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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또한 지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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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고안될 전설

Over and Over (캠퍼스 추억)

by 홀쭉이 2017. 8. 15.

Over and Over

(캠퍼스 추억)

2017.8.15

1. 1학년 신입생


1981년 5월. 대학교 신입생 시절.

하필이면 영어로 말하며 모임을 하는 부산의 대학연합 동아리 PTC.

어쩌다가 미팅이나 있으면 나갔던 광복동에서 매주 정기모임을 하고 애프트도 하고

어려운 가정형편이나 억눌린 고교시절에서 대학생활은 나래를 활짝펴는 그런 열망의 나날.


나도 참가한 3P* Speech 대회가 끝나고

부산대 앞 무슨 클럽을 빌려 합동 애프트 행사를 했다.

각자 써클에서 대표주자들이 준비된 장기자랑을 하고

신입생들은 같은 색의 티셔츠에 흰 장갑을 끼고 단체허슬 춤을 추기도 했다.


그때 부산대 라이벌이라고 불렀던 Possible에서 누군가가 기타를 메고 나와서 모두에게

당시 유명했던 팝송 'Over and Over'을 가르쳐 주며 나중엔 같이 합창을 하기도 했다.

멜로디와 가사가 좋아 나중에 외워 즐겨 부르는 노래가 되었다.


https://youtu.be/aQkcOYPYyiE


그리고 파티 분위기가 이어져 모두 나와 디스코 춤을 추며 분위가 무르익고

Hello Hello Mr. Monkey

Wanted

Bad Case of Loving You

Touch by Touch

I'm Gonna Give My Heart


그리고 끈적한 Blues로

Woman in Love


그리고  지금까지도 내 기억에 선명한 한 가지 사건이 벌어졌다.


우리 써클 차례가 되어 권혜경 선배(78)가 팝송 'Paper Rose'를 당차게 불러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그런데 갑자기 Possible 출신의 ROTC 단복을 입은 4학년 학생이 무대로 성큼 올라와서는

마이커를 잡고 권 선배에게 공개 프로포즈를 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가졌던 캠퍼스 로망의 전형을 본 것같이 흥분된 순간. 

모두 놀라며 환호성이 터지고 숨죽인 몇 분이 지나자 당사자인 권 선배가 무대로 다시 나와

정중히 거절을 하여 그 사건은 일단락 되었고 이후 팝송 'Over and Over'

그 프로포즈 사건과 함께 내 기억 속에서 생생하다.


2. 4학년 가을


이후 휴학을 하고 군대를 갔다오고 복학을 하고 졸업을 앞둔 4학년

1988년 10월 경 아마도 초가을 중간고사 기간

 당시 영문과에서 특히 여학생들은 여름방학 중에 항공사 승무원 면접을 본다 하고

누군가는 교직이수를 하며 교생실습을 나간다 해서 절반 정도는 이미 취업이 확정되어 교실이 썰렁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숙사 친구 상원이와 영문과 여러 명과 오후부터 술을 많이 마셨다.

그레도 범생 축에 속했던 내가 과음을 했던지 몸을 가눌 수가 없어 쓰러지자

여러 명의 부축을 받으며 기숙사가 있는 학교로 돌아왔다.

그런 인사불성으로 기숙사로 들어 갈 수 없으니 도서관 잔디언덕에 눞혀놓고 정신을 차리도록

밤 늦도록 기다려도 깨어나지 않자 끝까지 남은 두 친구가 나를 부축하여 기숙사 방으로 데려갔다.

다행히 사감에게 들키지 않았으나 이미 늦은 밤이라 다시 나갈 수는 없었다.

다음날 머리가 아파 일어나 보니 상원이는 제 침대에 쓰러져 자고 있고

왠 여학생이 내 책상 의자에 앉아 웅크리고 자고 있지 않은가.

기억을 더듬어 보니 같이 술을 마셨고 부축을 했고 나중에 기숙사까지 따라온 것같았다.

벌써 날은 밝아 해는 중천이고 시간을 보니 9시

1교시 '영시' 중간고사가 코 앞이었다.

공부를 한 것도 없었지만 시험지에 이름이라도 써야 F학점을 면하겠다 싶어

세 명 모두 허겁지겁 인문관으로 달려갔다.

어제 마신 술이 덜 깨선지 여전히 어지럽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상태에서

깨끗한 8절지 앞뒷면은 사막과 같이 황량하고 넓었다.


한 동안 고민을 하다 'Over and Over'를 떠올리곤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맨 위에 "교수님 죄송합니다. 시험 준비를 못해서 외워둔 영시로 대신합니다."라고 적고

일필휘지로 앞면에 1, 2절로 채우고 뒷장에는 마지막 3절과 후렴구로 채웠다.

단 10분만에 답지를 제출하고 나와 버렸다.


당시 제법 깐깐했던 심인보 교수는 평소 수업시간에 공부를 하지 않아

답지에 정 쓸 것이 없으면 영시라도 하나 외워 쓰라고 했던 기억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무대책으로 답지를 써내기가 엄두도 나지 않았는데 정작 내가 그 짓을 하고 말았다.

이후 심 교수는 아무 말이 없없고 나중에 가슴 졸이며 받아든 성적표에는 B학점이 나와 있었다.


그렇게 'Over and Over'는 아직도 가사가 선명한 내 애창곡이 되어 있다.

KW(81)


*. 부산의 대학 연합써클인 Pine Tree Club, 부산대의 Possible 그리고 People to People이 모여 매년 영어웅변대회를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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