 항상 바쁘다고 한다. 글고 그들에게서 미안하단 소릴 들은 적이 없다. (일본 봉사단원들도 그런 피해의식을 말했다.) 다음달 수업계획을 하루 전날 혹은 당일 아침에 시간표를 짜서 내게 준다. 기다리는 동안 안절부절과 짜증이 교차한다. 몇 차례 요청을 해봤지만 면전에선 수긍해놓곤 돌아서면 또 그랬다.

 

전체 학사일정도 그렇다. 지난 코비19 땜에 아직 회복이 덜 되어 그렇다지만 작금 내가 겪고 있는 무계획성은 큰 스트레스다. 더러 학생이 다음 주 시험 일정을 알려줘서 내가 하는 컴퓨터 수업이 휴강인 걸 알게 될 때도 있다. 그래서 학사일정에 맞추어 개인적인 계획을 세울 수가 없어 그냥 그 때마다 적당히 여가를 즐길 수 밖에 없다.

 

여기 길거리에서 생각보다 그냥 걷는 사람은 드물다. 대체로 오토바이나 툭툭 혹은 차를 타고 다닌다. 자전거는 오히려 외국인이 더 많이 타는 것같다. 시골과 도시를 망라하고 거의 국민 1인 1오토바이 보유로 보일 정도다. 심지어 초등학생들도 상급생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등하교를 한다. 길거리에 아주 앳된 아이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씽씽 달리는 것이 흔하게 보인다.

 

이곳 중학교 교정과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정문 앞이다.

 

시골의 드넓은 들판에선 농기구를 가지고 맨몸으로 일하는 농부는 보기 드물다. 대게 트랙터나 경운기 글고 동력 운반기를 사용한다. 세계 최빈국 수준의 농부치곤 상당히 기계화된 영농이다. 울나라 1990년대보다 훨씬 진보한 농업 수준이다. 그럼에도 농부는 가난하다. 값비싼 공산품을 살 수 없고 자녀를 대도시에 유학시킬 형편은 안돼도 그들 스스로 먹고 사는 것에는 거의 문제가 없이 풍족해 보인다.

 

내가 한국에서 잔뜩 가져온 중고 학용품들을 그들에게 내밀지도 못할 정도다. 그들은 선진국으로부터 원조를 받은 것이든 스스로가 장만한 것이든 이미 풍부하기에 내가 가져온 것들은 별로 환영받지 못하고 폐품이 될 것같다. 연간 개인소득이 아직 2천불이 안되는 나라에서 1천불이 넘는 아이폰을 가진 사람들이 더러 있고 4만불이 넘는 도요타의 고급차인 렉서스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내 집 주인도 그렇다.) 지난 달에 옆집에 사는 한국 선교사가 한국엘 잠시 다녀올 때 경찰 공무원인 그집 주인이 한국에서 고급 인삼을 좀 사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했단다. 이런 모습을 보면 이 나라가 과연 선진국으로부터 원조를 받는 세계 최빈국인지 헷깔릴 때가 있다.

 

3. 환경에 지배받는 인간과 까르마.    여태 고위도 북반구에 위치한 한반도의 자연환경에서 살아온 우리는 한국적 조급함과 부지런함 그리고 철저한 준비성으로 오늘날에 이르렀다. 그런 우리가 처음 본 이 나라 사람들은 참으로 나태하고 무계획적이고 준비성이 부족했다. 하지만 이 나라의 후덥지근한 여름 한 철을 지내보니 비슷하게 무기력해지며 곧 이들과 별 다름없는 생활을 하며 익숙해지게 되었다. 그런 생활태도가 이곳의 자연에 순응하며 공존하는 모습으로 까지 비쳐졌다. 더 이상 물들면 한국에 귀국하여 재적응이 어렵겠다는 불안감이 들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여기 사람들을 이해하는 방편이 되었다.

 

제라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는 인류 문명의 흥망성쇠를 설명하며 동남아나 오세아니아의 섬들에선 사시사철 풍요로운 자연의 혜택으로 고위도 북반구의 혹독한 겨울을 준비하고 고도의 문명을 일으켜 자신을 지키기 위해 큰 집단을 형성하고 조직적인 강한 군대를 가질 필요를 못 느꼈기에 상대적으로 뒤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산너머 마을이나 지척의 섬들과도 왕래하며 교류를 하지 않아도 잘 살아왔기에 그렇게 많은 소수 종족이나 다양한 언어가 서구인이 침략하기 전까지 존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근세 이후 발전한 진화론과 현대의 진화 유전학은 같은 뿌리의 사피엔스에서도 주어진 자연환경에 적응하여 변형된 유전자를 설명한다. 어쩌면 간단히 '역지사지'(易地思之)로 말해 버리면 될 것이지만 이것은 생물학적 영역의 '종특'(種特)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것은 환경에 영향받은 유전자의 변형이고 본성화된 즉 '카르마'인  것이다. 그런 생물학적 차이에 "너희는 왜 그래?" 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우스꽝스런 지적이다.

 

나를 오토바이에 태워 여기 저길 구경시켜주는 여기 캄보디아 청년은 내년 3월에 다시 한국에 가서 5년간 외노자로 살아야 하는 것에 설렘과 두려움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물론 한국에서 큰 돈을 벌어 돌아와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풍족하게 사는 기대가 크지만 그들과는 확연히 다른 낯선 환경에서 몇 년간 자신의 본성을 억제하며 살아야 하는 것에 걱정도 크다. 엊그제 해거름 무렵 그는 메콩강 변의 너른 들판 한 가운데 오토바이를 세우고 두 팔을 벌려 바람을 맞으며 캄보디아에서 자유를 한껏 마셨다. "아....  좋아요." 차가 드문 길에선 질주를 하며 소리를 질렀다.

 

한국에 가기 전 캄보디아에서 마지막 자유를 만끽하는 Songty
언제나 느긋한 Songty
나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주변을 다닌 Songty

 

 

우리가 그들을 이해한다는 것은 아량이나 동정의 발로가 아니다. 바로 그들의 자연과 그 자연에서 비롯된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들도 우리를 이해하는 것에는 고위도 북반구 한반도의 자연과 그 속에서 길들여져 유전자화된 우리의 본성을 알아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두 걸음 다가가고 그들도 두 걸음 다가오는 것이다.

 

어느덧 여기도 선선한 바람이  분다. KW

 

 

 

PS. Songty는 불과 지난 주까지 내년 3월에 한국엘 간다고 해놓고 오늘 만나니 이번 달 12월 25일에 들어 간단다. 이런 식의 변덕에 아연할 뿐이다. 약속시간도 마찬가지다. 30분 일찍 와서 기다리기도 하고 30분 늦게 오기도 하고... 그의 한국생활이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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