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막걸리마저?
김치와 한복 종주권에 이어...
이걸 중국의 탐욕이나 패권주의라기는 뭣하다.
나는 그걸 중국의 중화사상 혹은 폐쇄성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중국은 문명의 발상국답게 많은 발명품을 생산했고 세계 경제를 주름잡아 왔다.
서양의 산업혁명 이후 근세 이전까지.
청 말기인 250년 전까지도 전세계 총생산의 1/3 전성기엔 1/2 정도를 차지할 정도였다.
중국의 대표적 세계제패 상품은 비단, 차, 도자기 등이었다.
천 년 이상이나 독점에 가까운 시장지배력이었다.
그리 오래간 독점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통제였다.
함부로 製法이나 그 소스를 넘기지 않는 것.
우리 역사에서 중국에서 가져온 목화와 白松이 있다.
고려말 나의 25대조 문익점 할배가 중국에 사신으로 가서 붓두껑에 숨겨 밀수한 목화씨 몇 개.
고놈의 목화씨 몇 알에 목숨을 걸었다니 참... 서글프다.
글고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엔 조선시대에 중국에서 들여와 심은 백송이 무려 천연기념물 8호로 지정되있다.
듣기론 서울에 몇 그루가 있고 충남 예산의 추사 김정희의 고택에도 천연기념물 106호로 지정된 백송이 있고 지금은 고택 옆에 백송공원을 조성해 놓았다.
백송이야 중국 산동지방엔 흔한 나무다.
십 여년 전 북경에 출장가서 보니 가로수로 백송이 늘어서 있었다.
그게 머라고 중국이 단속을 심하게 하고 조선에선 없는 줄기가 하얀 소나무이니.
우리 조상님들 소나무 사랑은 또 얼마나 끔찍한지..
중국에서 하사받은 고놈을 애지중지. 무려 천연기념물로 지정까지나...
마찬가지로 사대에 쩔은 추사도 청나라에서 스승이 보낸 백송을 목숨만큼이나 아껴 아직도 보존하여 천연기념물이 되었다.
서양에선 산업혁명이 일어나 그간 중국의 간판 상품인 비단, 차, 도자기의 독점을 끝내버렸다.
비단은 양모와 면화 산업으로 대체제를 만들고,
차는 인도 등 더운 식민지에서 플랜테이션으로 대량생산과 무역으로 꼭 중국차 아니라도 좋고,
도자기는 제법을 규격화하여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영국에 이어 서유럽이 글고 나중엔 미국까지 뛰어들어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중국의 천 년 이상 독점체제를 끝내버렸다.
지독한 독점욕의 중국상인 비단장사 왕서방.
상대를 죽여 야금야금 먹어버려 독점체제를 만들어 떼돈을 버는 왕서방이다.
그러니 김치도 한복도 막걸리도 모두 중국에서 훔쳐간 것으로 보는 것이다.
문명의 利器나 文化는 좋은 것을 보고 따라하기에 서로 교류하며 섞이고 자꾸 진화하기에 그걸 종주권 내세우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오히려 자신의 폐쇄성과 언제나 종주국이란 우월감의 발로다.
대국이 아니라 떼국 혹은 떼놈 소릴 듣는 이유가 아니겠는지. KW
PS. 아래 기사에선 막걸리를 무형문화재로 등록하고 중국이 자신의 '미주'를 우리 막걸리의 원조라고 주장할 것을 염려한다.
https://news.v.daum.net/v/20210617094043049?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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