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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또한 지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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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투신공양_2 (등신불)

by 홀쭉이 2009. 8. 4.

2. 등신불(等身佛)

 

고교시절 국어교과서에 나온 김동리의 단편소설이다.  당시는 입시위주의 주입식 수업이라 그랬던지 수준이 안되서 그랬던지 별 감흥이 없었다.  이미 속세를 떠나 산중에 있었던 주인공이 왜 다시 속세의 끊을 수 없는 인연에 매여 제 몸을 불사르는 소신공양(燒身供養)을 했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소설속 화자의 탈영과 단지(斷指)가 무슨 상관관계인지도 그랬다.  그러나 여태까지 세상을 사는 동안 무관심과 망각 속에서 최근 노무현의 죽음이 그 뜻을 환히 밝혀주었다. 

 

지난주 토요일에 Wife를 따라 동네 체육관에서 벌어진 전국 인터넷배드민턴동호회대회에 구경을 간 적이 있다.  Wife도 동네 클럽소속으로 열심히 운동을 하는데 일부 클럽회원과 함께 대회참가를 했다.  별 생각없이 따라간 대회였지만 의외의 발견과 깨달음이 있는 행사였다. 

 

대회는 오전 8시부터 몇몇의 진행자와 선수가 체육관에 나와서 상호 선수이름확인하고 인사하고 바로 게임에 들어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선수와 관중이 늘어나고 체육관은 대회열기로 달아올랐다.  15면의 코드를 가득 메워 게임이 벌어지고 관중석에는 출전한 64개 팀의 회원들이 응원하고 번잡하고 시끌벅쩍한 여느 대회나 다름없었다.  대회 열기가 한참 달아오를 무렵 오전 11시쯤 장내 방송으로 게임이 일시 정지되고 개회식이 있었다.  인터넷 동호회 회장이 나와서 자신을 소개하고 자원봉사자로 대회진행을 하는 소개했다.  모두들 자신이 속한 클럽을 간단히 소개하기도 했다.  개회식 진행자는 협찬사로부터 상품소개와 대회진행 관련 몇가지 멘트를 했다.  그리고 서울 모초등학교의 배드민턴팀에서 어린 선수들이 나와 시범경기를 잠시 보여주었다.  개회식은 그것으로 끝이였다.  그리고 다시 15면 전체에서 동시에 경기가 이어졌다.

 

주체측에서는 사전에 대회진행방식을 인터넷으로 홍보했고 선수나 관계자들은 별 혼란없이 대회를 치르고 있었다.  하여 사람들은 주체측으로부터 최소한의 지시와 방송멘트를 들으며 담백하게 게임을 하며 대회를 즐길 수 있었다.  나중에 점심시간에서도 미리 예정된 식당에서 차례차례로 순서를 지키니 번잡함이 없었고 주차장도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대회가 끝나고 시상식과 함께 폐회식도 그랬다.  Wife는 선전하여 모두 4게임을 치르며 은메달을 획득했다.  부상으로 배드민턴백을 받아왔다.  대회관계자들이 입은 유니폼 상의에는 자그만 글씨로 당당한 초보. 배려하는 고수라는 슬로건이 새겨져 있었다.  잔잔한 감동의 물결이 내게 전해졌다.

 

나도 동네의 배드민턴 클럽회원으로 가끔씩 나가서 운동을 하는데 실력이 늘지 않아 거의 초보로 멈춰있다.  클럽에는 선수 못지않은 고수들이 즐비하다 보니 초보로 끼어들어가 항상 눈치가 보이고 게임을 할 수 있을까 기웃거리게 된다.  그럴 때 고수가 한수를 가르쳐 주거나 게임에 끼워주기라도 하면 참으로 고맙고 기분 좋은 날이 된다.  그러면서도 고수들의 게임을 망쳐 놓치 않았나 하는 미안함이 남는다.  아무튼 클럽에서 초보는 고수들 눈치보는 것이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다.  클럽운영회의에서 회원들의 목소리도 그렇다.  아마 다른 모임에서도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지난주 인터넷동호인 전국배드민턴의 슬로건은 얼마나 나 같은 초보에게 얼마나 고맙고 반가운 발견인지?  당당한 초보, 배려하는 고수.”  그것이야 말로 사회의 강자가 약자를 배려하여 모두 잘 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순간 본부석 위로 대회 플랙카드 한 가운데 세상을 떠난지 십여일 남짓한 노무현이 환히 웃고 있는 얼굴이 그려졌다.  그가 그토록 이루려 했던 사람사는 세상이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그는 사람속에서 등신불로서 살아 있었다.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진 나는 벌떡 일어서 그에게 인사했다.  고맙다고 . . .  그리고 잘 가시라고.

 

KW

 

그림 (교과서에 나오는 오리지날 등신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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