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발견
2009.12.24(목)
매주 목요일 아침이면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쓰레기 분리수거를 한다. 재활용이 가능한 것과 폐기를 해야 하는 것으로 분리를 하는데 어찌됐거나 내가 버리기 아까운 것이 하나 있다.
투명 페트병
보통 생수병으로 사용되는데 내게 페트병은 너무 대단한 물건이다. 굳이 다른 집에서 버린 것을 줏어 사용하진 않더라도 우리집에서 사용한 것은 그냥 재사용하고 싶다. 그러다 보니 집에 페트병이 큰 것과 작은 것을 가리지 않고 많이 쌓여있어 가족과 작은 실랑이가 벌어진다.
우리가 학생시절 배웠던 구석기, 신석기시대부터 음식물을 담았던 용기로 토기가 있었다. (민무늬토기, 빗살무늬토기, 등등) 그리고 중세, 근세에 걸쳐 지금까지 토기를 구워서 좀 더 세련되게 만든 도자기가 있다. (고려청자, 이조백자, 분청사기, 막사발, 등등) 단순히 음식물을 담는 그릇을 넘어서 예술품으로 까지 승화되었다. 그러나 어쨌던 그 본질적인 존재의 목적은 그릇이다.
그런데 그 목적으로 보자면 가장 진화되고 효율적이며 대량생산과 공급이 가능한 것이 바로 페트병이다. 만약 조선시대에 아니 불과 50년 전에 지금과 같은 투명 페트병이 나왔다면 얼마나 값비싸며 귀한 대접을 받는 명기(名器)가 되었을지 한번 상상해보라. 구한말 고종황제가 투명페트병을 외국사신으로부터 선물받고 신기해하며 애지중지하여 측근에게만 몰래 보여주며 자랑했을 장면을 떠올려보라. 깨끗하고 투명하며 얇디 얇으며 가볍고 잘 깨지지도 않고 쉽게 뚜껑을 열고 닫을 수 있고 물도 새지도 않고… 아마 고종은 밤잠을 못 잤을 것이다. 아니 궁중 곳곳에 놓은 이조백자, 청자를 집어 던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길거리에서 발에 채이는 페트병, 등산객이 버린 등산로의 페트병, 쓰레기장에 산더미 같이 쌓인 페트병…
도대체 그 엄청난 문명의 이기(利器)가 고작 일회용이라니… 우린 지금 이런 시대에 살고 있다.
K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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