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불안하다
(일본 도호쿠대지진 이후 예측)
1.
“미국아 믿지 마라. 소련아 속지 마라. 일본이 일어난다.”
예전 우리가 어릴 때 할머니 할아버지가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다.
아마도 그분들이 살아 생전에 일제시대를 겪어서 일본에 대한 불신과 어쩌면 그 음흉함 속에서도 뭔가 일을 벌이는 무시 못할 잠재력에 대한 경계심으로 그랬을 것이다.
일본은 19세기말에 서양에 의해 문호가 개방되고 메이지유신과 함께 본격적인 근대화가 시작되었다. 아마 전세계 역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봉건중세에서 산업화와 함께 근세로 이동을 했고 또한 순식간에 현대로 넘어갔다. 서양의 산업혁명이 동진을 하여 그 끝쪽(극동)에 있는 일본에서 닿아 불과 50년 만에 다시 일본발 서진정책이 시작되었다. 그것이 태평양전쟁(1939~1945) 이다. 일본은 당시 서방열강들이 차지하고 있던 조선,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지아, 중국(일부), 만주, 인도지나반도(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버마, 라오스), 파키스탄, 인도를 차지하고 서방을 위협했다. 그러나 그렇게 기세 등등했던 일본이 미국에게 원자폭탄 두 방으로 무조건 항복을 하고 무릎을 꿇었다. 물론 전쟁중에도 일본의 산업시설은 미국의 폭격으로 초토화되었고 수백만 생산연령의 젊은이들의 목숨도 날아갔다.
그러나 전후 미군정과 함께 일본은 미국에게 비굴할 정도로 비위를 맞추며 미국시장을 야금야금 잠식하여 불과 30년도 안되어 미국사람들이 ‘Made in Japan’을 최고의 상품으로 받아들이게 했다. 그리고 지난 70년대 중반 이후부터 약 30년 동안이나 세계 제2위의 경제강국으로 굳건한 위치를 잡게 되었다.
그러니 우리 조상들이 말씀하신 “일본이 일어난다.”가 실감나지 않은지…
2.
지난 3월 11일(금) 오전에 도쿄에서 동남쪽의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강도 8.9(9.0으로 나중엔 수정함)의 지진이 일어났고 곧이어 덮친 쓰나미는 인근 해안지역의 도시와 작은 마을들은 초토화시켰다. 수몰과 함께 인명피해도 엄청났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도 지진으로 인한 원자로 균열과 쓰나미로 인한 침수로 일부 시설이 폭발하고 기능을 상실함에 따라 방사능이 유출되기 시작했다. 아무리 준비가 잘 되었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무시무시한 자연재해였다.
그런 아비규환에서도 일본은 침착했고 질서정연했다. 지구인 모두가 하나되어 인류애를 발휘하여 동정과 함께 일본인의 의연함에 경탄과 존경을 표시하였다. 그러면서 많은 경제학자들은 역대 통계치를 근거로 지진이나 태풍 같은 대규모 자연재해를 겪고 난 향후 일본경제가 비관적이라고 보기보다는 재해복구로 인한 경기부양효과 덕분에 오히려 성장 모멘텀을 맞이할 것이라는 분석과 예견을 내놓았다. 지난주 한국을 방문한 ‘오마하의 현인’ 이라 불리는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도 일본주식비중을 줄일 이유가 없다고 하며 일본의 재기를 강력하게 시사했다.
적어도 여태까지 일본은 그래왔던 것은 사실이다. 관동대지진 이후도 그랬고 니가타대지진,홋카이도대지진, 고베대지진 이후에도 그랬고 각종 대형 태풍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마다 일본은 놀라운 정신력으로 복구했고 사람들은 제자리를 잡아갔다. 일본경제도 그때마다 상승세로 돌아서 지진이나 화산폭발, 태풍 같은 자연재해가 일본경제를 흔들기 보다는 오히려 주기적인 자연재해가 일본경제에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는 가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까지…… (여기부터는 내주장이고 예견이다.)
