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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셀러니(신변잡기)

배롱나무가 있는 풍경

by 홀쭉이 2010. 8. 24.

배롱나무가 있는 풍경

                                                                                                  2010.8.24(화)

 

내가 어릴 적에는 그냥 '백일홍(白日紅)'으로 알았다.

한여름에 피어난 꽃이 백일씩이나 간다고 해서 그렇게 지었단다.

그 연하고 보드라운 꽃잎이 한여름 뙤약볕과 장대비를 맞고도 백일씩이나 화려하게 장식을 한다는 것이

놀랍고 대견스러웠다. ('화무십일홍'이라 했는데 무려 백일이란다.)  

 

근데 그런 한자식 이름이 식상했는데 나중에 알게된 순우리말이 있었으니

바로 '배롱나무'다.

 

 

배롱나무.... 

아!!!  얼마나 정겹고 속살을 파고드는 이름인지...

굳이 왜라고 할 것도 없다.  바로 우리 고향 할배와 할매 냄새가 배어나지 않는지... 

 

 선암사 대웅전 앞의 배롱나무

 

이리 저리 굽어지고 휘어지고 허연 속살에 군데 군데 검버섯이 피어난 듯한 나무가지들.

어린나무도 애늙은이처럼 보인다.

정원수로 심어놓으면 불과 몇년 안에 고색창연한 멋을 연출하며 벼락출세한 졸부의

사치를 감추게 한다.  하여 늙으막에 전원주택을 지으면 심을 제 1호 나무이기도 하다.

 

내가 어릴적 진주 옥봉이란 곳에 살며 아버지가 묘목사업을 한답시고 심은 나무가

백일홍이였다.  그 가지를 꺽어 그냥 묘판에 심고 물만 잘 주면 크게 자라 한 2년만 키우면

묘목으로 팔 수 있는 비교적 손쉬운 나무였다.

 

근데 한여름 물이 귀한 언덕배기의 산밭에서는 아래서 물을 길어 묘목에 물을 주는 작업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였다.  원망스러웠다.  꽃도 보기 싫었다.

결국 묘목사업은 실패로 끝나 빚과 몸에 골병만 남기고 접게 되었다.

 

 

병산서원에서...

 

진주를 떠나 다른 곳으로 진학을 하고, 서울로 직장을 가고, 일로 해외 근무를 하게 되고...

한 삼심년이 훌쩍 지나 문득 고향길을 걷다가 다 쓰러져가는 열녀비각 옆으로 고색창연한

나무가지와 함께 붉게 핀 배롱나무를 보았다.

나는 고향을 실감했다.  왈칵 다가가 검버섯 핀 나무가지에 얼굴을 비비고 어루만지고 싶었다.

할 매 ! ! ! ! ! ! ! ! !. . . . . . . .  

 

                                                                                                                      KW

 

PS : 인터넷을 뒤져보니 글제목과 같은 '배롱나무가 있는 풍경'이라는 블로그 이름이 많았다.

이심전심이 아니겠는지.  우리네 심성에는 이런 것이 공통적으로 흐르고 있었다. 

바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아니겠는지. 

글고 외국에서도 배롱나무는 더러 가로수로 조경수로 제법 이용도가 높은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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