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일본에게 진정 바라는 것
2019.12.8
참선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의 화두(話頭)를 붙잡고 그야말로 끝장을 본 단다. 머리 속을 비우고 또 비워 그 화두 외 모든 것이 없는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그 본뜻을 깨닫는다고 한다. 용맹정진(勇猛精進) 이다. 그 과정에는 동정일여, 몽중일여, 숙면일여가 있을 것이다. 걷거나 서서도 꿈 속에서도 깊은 잠에 빠져서도 오직 그 생각만으로 한결같다는 뜻이다.
역사 속에서 일본과의 갈등에 우린 일본이 그들이 우리한테 저지른 만행을 반성하고 진심어린 사과를 바란다. 하지만 이런 표현은 어쩌면 그냥 표면적으로 하는 말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그런 제스쳐를 한들 우리의 앙금이 해소될 수 있을까.
물론 일본이 당시에 저지른 과오를 스스로 되짚어 근본적인 반성을 하기도 쉽지 않겠지만 우린 그렇다고 마냥 그들이 그리하도록 기다릴 수도 없다. 그렇다면 우리도 우리가 일본에게 바라는 바를 제대로 화두삼아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네 인생사에서 우린 많은 잘못을 저지르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상처를 준다. 더러 반성하고 사과도 한다. 그래서 해소되는 경우도 있지만 안되는 경우도 많다. 그 근본에서 정리가 안되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일본과의 여러 악연이 있었지만 가장 최근에 당한 일제의 침략과 강점이 우리가 받고 싶은 그들의 사과의 핵심이다. 하지만 우린 그런 선언적인 사과만으로 안되고 그에 상응하는 행동 즉 철저한 피해조사와 유족보상 등을 연이어 요구한다. 일본입장에선 그 끝을 가늠하기 힘들 수도 있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일본 점령지의 피해국에 대한 사죄와 배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때문이기도 하다.
근데 인제 국민개인소득이 3만불을 넘어 선진국의 상징인 G20, OECD, 30-50클럽 등 지도국 반열에 접어들어 그런 피해국으로서의 과거사에 연연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으로 일본에게 바라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의 자존심 회복이 아닐까? 지난 수 천년간 한민족으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온 우리가 이웃나라 일본에 병합되어 나라를 잃은 것이 아닐까? 중국에 느슨한 속국이었을지언정 우리의 나라 이름과 말과 글 그리고 풍습으로 살아왔는데 그걸 모두 빼앗기고 일본인으로 살아라고 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 답은 일본은 작금의 우리한테 한반도의 합병은 무리수였다는 후회스런 표현이다. 저렇게 독립적이고 불의에 항거하는 민족을 너무 쉽게 보고 무리하게 합병했다는 후회 혹은 반성 정도의 표현이면 될 것이다. “아!!! 저리도 맹렬한 민족을 함부로 대해서 식껍했어. 애초에 완전한 합병이 불가능한데 괜히 밀어 부쳤다가 후회막급이야.” 그런 표현은 굳이 정치권이 나서지 않아도 된다. 양측의 역사학자들이 나서서 교류하며 그런 식으로 정리를 해도 된다.
지금 우리가 얻으려 하는 것은 바로 <자존심>이다. 그간 짓밣히고 뭉개진 역사에서 일본을 통해 그 자존심을 채우고 싶은 것이다.
나도 인제 그간 내가 전전긍긍했던 화두 하나를 정리한 셈이다. KW
PS. 이런 자각과 함께 일본과의 갈등해소의 길을 구체적으로 찾아보면 좋겠다. 서로 한결 수월하게 털고 일어나 이웃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불편한 이웃은 불편을 넘어 위험하기 때문이다. 사이 좋은 이웃은 친척 이상이지만 사이 나쁜 이웃은 언제든 내 목숨을 앗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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