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新) 사대주의
2010. 6.6(일)
지난 5월말. 부모님을 모시고 진주 인근을 다니다 함양 화림동계곡을 지나게 되었다. 그곳은 남강의 발원지이기도 한 경호강의 상류로서 별로 깊은 산중 계곡도 아니면서 넓고 부드러운 암반의 수려한 계곡과 물가의 정자가 연이어 있어 멋을 더 하는 곳이다.
거연정, 군자정, 동호정, 농월정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수량의 옥수와 우람한 암반으로 이루어진 계곡과 정자들. 옛 함양 선비들의 풍류를 엿볼수 있는 멋드러진 풍광이다.
하필이면 사월초팔이기도 해서인지 화창한 날씨에도 사람들이 드물었다. 거연정과 군자정은 거의 지척에 있어 길가에서 가까운 군자정으로 올라갔다. 송화가루가 누마루를 노랗게 덮고 술자리가 어지러히 펼쳐져 있었다. 마치 군자정이 자신의 앞마당 정자인것 처럼 드러눞고 술자리를 펼쳐 장사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군자정 (부모님)
군자정 천장 사방에 걸린 현판들
동호정 앞 화림동계곡의 너럭바위
수리중인 동호정과 화림동 계곡
개탄을 하며 차라리 서글퍼져 계곡으로 내려가 사진을 찍고 있는데 그래도 계절은 계곡을 푸르게 꽃은 화창하게 피어나 봄색을 완연히 드러냈다. 그곳에 버려진 군자정은 쓸쓸히 기울어가고 있었다.
계곡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니 동호정이 나왔다. 동호정은 수리를 위해서 지붕이 날아가고 앙상한 뼈대를 드러내고 포장을 뒤집어 쓰고 있었다. 낙심하여 헤매다 근처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마침 노랑할미새가 화장실에 갖혀 빠져나가질 못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투명유리창에 머리를 부딪히며 바깥으로 뛰쳐나가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동호정과 군자정을 포함한 그곳의 옛것들 그리고 우리의 인생사의 서글픈 단면을 보는 것같았다.
조금 더 내려와 농월정 옛터에 오니 더욱 그랬다. 몇년전 화재로 소실된 농월정은 아예 복원을 하지 않을 모양이였다. 옛터 아래 주춧돌 자리는 선명하고 선비들의 절개와 언약이 새겨진 글발로 가득한 물가의 암반들만 어지러웠다. 어설프게 짓느니 차라리 짓지 않는 것도 무언의 항의이자 여백의 아름다움이기도 할 것이다.
농월정 아래의 화림동 계곡
농월정 터 (화재로 전소되어 없어진 빈 터)
싱그런 여름의 초입무렵 신록은 짙푸르게 녹음지며 개울 가득 채운 반짝이는 옥수는 암반을 돌아 흘러내리는데 그곳의 옛정자들은 쓸쓸히 잊혀지고 있었다. 정자 속의 천장 사방에 가득 붙은 현판에 글을 남긴 여러 선비들, 문인들... 우리는 역사속의 그들을 사대사상에 젖은 기득권이라 불렀다. 그들은 그렇게 해서 이 나라와 정신을 지켰고 후손들에게 물려주었다.
남사 예담마을 (산청)
근데 지금 우리는... 큰 것에 종속되고 의지하려는 것은 아마 당시 보다 더 심할 것같다. 대기업에 포함되려고 하고 거래하고 싶어하고 보증을 받으려 하고... 더 큰 절로 만드려 절집을 늘리고 합병하고... 교회도 비대화하여 작은 교회를 흡수 통합하고 심지어 신도를 사고 팔고... 학교도 기업도 정부조직도 정당도 그렇다. 그런 연유로 백두대간에 속하지 않은 이름없는 산줄기가 애처롭다. 하여 좀 더 큰 것에 소속되지 않으면 불안하다.
보리밭 (황매산 아래 산청)
자신의 명분과 소신을 지키기 위해 바위에 글발을 새겨 다짐했던 조상들에게 고개 숙이며 부끄럽고 서글퍼 울쩍해지는 석양무렵이였다.
KW
'여행기(돌아댕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매물도 주남지 (0) | 2011.06.03 |
---|---|
똥개천(黃狗之川)을 아시나요? (0) | 2010.10.01 |
남산둘레길 걷기 (2) (0) | 2010.05.02 |
남산둘레길 걷기 (1) (0) | 2010.05.02 |
2010년 남도의 봄 (0) | 2010.03.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