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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돌아댕기기)

2010년 남도의 봄

by 홀쭉이 2010. 3. 15.

2010년 남도의 봄

(김해, 하동, 구례, 남원, 곡성, 여수)

2010. 3. 13(토)

 

유난히도 춥고 긴 겨울.  

 

지구온난화, 특히 이상난동(異常暖冬)을 염려했던 우리는 또 한번 자연의 변화무쌍함에 보기좋게 한방 맞았다.  수십년만에 한강이 얼고 폭설이 내려 다소 불편하긴 했지만 자연은 그 모든 변화가 단순히 우리의 짐작, 습관 혹은 기대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의연하게 보여주었다.  한편으론 얼마나 기쁘고 통쾌한 사건인지...

 

그러니 다가오는 봄이 더욱 기다려질 밖에.  벌써 남도에는 봄의 전령사들이 연일 초대장을 보내왔다.  그들은 꽃이고 새싻이고, 바람이고, 새고, 단아한 산사(山寺)이고 그리고 친구였다.  겨울이 겨울답고 봄이 봄다울 수 있는 것이야말로 자연이 우리에게 영원한 신비이고 굳이 다른 말로는 '희망'이 아니겠는지.

 

설렘이 컸다.  부산으로 출발전 간단한 여장을 가방 하나에 정리하고도 친구들에게 줄 뭔가가 아쉬워 포도주를 이것 저것 만지작거리고 책을 뒤적이고 침대에 누워서도 금방 단잠에 들지 않았다.   그러다 새벽에는 세번씩이나 깨어 시계를 확인해야 했다.

 

1.

 

김해공항에 내리자 남도는 비에 촉촉히 젖어있었다.  봄비야말로 마른 대지에 얼마나 큰 축복이겠는지.  특히, 이맘때 발생하는 산불을 예방하는 효과로만도 고맙고 고마울 뿐이다.  (자연은 내 개인을 위한 바램만으로 즐겨서는 안되고 자연은 스스로의 뜻대로 변화하되 나는 그변화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될 뿐이다.)

 

기수형집 바로 밑에 '김해건설공고'가 있었다.  박정희정권의 산물이라할 그 학교는 건설의 시대를 지나 고즈넉히 늙어가고 있었다.  아직 건설중장비로 실습하고 전시하는 커다란 차고가 주차장 한쪽으로 있었지만 학사(學舍)로 들어가는 길 양쪽으로 고목이 된 매화가 일품이였다.  이른 아침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지만 벌써 찍사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혹시 매화향기를 맡고 동박새가 꿀을 빨기위해 날아든 '화조도(花鳥圖)를 담을 수 있지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을 것이다.  홍매화, 청매화...  늙고 거칠고 꼬부라진 가지 위로 꽃봉오리를 내밀어 봄을 재촉했다.  아직 활짝 피지 않아 진하진 않았지만 맑은 향기가 은은히 베어나왔다.   아쉬움을 남기고 떠나며 베인 잔향을 차안에서 느낄 수 있었다.

 

 

 

 

 

남해고속도로를 따라 하동으로 들어섰다.  섬진강 하구에서부터 물씬 느껴지는 매화향기는 성급한 기대였다.  봄은 아직 조금 더 기다리라 했다.  최근 몇일간 내린 비로 강물은 불어나 하얀 모래톱을 삼키고 있었다.  화개를 지나면서 한떼의 물떼까치가 강둑을 따라 저공비행을 했다.  차를 세워 몸매나 때깔이 선명한 놈들을 찍으려 했지만 멀리로 날아가 버렸다.  길가에서 오줌을 누는데 맑은 매화향기가 퍼져나왔다.  청매였다.  역시 사람도 그렇듯 젊은 것들은 싱싱한 몸뚱이 그자체로 향기가 진하다.  굳이 코를 갖다대지 않아도 온몸이 짜릿할 정도로 진하게 다가왔다.  차문을 열어 그곳 매화향기로 가득 채웠다.

 

 

 

 

 

 

 

강길을 따라 악양을 지나 피아골로 들어섰다.  작년 이맘때 만끽했던 연곡사의 매화를 보기 위해서였다.  굳이 다압의 매실농장을 강너머로 지나친 것은 그곳에서 북적대는 인파와 상업성을 피하여 단아한 산사의 꽃을 감상하기 위해서였다.  근데 산중 계곡에서 낮은 기온과 제한된 일조량으로 꽃은 아직 일렀다.  산수유와 매화가 세우중(細雨中)에 물방울을 머금고 봄기운을 드러냈다.  계곡을 가득 메운 매화향기는 없었지만 작년과 달리 상원이도 가세한 나들이라 연곡사를 음미할 소재는 다양했다.  천년이 넘은 국보의 부도탑과 귀부와 이수가 있는 공덕비, 계곡풍경,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바위들, 소나무숲...   

