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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또한 지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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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돌아댕기기)

캄보디아 뜨내기_31 (분류학)

by 홀쭉이 2024. 3. 27.

 

중학교 생물시간에 달달 외운 분류학 혹은 계통학의 '종.속.과.문.강.문.계'가 있었다. 그때는 일종의 가계도(family tree)처럼 원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는 족보 정도로 치부했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 야생화를 관찰하며 이름을 알려고 해도 식물도감에서는 분류학적으로 설명했다. 또한 새를 보고 정확한 이름과 습성을 알려고 조류도감을 뒤적거려도 그랬다. 나중엔 그런 기본적인 분류를 하지 못하면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닌 것처럼 여겨졌다.

 

 

얼마 전에 같이 새를 보러다니는 탐조가 친구에게 망신을 당한 적이 있다. 그때가 초여름이었다. 새로 이사간 울집 베란다에 날아든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맹금류인 '황조롱이'를 보고 반가워 사진을 찍어 보내 흥분하여 '조롱이'라고 말했다가 그 친구는 내게 큰 실망을 했는지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그의 시큰둥한 반응에 한동안 의아했다가 나중에 그걸 알고 웃으며 얘기하니 황조롱이는 '매과'의 맹금이며 한국에선 원래 철새였으나 요즘은 거의 사계절 볼 수 있는 흔한 텃새가 되었다고 한다. 반면 조롱이는 '수리과'의 맹금으로 한국에선 주로 여름에만 드물게 볼 수 있는 철새란다. 그 친구는 내게 이미 몇 번이나 설명했는데 말이다. 그렇게 서로 족보가 다른 놈을 이름과 생긴 모양이 비슷하다고 구분짓지 못하여 이름을 잘못 부르는 것은 큰 실수일 것이다.

 

 

18세기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폰 린네'(1707~1778)는 식물, 동물, 광물에서 이런 계통을 주장하여 분류학의 개창자가 되었다. 그의 분류학은 어쩌면 영국의 차알스 다윈(1809~1882) 보다 백년이나 앞서 '진화론'을 주장한 셈이다. 한 식물의 원류에서 후세에 어떤 환경이나 조건에 의해 변이 혹은 진화를 거쳐 다양한 종으로 분화되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 내용이 사실상 "The Origin of Species(종의 기원)"이다. 글고 그 책의 1/3 정도가 당시 영국의 목축 농가에서 여러 가축과 애완동물에서 관찰한 변이와 분화이기도 하다. (자연에서 변이종은 수 천년에 걸쳐 가끔 나오는데 사람이 기르는 가축이나 애완동물에선 짧은 기간에 많은 종이 생긴다. 인위적인 교배와 육종 때문이다.)

 

한편으로 린네의 분류학이 왜 진화론으로 인식되어 발전하지 못하였고 다윈의 '종의 기원'은 바로 진화론으로 인류 문명사의 엄청난 대발견과 폭풍의 눈이 되었는가는 당시 시대상황이 작용했을 것이다. 아마도 린네는 주로 식물학자로 알려져 인류의 기원 혹은 창조로 연결짓기 쉽지 않으니 그럴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에선 바로 인간과 유인원< 類人猿>으로 관련짓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신성로마제국으로 위세가 있었던 기독교에서 근본 교리를 부정하는 것은 중대한 신성모독이자 대역죄였다. 16세기 이태리의 기독교 수사로서 천문학자, 철학자, 수학자이며 시인이었던 '조르다노 부르노(1548~1600)'가 지동설(지구 자전설)을 주장하며 끝까지 과학적 신념을 포기하지 않아 종교재판으로 산 채로 화형을 당했고 이어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이며 천문학자였던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도 지동설을 주장했다가 종교재판에서 학문 활동금지와 가택연금으로 학자의 생명을 끊었던 시대였다. 그렇게 지동설이나 진화론은 기독교의 창조론에 근본적인 도전이자 항명으로 간주되었던 시기가 있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이태리의 갈릴레이가 죽은 해에 태어난 영국의 '아이작 뉴턴(1642~1726)'은 지구 자전은 너무 당연해서 굳이 재론의 여지가 없고 심지어 지구의 자전 속도를 수학적으로 계산했으며 태양을 주위로 원형운동이 아닌 타원형으로 공전한다고까지 수학적으로 설명했다. 우리가 '萬有引力'으로 아는 '重力의 법칙' 을 포함하여 우주 행성의 운동과 제반 현상에 대해 온통 수학 공식으로 설명한 논문인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일명 '프린키피아)'>를 발표했다. 그는 당시로선 너무 어렵고 경천지동할 내용이라 영어로 설명해도 이해하기 힘든데 굳이 로마어로 그 책을 발간(1687)했다. 왜 그랬을까. 나중에 뉴턴은 캠브리지 대학의 총장에 이어 영국 왕립학회 회장이 되어 했던 말은 그 논문을 영어로 발표하면 당시 과학자, 종교계와 정치 지도자들과 무모한 논쟁에 말려들어 그의 연구를 방해할까봐서였다고 했다. 한편으로 불과 몇 십년 전에 지동설을 주장했다가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화형과 연금을 당했던 이태리의 선배 과학자 '브루노'와 '갈릴레이'에 대한 항거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 배경에는 영국에서 헨리8세가 '수장령'을 선포하여(1534) 로마교황청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학문활동이 가능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중력의 법칙'도 '진화론'도 그런 학문적 자유에서 나온 산물이고 그로써 산업혁명과 함께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건설한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요즘 와서 놀라는 것은 당시 그렇게 분류했던 식물이나 동물에서 20세기 현대 유전학에서 DNA 분석으로 재해석하고 증명되는 것이다. 물론 정확한 DNA 분석과 대조로 예전의 분류를 일부 수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일치한다는 것이다. 육안으로 생긴 모양이나 습성 등을 자세히 관찰하여 분류했던 것이다.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다. 