이번 도호쿠대지진 이후 첫 일주일 정도까지는 예전 같은 일본의 저력이 다시 한번 먹혀들 것 같았다. 하지만 그날 이후 이삼일 간격으로 계속되는 진도 6.0 이상의 여진과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폭발과 방사능유출은 일본인의 인내심과 메이와쿠 정신(남에게 폐를 끼치는 행동을 삼가함) 점점 고갈시키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급기야 일본정부가 전전긍긍하며 뭔가 더 큰 재앙을 숨겨두고 있진 않을까 의심하는 사태로까지 번져 국민들을 더욱 불안하게 하고 있다. 그리하여 외국인은 물론 인근지역의 많은 일본인들이 아예 가까운 한국이나 외국으로 떠나고 있다.
일본인들은 여태까지 화산이나 지진 그리고 쓰나미 혹은 태풍 같은 자연의 무자비한 폭거도 그저 자연현상이거니 순종하듯 감래해왔는데 아무래도 이번 사태는 좀 다른 것같다. 예전과 달리 일본은 지난 90년대 중반 이후 장기간 경제침체를 겪어왔고 정치는 리더다운 리더없이 구심점을 잃고 배회했고 일본사회는 활력을 잃어갔다. 일본이 휘청거리는 동안 한국과 중국을 위시한 세계는 뜀박질을 쉬지 않았고 세계화는 진행되어 세계의 벽지를 모두 개방의 양지로 드러내놓았다.
더군다나 이번 도호쿠지진이 일본의 중공업밀집지역인 도쿄의 남동쪽 해안의 관동임해공업지역(나리타~도쿄~요코하마~오사카)을 강타했더라면 일본 경제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경제가 휘청거리게 될 정도일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쪽 일대는 내가 나리타공항에서 요코하마로 해안도로를 타고 갈 때 익히 보았던 세계 최고의 중공업지역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의 울산이나 포항 같은 도시를 해안으로 150km나 연결해 놓은 정도이다. 그리고 그 지역은 거의 절반 이상이 바다를 매립하거나 파일을 박아 바다 위에 떠있는 상태로 지어진 공업지역이다. 만약 이번 지진과 쓰나미가 거기를 강타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리고 다른 일본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상상을 해보았을 것이다.
아마도 일본사람들은 속으로 두려워 떨 것이다. 여태까지 겪어온 이상으로 공포심이 뼈에 사무쳤을 것이고 조용히 행동으로 드러날 것이다. 복구 의지도 예전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일본을 영영 떠나는 사람들이 많이 발생할 것이다. 교통과 통신 그리고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전세계가 일일 생활권으로 지구촌이 된 오늘날 아무리 한 지역의 토박이라 하지만 고향에 정착해야만 한다는 고집은 설득력이 없다. 마음먹기에 따라 다른 지방이나 외국으로 떠나버릴 수도 있다. (솔직히 본인도 그렇다.) 그리하여 인구감소와 고령인구로 인하여 침체 일로에 있는 일본경제를 더욱 괴롭혀 회복을 어렵게 만들 것이다. (복구도 주민들의 복구의지가 강해야만 활기를 뛰고 그 부수적인 효과도 발생한다. 복구의지가 부족한 지역민에게 아무리 많은 예산지원과 복구성금을 쏟아부어도 그 돈으로 다른 곳에 가서 살려 한다면 복구도 경제회복도 말짱 꽝이다.)
굳이 자극적인 표현을 피하여 나는 이번 지진으로 일본은 결정적인 쇠락의 길로 접어들 것으로 예견한다. 경제적으로나 국제적 위상으로나.
나는 개인적으로 일본이 빨리 복구하고 정상으로 돌아오기를 기원하면서 가족과 함께 복구성금도 내기도 했지만 내심 불안하다. 차라리 우리 조상들 말씀대로 “일본이 일어난다.” 라는 말이 다시 한번 먹혀 들더라도 말이다.
아…. 일본!!!
kw
ps : 오래전 써놓고 올리길 망설였다. 성급하게 예단하는가 싶어서였다.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예상은 확신으로 굳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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