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와 철쭉
2009.5.17
뜸들이기
흔히 보는 봄꽃은 야생보다는 사람이 심은 꽃나무다. 가장 흔한 벗꽃이나 개나리, 목련이 있고 유실수로서 매화도 있다. 요즘 정원수로 더러 보이는 산수유도 이름은 야생같지만 정작 산에 가면 비슷한 생강나무가 있을 뿐 산수유는 보기 쉽지 않다. 물론 간혹 심심산중에 화사하게 만개한 야생 벗꽃은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리고 꽃이나 잎이나 모두 목련 비슷한 하얀 산목련(함박꽃)도 산중에서 보는 반가운 진객(珍客)이다.
지리산 산동마을의 산수유 (퍼옴)
지리산 쌍계사 계곡 홍벗 (09.03)
지리산 연곡사 계곡의 봄 (09.03)
지리산 연곡사 (09.03) -- 매화향기가 폴폴 나는 것같다.
야생으로 봄꽃의 대명사는 진달래와 철쭉일 것이다.한반도 전역의 야산에 음지와 양지를 가리지 않고 가장 흔한 우리나라 토종의 봄꽃이다. 다른 나라들에서 흔치 않은 우리나라 대표토종이다.
한편 진달래와 철쭉은 꽃으로 피어나기 전까지 나무로는 구분이 어렵다. 둘 다 진달래과로 가는 굴곡진 관목의 가지와 둥글넓적한 잎으로 비슷한 편이다. 뻔히 알 것 같아도 더러 헷깔린다.
진달래
진달래는 산에서는 가장 빨리 피는 봄꽃이다. 삼월 중순 정도부터일 것이다. 이른봄 메마르고 가는 관목의 줄기에서 잎이 터지기도 전에 봉오리를 맺고 진한 연분홍 색조의 꽃을 피운다. 먼산엔 아직 잔설이 얼룩 얼룩 남아있고 꽃샘추위가 지난 겨울 다 쓰지 못한 눈보라나 진눈깨비로 위협을 해도 절기(節期)를 알리는 전령사로서 진달래는 의연하다. 그 얇고 보드라운 꽃잎은 단 한번의 무서리와 세찬 비에 짓무르고 말 것 같은 가냘픈 애처로움이 있다. 꽃은 제법 오랫동안 피고지기를 해서 다른 초목들이 새순을 내밀고 잎을 튀울 때까지 진분홍으로 산을 수놓는다. 그리고 그 진한 정염의 불꽃이 사그라진 까만 꽃술을 두고 잎은 피어난다. 상 사 화(相思花). 그렇게 꽃과 잎은 기약없는 해후와 이별을 반복한다.
경기도 운악산 진달래(09.03)
진달래에는 댕기 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물동이를 이고 가는 18세 옛처녀의 호리낭창한 허리, 간드러진 뒷태와 발그레한 홍조가 있다. 흔들리며 휘어질듯끊어질듯한 위태로움과 애처러움이 있다. 하지만 꽃에는 나비와 벌을 부르는 화사함과 유혹이 있다. 그 이른 계절에 어느 봄꽃보다도 진한 유혹으로 색정을 발산한다. 진달래꽃은 겨울의 기운을 그대로 가지고 메마른 가운데 붉은 정념을 태운다. 아직도 춥고 메마른 겨울의 뒤끝에서 단지 봄의 전령사로서 야무지게 임무에 충실하다.
철쭉
진달래꽃이 까맣게 타버리고 잎이 돋아나고 온 산이 제법 연초록으로 물들면 철쭉도 같이 잎을 내민다. 봄비를 한두번 맞고 나서 잎이 무성해지면 철쭉은 붉은 꽃봉오리를 내민다. 정작 꽃이 터지려면 진달래꽃이 완전히 사그라진 오월 중순이나 되어야 한다. 중부지방의 높은 산정상 부근에는 거의 오월말까지 기다려야 한다. 철쭉은 높은 산으로 갈수록 화색(花色)이 좋다. 하여 부지런한 사람이 철쭉을 만끽할 수 있다. 조바심이 나서 조금 이르면 봉오리만 보고 조금 늦으면 지난 밤 비에 뚝뚝 떨어진 꽃을 밟고 다녀야 한다. 꼭 봐야 한다면 날씨를 불문하고 우중산행(雨中山行)이라도 해야 한다. 지난 주말 축령산(886m)행이 그랬다. 가는 빗속에서도 정상부근의 철쭉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경기도 명지산 철쭉 (09.5)
철쭉은 봄꽃으로 절정이 아니겠는지. 여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철쭉은 지난 겨울의 추억을 뒤로 한 체 따스한 봄햇살과 이미 몇 번의 봄비로 무성하게 자란 잎의 흠모속에서 고고한 발색(發色)으로 화사한 꽃을 피운다. 진달래에 비하면 약하다할 연한 분홍으로 살짝한 볼 터치다. 진달래보다는 큰 봉오리와 꽃잎으로 글레머러스(Glamorous)하다. (…탤런트 윤은혜 같은… -_-) 철쭉꽃에는 꾸미지 않은 시골아낙의 수수함이 있다. 그 연하고 보드라운 꽃잎속에 진한 검붉은 점들이 보인다. 그리고 꽃밖으로 길게 나온 수술은 볼 사람없는 촌아낙네의 겨드랑이 털 같이 보인다. (윤은혜의 어긋난 앞니처럼 그러나 꾸밈없는)
경기도 축령산 철쭉 (09.05)
철쭉의 가지와 꽃에서는 시골아낙네의 정서가 있다.설레고 흥분된 짧은 신혼의 밤이 다하고 농번기의 아침이 밝아온다. 천성으로 부지런한 돌쇠서방은 언제 혼인을 치렀는가 싶게 주섬 주섬 옷을 챙겨입고 들일을 나간다. 새색씨는 뒷따라 머리에 수건을 싸메고 나가 마당을 싸리비로 깨끗이 쓸고 아침을 짓기 위해 아궁이에 불쏘시개를 모아 넣는다. 처녀시절 부지런함 그대로 억척의 아낙네가 되어간다. 우직한 돌쇠서방이 때론 들일을 마치고 대충 씻고 들어와 씩씩 거리며 달려들어도 별로 싫은 내색도 없이 받아주고 가을에는 떡두꺼비같은 아들을 쑥쑥 낳아준다. 듬성 듬성 불룩 솟아있는 철쭉군락을 보면 시골여염집 아낙의 무성한 그곳의 두덩이 연상될 만치 억세고 건강해 보인다.
마무리
진달래꽃이 지고 철쭉이 핀다. 진달래를 ‘참꽃’이라하고 철쭉을 ‘개꽃’이라 부르지만 둘 다 꽃으로의 화사함과 유혹이 있다. 우리가 연인에게 꽃을 선사하는 이유다. 온 산에 꽃이 피고 잎이 피어난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온다.
KW
'미셀러니(신변잡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음지의 변신 (0) | 2009.08.17 |
---|---|
매미의 여름 (0) | 2009.08.10 |
작은 기쁨 (0) | 2009.08.04 |
물구경 (0) | 2009.07.25 |
미래를 위한 값진 투자? (0) | 2009.07.2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