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회에 친구들이 하자면 무조건 좋다고 추진하는 말뚝 총무 친구가 있다.
얼마 전 모임에서 누군가 강원도 인제의 은대리 자작나무숲을 보러가자고 제안했고 다른 친구들도 좋다고 동의를 했다. 대충 분위기 상 추진하는 것으로 예상했는데 정작 그 성격 좋은 총무친구로부터 후속조치가 없었다.
한참 시간이 지나 참다 못해 전화를 해서 물었다.
그 친구는 뜸을 들이다 본인의 심정을 털어 놓았다.
평소 나무가 하얀 자작나무에 특별한 호감이 있었는데 우연히 북유럽 여행을 갔다가 한 시간을 달려도 끝나지 않은 뺵빽한 자작나무숲을 보고 처음엔 찬탄했다가 질려버릴 정도가 됐단다. 평지에 키도 훨씬 큰 은빛 자작나무가 헤아릴 수도 없는 광경을 보고 말문이 막히고 허탈해지더란다. 그래서 만약 인제 은대리의 숲에 친구들과 갔다가 자꾸 북유럽의 끝없는 자작나무 숲을 떠올리며 비교할 것같아 그냥 머뭇거리기만 했단다.
그런 경험이 또 있었단다.
그 친구는 매년 몽골에 의료봉사를 가는데 그곳에서 본 너무도 맑고 푸른 하늘을 보고 우리 애국가에도 나오는 울나라의 가을 하늘이 최고인 줄 알았다가 머리 속에서 뭔가 쨍그랑 깨지는 소리를 들었단다. 너무도 깊고 푸른 몽골의 하늘을 목이 아프도록 쳐다보며 눈물이 핑 돌더란다. 나중엔 왜 그리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았는지 글고 왜 그리 어린 시절 학교에서 배운 것을 의심없이 맹신했는지 화가 치밀더란다.
그 친구의 고백에 화답하듯 내 경험도 얘기했다.
울나라 사람들의 유별난 소나무 사랑. 길가다가 잘 생긴 소나무를 보고 차를 세우기도 하고 한참 감상도 한다. 곧게 쭉 뻗은 것, 꼬부라진 것 혹은 절벽에 위태로운 것이나... 왕이 정3품씩이나 벼슬을 내린 것도 있고 전국적으로 애지중지하는 소나무가 즐비하다. 심지어 소나무가 호적에 등재되어 주변 땅을 소유한 경우도 있다. (경북 예천 석송령) 왕명으로 금표를 세워 일반인이 접근도 못하게 한 소나무숲도 전국에 걸쳐 있다. 그래서 울나라 소나무가 특별하게 잘 생기고 많아 또한 애국가에도 나왔을 것으로 생각했다.
근데 나이들어 왠만한 나라는 모두 다녀봐도 소나무는 아주 흔한 나무였고 멋진 소나무가 천지였다. 북구의 울창한 소나무숲은 말할 필요도 없고 특히 지중해 연안의 붉은 육송(紅柗)은 압권이었다. 심지어 이태리 로마 시내 유적지(캄피톨리오 언덕)에 우뚝 서 있는 소나무도 찬탄을 자아낼 정도였다.
내가 그 얘길 했더니 그 친구는 통쾌하다는 듯 한참이나 껄껄 웃었다.
하하하... 백퍼 공감!!! 이걸로 우린 절친이 되었다. KW
PS. 로마의 시저는 말했다. "인간은 지한테 보이는 것만 볼 수 있을 뿐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