 

몇 년 전에 TV 동물다큐에서 아프리카 초원이나 사막에 사는 '미어캣'을 보여 주었다. 사막에 굴을 파서 사는 미어캣은 집 밖으로 나와 두 다리로 일어서 귀를 쫑긋 세우고 망을 보는 듯한 모습이 흔해서 소심한 겁쟁이로 알고 있었는데 사자와 물러서지 않고 사납게 싸워 물리치는 모습을 보고 새삼 유전자의 무서움을 실감한 적이 있다. 글고 덩치 큰 사자가 악바리처럼 대드는 미어캣에 질려 속으로 저 놈도 우리와 동종? 하며 물러서는 모습이 새삼스러웠다.

 

 

그리고 캄보디아에서 즐겨 먹는 '망고'가 있다. 요즘 망고철이 되어 잘 익은 먹음직스런 망고가 시장의 과일가게나 길가 노점에 늘려 있다. 노랗게 잘 익은 몇 개를 사와서 냉장고에 넣어 놓고 깎아 먹었는데 좀 있다 온 몸이 근질거렸다. 입술이 부어 오르고 손가락 사이가 가려워 벅벅 긁어댔다. 그러다가 우연히 유튜브에서 망고 손질과 맛있게 먹는 방법에 대한 영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 망고는 '옻나무과'에 속하는 열대성 식물이라 옻나무와 같은 알러지 반응이 있으니 손질을 세심히 하고 먹는 부위를 잘 골라야 한다고 주의를 주었다. (껍질에도 속의 씨 주위의 섬유질에도 알러지를 유발하는 성분이 있으니 순전히 과육만 만지거나 먹으라고 한다.)

 

어릴 때 산에 다녀와 나도 몰래 옻나무를 건드려 옻이 올라 오래간 고생을 했던 기억이 있다. 이후로는 근처에도 안갔지만 어른이 되어 괜찮겠지 하고 이른 봄에 옻나무순 쌈밥을 먹었다가 온몸이 가렵고 사타구니에 계란만한 물집이 생겨 화들짝 놀라 병원에 달려갔던 적도 있었다. 와이프는 더 심해서 캄보디아 씨엠맆의 앙코르왓에 여행갔다가 호텔에서 망고 두어 쪽을 먹고 목이 부어 기도가 막혀 숨을 제대로 못 쉰 적이 있었고 그 고통스런 기억 때문에 이후론 망고를 비롯한 모든 열대과일은 쳐다 보지도 않는다.

 

 

아마도 10년 전 쯤인가 부산의 탐조가 친구가 새벽 기차를 타고 서울에 와서 나를 데리고 울집에서 멀지 않은 강서구의 한 아파트 정원으로 갔다. 그곳엔 겨울철새로 드물게 오는 "쇠흰턱딱새"가 있었다. 왜 그런 귀한 새가 하필이면 사람이 많이 사는 곳에 나타났는가 했는데 알고보니 겨울철 계곡에 물이 마르니 거기 아파트 정원에 있는 단풍나무의 꺾인 가지에서 물이 똑똑 흘려내려 그 새가 물을 먹으려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보기 드문 새라 해서 보긴 했지만 더 놀라운 발견은 단풍나무가 물이 많아 사람이 흔히 나무에 생채기를 내서 흐르는 수액을 받아 먹는 '고로쇠나무'와 같은 족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이후로는 산에 다니며 단풍나무 가지가 부러진 곳에 앉아 그 수액을 받아 먹는 새를 찾으려 눈을 부라리기도 했다. 그런 노력 덕택인지 얼마 후 서울 관악산 계곡 인근의 단풍나무에서 '큰유리새' 한 마리가 생채기가 난 나무 줄기에서 수액을 받아 먹는 모습을 보고 흥분한 적도 있다. 

 

 

결론적으로 린네의 분류학은 후세에 유전학과 진화론으로 발전했다. 참으로 대단한 자연 과학의 대발견이자 위대한 추론이다. 글고 다양한 종의 족보와 태생에 의한 무서운 잠재적 특성을 새삼 느낀다. 이런 발견이 재미있고 흥분된다. 한편 이미 환갑을 훌쩍 지나 진작 젊은 시절에 이런 학문에 재미를 붙여 매진할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KW

 

 

PS.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런 분류학 또는 계통학은 우리 삶 속에 깊이 들어와 있는 것같다. 가령 서로 의견이 잘 맞고 좋아하는 취향도 비슷할 때 우린 "우린 같은 과(family)인 것같아." 혹은 반대로 "너와는 크라쓰(class)가 다르지." 라고 한다.  'family(과)'와 'class(강)'는 분류학에서 중요한 동종의 유전자 혹은 습성을 공유하는 집단일 것이다. (위 분류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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