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그 또한 지나갈 것이다.
  • 새가 없는 세상은 인간도 없다.
  • 세상만사 균형이고 조화다.
탈고안될 전설

전설_5(큰 형)

by 홀쭉이 2011. 1. 21.

 

에피소드_5 (큰 형_1)

 

2011. 1. 17(월)

 

지난 70년대 후반은 정치.사회적으로도 혼란기였고 우리집의 가정형편은 최악으로 치닫을 때였다. 

 

장남으로서 큰 형은 초등시절부터 촉망받는 아들이였다.  공부를 잘 한 것은 물론 잡기에도 능해 이것 저것 만지고 놀기도 좋아했다.  해서 또래 친구들이나 동네 애들에게 대단한 인기가 있어 늘 우리집은 사람들로 붐볐다.  새총이나 활을 만들다 총을 만들어 새를 잡으로 다니기도 했고 나중엔 진짜 사냥총을 구해와 산을 쏘다니기도 했다.  나중엔 환등기를 만들어 정지영화를 보기도 하다 백열등이 과열되어 방을 태워먹기도 했다.  부모님이 장사로 집을 비운 사이 더러 여러가지 희안한 음식도 만들어 동생들에게 시식을 시켰다.  암튼 그런 형은 동생들에게 큰 바람막이이자 자랑이기도 했다.  하여 우리 동생들은 늘 큰 형이 노는 곳에 끼여 보려 기웃대기도 했다.  물론 심부름이나 했지만.

 

그러던 형은 중학교로 가서도 친구들과 잘 어울렸고 졸업반이 되어 자신의 소질을 살리려 공업고로 진학하겠다고 부모님께 얘기했다.  우등생에다 상장을 더러 받기도 하고 줄곧 학급반장을 맡아하니 부모님의 기대는 보통이 아니였다.  한데 느닷없이 공업고로 진학을 하겠다니...  물론 당시는 공업대국을 지향하는 군사정권의 특별 장려가 있었고 지역마다 공업특성화고가 있었다.  진주공고도 그중 하나였다.  부모님의 기대는 당연히 지역명문인 진주고로 진학하여 번듯한 대학을 진학하고 뭔가 권세를 누릴만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였다.  반면 큰 형은 자신의 소질을 살려 공업고로 진학하여 기술자로서 성공을 꿈꾸었다.

 

아무튼 몇 달간의 실랑이 끝에 형은 결국 부모님의 뜻을 따라 진주고에 응시하여 합격했다.   하지만 자신의 소질과 다른 인문계가 맘에 들지 않았는지 고교시절 내내 성적은 바닥을 기었고 급기야 대학진학을 실패했다.  안좋은 일은 겹쳐 생겼다.  대입재수를 하던중 형의 친한 친구였던 종민형이 형과 남강에서 멱을 감다 익사를 했다. 

 

그러다 얼마후 큰 형은 어느날 진주남강 하류에 임자없는 섬에서 농사를 짓겠다고 떠났다.  거기다 움막을 짓고 전기도 없는 그곳에서 한동안 원시인 같은 생활을 하며 농사를 지었다.  간혹 엄마와 우리는 주말에 그곳에 가서 일을 거들어 주기도 했다.

 

형은 그곳에서 밭을 일구고 강에서 콩과 상치, 쑥갓 등 야채를 심었다.  강에서 물을 길어와 키웠다.  워낙 장비도 부족하고 농사경험이 얕아서인지 한여름 땡볕에서 죽을 고생은 했지만 소출은 적었다. 

 

뜨거운 태양이 가릴 것없는 강가운데 사막같은 섬을 내리쬐는 어느 한여름이였다.  그리고 장마철이 왔다.  가볍게 시작한 비가 밤이 되자 장대비가 되고 강물은 불어났다.  우리는 집에서 형을 걱정했다.  나중엔 가족 모두 나서 형을 찾으러 갔다.  장대비가 내리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  벌써 강물은 불어 섬은 고립되었다.  희미하게 보이는 섬은 이미 불어난 강물에 잠겨 흔적이 아스라했다.  불길한 생각이 우리가족을 어지럽혔다. 졸이는 마음으로 옷을 걷어붙이고 강안으로 다가가며 형을 부르는데 저기 멀리서 시커먼 물체가 어른거렸다.  형이였다.  간단한 옷가지와 가재도구만을 챙겨 섬을 빠져 나오고 있었다.  불빛에 비춰진 형의 얼굴엔 어둠속에서 유난히도 반짝이는 눈빛이 흘러내리는 빗물과 함께 서글프게 드러났다.  강을 빠져나와 둑으로 올라가서 보니 무섭게 불어난 강물은 형의 한여름 고생의 터전을 완전히 삼키고 있었다. 

 

그렇게 큰형의 젊은 날의 고뇌와 몸부림도 헛수고로 끝이 났다.  그해 여름은 형과 우리가족에게 모질고 혹독한 계절이였다.

 

시련은 연속해서 닥쳐왔다.  20년 이상을 살던 옥봉을 떠나 생면부지의 도동으로 이사와 세들어 살았다.  다시 형은 대학입시를 위해 재수를 하던중 배앓이를 하다 갑자기 병원으로 실려가 급성담낭파열 진단을 받고 이튿날 바로 절제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수술에서 조금 회복하자 입대영장이 나왔다.  지역 향토사단 방위였지만 현역병 못지않은 혹독한 훈련과 내무생활이 있었다.

 

그이후 대학진학을 하고 졸업하고 고시공부를 위해 옥천사로 들어가고... 1차 합격, 2차 탈락을 거듭했다.  진주에서 태어나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형은 드디어 86년초 진주에서의 영욕을 뒤로 하고 지금의 양산으로 옮겼다.  우리 형제도 마찬가지였다.  하나 둘씩 장성하여 대학을 가고 군입대를 하고 취직을 하여 진주를 떠나자 하나씩 서광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뜨거웠던 여름의 고뇌와 좌절은 어느듯 추억이 되어 항상 우리 가족의 수난사를 일깨워 준다.

           

 

KW

'탈고안될 전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 5월 (큰 이모)  (0) 2011.06.01
전설_6 (큰 형2)  (0) 2011.01.21
전설_4 (작은 형)  (0) 2011.01.21
전설_3(엄마2)  (0) 2010.01.26
전설_2(엄마)  (0) 2010.01.0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