 

 

 

 

  

 

 

피아골을 나와 간단한 점심요기를 하고 구례 운조루를 향했다.  지난 2002년 봄 내가 네덜란드로 떠나기전 기수형, 상원이와 들렀던 곳이였다.  그때만 하더라도 많이 알려지지 않아 거의 폐가에 가까운 운조루의 본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관광지로 새로 꾸미느라 얼마나 망가졌을까 하는 불안속에서도 운조루는 낮게 깔린 구름속에 약간의 보수공사로 의연히 서 있었다.  입구에서 늙은 종부는 인근 산야에서 캐온 나물을 늘어놓고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몇주전 TV에도 방영된 '테마기행' 운조루편에도 등장한 종손과 차남도 보였다.  운조루의 주인은 구례의 너른 옥토를 소유한 만석군임에도 위세를 드러내지 않고 동네사람들과 함께하여 숱한 전란과 강탈을 피하여 오랜 세월을 버티고 있었다.  위압적이지 않은 솟을대문, 안채, 행랑채 그리고 나즈막한 굴뚝, 대가(大家)치고는 농기구를 보관하는 창고도 많았다.  집뒤로 옆으로 동네 이웃과도 골목을 두고 붙어있어 외롭지 않은 권문세가였다.  누마루 옆으로 산수유가 노란 꽃봉오리를 맺어있었다.  뒤로는 대숲이 창연했다.

 

 

 

 

 

 

 

운조루를 나와 화엄사로 들어서는 길은 잘 정돈된 단아한 맛이 있었다.  계곡은 지난 며칠간 내린 비와 겨우내 쌓인 눈이 녹아 물이 불어 장엄한 소리로 계곡을 울렸다.  십년전쯤 장인이 살아계실때 처가식구와 함께 들렀던 화엄사는 옴싹한 골짜기에 절집만 옹기 종기 모여 있었던 것 같았는데 지금 다시 온 화엄사는 정갈하면서도 웅장한 화엄의 도량이였다.  그래서 외국인에게 가장 한국을 대표하는 절로 알려져 있다는데 그래선지 외국인 선방도 있었고 마침 하산길에 외교관 번호판을 단 차량에서 나이 지긋한 벽안의 양인(洋人)이 내리는 것을 보기도 했다.  절 마당을 휘휘 돌아 석탑을 보고 각황전에 올라 국보라는 대단한 크기의 쌍사자 석등을 보고 뒤로 동백숲을 따라 계단을 올라가 대단한 크기의 사사자 석등도 보았다.  보슬비가 내리는 화엄사는 낮게 깔린 비구름이 지나면서 한폭의 동양화를 연출했다.  비오는 날 절맛은 바로 이거다.  저녁공양 종소리가 들렸다.  발걸음을 재촉하여 염체불구하고 산사의 절밥을 얻어먹었다.  꽤 좋은 한정식 못지않은 정갈하면서 담백한 절밥.  그것도 공짜로...  ㅎㅎㅎ

 

 

 

 

 

 

 

 

 

 

 

저녁을 먹고나오자 계곡이 어두워졌다.  영화 '아름다운 시절'의 배경이 된 곡성부근의 섬진강을 보기 위해 구례를 지나 섬진강길을 따라 올라갔다.  저녁도 먹었겠다 거기서 하루를 묵을 작정이였다.  달리는 차창으로 어슴푸레 보였지만 곡성으로 가는 섬진강은 더욱 물살도 빨라지고 강 가운데 바위가 군데 군데 드러나 보였다.  어두운 계곡길을 지나니 멀리 곡성의 불빛이 보였다.  곡성읍네는 간판들이 깔끔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관광객이 별로 많지 않은지 숙소가 마땅찮았다.  몇 바퀴를 돌며 헤매다 남원으로 갔다.  남원은 곡성에 비하면 큰 도시였다.  섬진강 지류를 따라 광한리를 지나 관광위락단지 뒤로 팔각정으로 올라가 남원야경을 내려다 보며 숙소위치를 가늠했다.  여기 저기를 둘러봐도 모두 마땅치 않아 결국 제일 은성해보이는 도심에서 숙소를 잡았다.  우선 여장을 풀고 일단 한숨을 돌리며 가져간 포도주를 꺼내 한잔씩 돌렸다.  낮선 도시에서 남자들 셋이 맹숭맹숭...  안되쥐이...  택시를 잡아타고 괜찮다는 술집을 찾아갔다.  혹, 춘향을 닮은 기생이라도 나올런지 기대를 하면서...  그런데 항상 그렇지만 춘향이는 씨가 말랐고 발랑까진 애들이 오늘은 어떤 봉을 잡아 주머니를 털어볼까 하는 쉴망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암튼 거기까지 갔으니 마시고 노래하고...  비틀거리며 숙소로 돌아가 쓰러져 잤다.  

 

2.

