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도국 자원봉사자들은 충분히 실감할 것이다. 한국이 얼마나 천운을 잘 탔고 훌륭한 지도자들과 국민이 합심 노력하여 작금의 풍요와 선진국의 위상을 누리는지.
1960년대 중반까지도 작금 개도국이 몰려 있는 아프리카, 동남아, 중남미의 대부분 나라들보다 가난했고 가망이 없어 보였던 한국이 예전이나 지금도 별 큰 진전이 없는 그 나라들을 원조하는 현실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인류애를 바탕으로 전세계 평화와 균형성장을 추구하는 UN에서도 한국은 대단한 롤모델이다. "한국을 봐라. 너희들보다 못한 더 어려운 처지의 한국도 해낼 수 있지 않았느냐"고 한다. 지난 세기 제국에서 해방된 식민지 나라 중 거의 유일하게 성장하여 오늘날 선진국의 입지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냥 열심히 일해라는 조언이나 격려보다 한국이 해방 이후 걸어온 지난 공화정사를 되짚어 단계별로 구체화하여 설명한다. 첫 번째 교육혁명이고 두번째가 산업혁명이고, 세 번째가 정치혁명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가장 먼저 시행한 것이 교육제도 정비와 의무교육 도입으로 인재를 양성한 것이다. 사실상 그 첫 번째 수혜대상은 전후세대다. 그들의 부모세대까진 거의 무학에 가까웠지만 바로 다음 전후세대부터 전세계 유래가 드문 고등교육이 시작됐다. 한 마디로 Before & After라 할 것이다. (시행 30년만에 고등교육 이수자가 70%에 육박했다.)
이후 1970년대 중반부터 산업이 점점 다원화, 고도화 되며 여러 분야에서 많은 고등교육 이수자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1980년대부턴 성장하는 중견기업들 사이에선 우수 인재 유치를 위한 인재영입 열풍이 있을 정도였다. 대학교 캠퍼스에선 주로 주말이나 여름 방학에 그 기업들이 보낸 통근버스가 줄지어 대기하며 회사견학을 시켜주고 입사를 권유했다. 특정 인기학과에선 졸업 이전에 다수가 취업이 확정되어 2학기에는 강의실이 썰렁할 정도였다. 당시 학생시위로 파행적인 학사일정이 잦았지만 감옥을 다녀온 운동권조차 취업을 했다. (1979년 부마사태 때 시위에 가담했다 몇 개월 간 감방살이를 했던 내 선배나 형의 친구들도 모두 당시 재벌 대기업에 취업했다.)
그리고 30년간 장기 군사정권에 저항하며 종식시킨 이후 일련의 정치개혁을 이끈 정치혁명이다. 물론 지도자에 따라 개인이 느끼는 바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작금 한국민의 민주화 수준이나 지도자가 국민을 위하는 사명감이나 행정과 복지 정책은 대단히 높은 편이다. 그리고 그 정치혁명은 보다 오랜 시간을 두고 진전될 것같다.
인제사 한국의 입지가 전세계에 각인되기 시작한 만큼 세계인이 우릴 어찌 평가할 지가 중요하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 매몰되어 보지 못하는 객관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최근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역작 <총균쇠>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가 지난 인류사를 가장 효과적으로 설명했다면 그들은 작금 한국의 위상을 간과하진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화두는 인류의 역사에서 중세까지 미미했던 한 줌의 유럽인이 어찌 해서 근세 이후 지구의 문명을 주도하며 풍요를 누릴까였다. 그렇다면 그들이 지난 세기 중반까지 앞다투어 지배했던 식민국 중에서 해방된 불우한 한국이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입지로 성장했는가에 각별한 관심과 흥미를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의 코이카 포함 전세계 구호기관이 지원하는 개도국에선 작금 우리의 지난날 제일 먼저 시행한 '교육혁명'이 벌어지고 있다. 공부 잘하면 출세한다는 굳건한 믿음에서 공교육과 함께 사교육 열풍도 대단하다. 캄보디아 지방도시인 여기 깜퐁참에서 공립학교 외 국제학교 이름을 달고 있는 사립학원이 아주 많다. 원어민 교사로 온 외국인도 많다. 코이카나 타국의 구호기관도 대부분 교육봉사에 치중되어 있다.
어쩌면 예전 우리보다 훨씬 많은 기회가 있는 것같다. 당시 우리는 상위 5% 정도가 장학금이나 국비 지원 혹은 선진국 초청 해외유학을 할 수 있었다면 여기선 상위 20%만 되도 그 혜택을 누린다. 여기선 여러 선진국에서 온 봉사자도 많고 그들 나라가 주는 장학금이나 초청 해외유학도 무척 다양하고 많다. (여기서 만나는 다수의 교사나 상층 지식인들 대부분이 그런 혜택을 받았다.) 각 나라의 외교 일환이기도 하지만 선진국은 많아지고 개도국은 줄어드니 원조나 봉사도 경쟁시대다. 예전과 달리 무조건 퍼주기는 주고도 욕먹고 그들을 원조 의존형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여기 캄보디아도 그렇지만 많은 개도국에서 교육혁명으로 고등교육을 이수한 인재를 산업이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그 중 일부가 교사, 군인, 경찰, 일반 행정직 공무원이 되거나 외국기업에 취업한다. 아직 그들을 받아줄 토종기업이 변변찮다. 벌써 고등교육 실업자가 상당하다. 하여 한국같은 나라의 이름없는 지방 중소기업 공장에 그 나라의 최고 명문대학을 나온 엘리트가 취업한다.
이런 답답한 상황을 접하며 내 봉사활동의 한계를 절감한다. 또한 지난 날 한국은 어찌 그런 세월을 보냈고 기적적인 작금의 위상을 갖추게 되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그러면서 작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진영 간 극한 대결과 갈등에 또한 답답하기만 하다. 소위 진보라고 자처하는 '밴댕이 소갈딱지'와 보수라고 자처하는 '썩어빠진 기득권'의 진영 대결. 서로를 인정하지 않은 무소통. 이념도 비전도 없는 개싸움. 오로지 유불리만 있는 양 진영.
우리가 살아온 75년의 공화정사에 왈칵 가슴이 뜨거워진다. 여기서 내 봉사활동도 끝이 보인다. K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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