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여기 와서 길거리 풍경을 찍어서 한국의 가족한테 보냈더니 뒤에 보이는 잠옷(파자마) 입은 사람은 누구냐고 해서 웃었다.
주로 여자들이 평상시에 파자마를 입고 더러 시내를 다녔다. 수도 프놈펜에서만 그런가 했는데 나중에 지방인 깜퐁참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파자마가 유행하니 패션도 다양해졌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니 이웃 베트남에서도 그렇단다.
아마도 그들의 고유 복색은 아닐 것이다. 그렇담 뻔히 지난 세기 백년간 식민지배했던 프랑스의 영향이 아닐지. 파자마는 제법 형편이 좋은 지배층이 밤에 우아하게 입었을 것이고 피지배민이 보기에 호사스런 선망이었을 것이다.
몇 년 전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선 해가 내리쬐고 더운 날씨에도 일부 여자들이 고풍스런 유럽 스타일의 긴 주름치마와 레이스가 화려한 원피스를 입고 다녔다. 다소 의아했지만 나중에 거기 TV에서 예전 식민시절 드라마를 보니 거기에 나오는 유럽인과 그 농장에서 일하는 흑인하인들이 그런 복장을 하고 있었다.
지난 태평양전쟁에서 미군은 당시 도쿄를 비롯한 군수기지 도시에 대대적인 공중폭격을 했다. 실제 그 잇단 폭격으로 두 발의 원자탄보다 더 많은 희생자와 피해를 냈다. 오래전 읽은 대하다큐에선 주로 일본 여고생들이 미국의 거대한 폭격기(B29 등)가 햇빛에 반사된 은익을 반짝이며 지나갈 때 대피하지 않고 하늘을 쳐다보았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일본의 군용기보다 미군기가 월등하게 컸다. 특히 폭격기는 일본을 압도했다.)
글고 태평양전쟁이 끝나고 일본에서 군정시절 183cm의 거구인 '맥아더'는 실내에서도 모자와 썬글라쓰를 쓰고 파이프를 물고 다녔고 일왕(165cm)과 같이 왕실이나 청사에서 담소를 나눌 때도 맥아더는 쩍벌 자세이고 일왕은 무릎을 모으고 단정하게 앉아 그냥 거인과 난쟁이가 나란히 있는 모습이었다. 글고 키가 큰 맥아더가 성큼 성큼 걸어 가는데 약간 뒤에서 일왕이 종종 걸음으로 따라가는 모습도 보였다. (이 모든 것이 맥아더의 연출이었단다.) 암튼 많은 일본사람들이 패전국으로서 수모를 느꼈지만 많은 일본 여자들에겐 맥아더를 '푸른 눈의 쇼군'으로 부르며 인기 만땅이었단다. 당시 일본 여자들은 맥아더에게 수십만통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고 일부는 신격화하여 사당에 모시기도 했단다.
나는 이런 것에서도 <이기적 유전자>를 생각한다. K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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