 

다음날은 다행히 비는 그쳐 있었다.  남원에 왔으니 광한루 옆에 즐비한 추어탕집중 하나에 들어가 아침을 떼웠다.  소화도 시킬겸 산책삼아 광한루에 들어갔다.  내가 마지막으로 가본 것이 아마 30년은 더 된것같다.  관광지로 잘 다듬은 광한루는 꽤 훌륭한 정원이였다.  그 정도 규모의 정원을 유지하자면 제법 세도있는 수령이 있었을 법 했다.  춘향과 이도령의 얘기는 그런 배경이 있어 가능했을 것이다.  예전 광한루 앞 섬진강 지류에는 바위가 중간 중간 있었고 바위사이로 옥수가 흘렀던 기억이 있었는데 축대를 쌓고 직강공사로 여느 도심의 강과 다름이 없어졌다.  빨리 남원을 빠져나왔다.

 

어제 어둠속에서 희미하게 본 곡성에서 구례에 이르는 섬진강을 보러갔다.  역시나 여태 못본 숨어있는 섬진강의 비경이 펼쳐졌다.  섬진강시인 김용택의 시집에서 본 것이지만 진안과 곡성 그리고 구례에 이르기까지는 그 이름이 '순자강'이란다.  굳이 설명이 필요없다.  순자강을 한참을 내려가는데 한무리 오리류의 철새가 보였다.  망원렌즈로 당겨보는데 여러 마리의 흰뺨검둥오리와 백로 속에서 하얗게 보이는 오리 한놈이 자맥질을 하고 있었다.  흰비오리였다.   나중에 사진으로 보니 하얀 숫놈 하나에 갈색의 암놈 세마리가 같이 있었다.

 

 

 

 

 

작년말에 여수 돌산도의 향일암이 불탔다는 소식에 안타까워 하며 거길 다음 여정으로 잡았다.  점심은 여수의 부두가에서 싱싱한 회를 한점 먹을까 했다.  상원이가 지인(知人)에게 연락하여 맛깔나는 서대회집을 소개받았다.  네비게이션에 입력하니 선창앞의 그집으로 안내했다.  보기엔 허름해도 인근에선 꽤 유명한 집인 모양이였다.  제법 붐볐지만 우리가 앉을 자리는 있었다.  서대회와 생막걸리가 그곳의 먹는 방식인 모양이였다.  보기에도 먹음직한 서대회무침과 생탁 그리고 갈치구이.  지금 생각해도 침이 고인다.  회도 먹고 나중에 회비빔밥으로 밥 한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거기 선창에서 돌산도로 들어가는 돌산대교가 보였다.  작고 예쁘장한 항구였다.   

 

 

 

 

동백섬의 동백이 얼마나 예쁘게 피어있을까 기대하며 동백섬으로 갔다.  바다바람이 찼다.  입구 방파제에선 뿔논병아리가 자맥질을 하고 있었다.  코끼리열차를 타고 들어가 자그만 섬을 둘러보았다.  고목이 된 동백이 숲을 이루고 새빨간 꽃을 피우고 있었다.  혹, 그속에 동박새가 보일까 두리번 거렸다.  소리는 들렸지만 새는 보이지 않았다.  시끄러운 직박구리만 숲을 휘저으며 동박새를 위협하여 쫒아낸 모양이였다.  동박새가 동백꽃의 꿀을 빤다하니 우리도 꽃을 따서 꿀을 빨아보았다.  제법 달콤한 꿀이 입속으로 들어왔다.  이넘들...  여태 저거들끼리만...

 

 

 

 

 

아직 사천공항에서 귀경 비행기 시간에 일러 동백섬을 나와 해안길을 따라갔다.  오르락 내리락 재미있는 드라이빙.  해안길을 따라가다 우리나라에서 하나 밖에 없다는 바위동굴식 터널을 지났다.  아무런 콘크리트 미장이나 치장도 없는 밋밋하지만 자연동굴 비슷한...   터널을 지나니 해수욕장 표시가 나오고 언덕위에 예쁘장한 카페가 보였다.  바람도 세고 날이 차 거기서 따뜻한 커피를 한잔할까 싶어 차를 세웠다.  창밖으로 저 멀리 남해섬이 보였다.  아래에는 뿔논병아리 두놈이 자맥질을 하며 부지런히 먹이활동을 하고 있었다.  거길 나와 가는 길에 사월에 진달래로 유명한 영취산을 지나갔다.  그 아래의 논들은 아직 경리정리가 안된 구불구불한 논들이 정겹게 펼쳐져 있었다.  그곳에 여름이나 가을에 펼쳐질 풍경이 궁금하다. 

 

어두워져가니 남해고속도로에 차를 올려 휑하니 달려 사천공항에 도착했다.  출발전 한시간.  아쉬워 거기 구내식당에서 저녁까지 먹었다.  친구들을 보내고 비행기를 타고 김포에 도착하니 친구들도 막 부산에 도착했단다.  이웬수를 담에 어떻게 갚을지.  그렇게 2010년 남도의 봄맞이는 마무리했다. 

 

그래도 인제 봄의 시작이니 철쭉이 피는 5월에 다시 한번 공작을 꾸미기로 하고...

 

KW

 

PS : 사진은 내것과 기수형, 상원이 것을 섞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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