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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한국 전후세대의 분노

by 홀쭉이 2021. 12. 29.

한국 전후세대의 분노


                                                                  1.
재작년에 외무부 산하 국제봉사단체인 코이카에서 집체 교육을 받을 때였다. 봉사단원 기본자질 함양을 위한 기본 공통교육 4주에다 별도로 파견지역 별 교육 1~2주. 거기다 현지에 파견되어 현지어학 5주에다 적응훈련 2주의 집체교육이 있었다.

선발된 봉사단원은 20~30대가 다수이고 그외 소수의 30~50대 그리고 은퇴세대가 더러 있었다. 강사나 관리자 모두 젊은 세대가 주류이고 단원도 그렇다 보니 나이든 단원들은 소수로 쭈뼛쭈뼛한 경우가 많았고 같이 숙박을 하며 이수하는 과정이 다소 살얼음판이었다. 특히 조별로 서로 섞여 준비하고 발표하는 수업이 많았기에.

교육 중 중도 포기자 혹은 퇴출자가 더러 있었다. 대게 은퇴세대였다. 다수인 젊은 교육생 수준을 우선으로 하다보니 과정을 따라가는데도 어려움이 있었고 불만이 있었다. 무엇보다 젠더 관련 교육내용과 젊은이와 단체행동에서 불쾌한 것이 많았고 평소 습관이 밴 행동에서 극도의 조심을 하지 않으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같았다. 우선 남자와 노인을 잠재적인 성 비위자로 간주하여 조심시키는 분위기였다. (강의 도중 강사에게 항의하며 강의실을 박차고 나가는 나이든 교육생도 있었다.) 특히 은퇴세대가 젊은세대에 보이는 다정다감한 행동 자체가 약간 금기시 되는. 그러면서 나이 든 세대로서 인내와 포용을 은연 중 요구하는.


                                                                 2.
세대간의 갈등은 원시시대부터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쇠퇴하는 기성세대와 성장하는 젊은세대 간의 세대교체에 따른 필연적인 충돌이다. 야생동물도 그렇다. 하지만 작금 한국의 기성세대는 자신이 젊었을 때 부모세대와 겪었던 갈등의 양상이 조금 다르다. 30~50년 전 그들의 부모세대는 가난했고 교육수준이 낮았다. 하지만 당시 자식세대는 전후에 교육열풍으로 첫 고학력 세대가 되어 비약적인 고도성장을 이끌며 오늘날의 한국을 만들었다. 경제와 정치의 전반에서. 하지만 오늘날 젊은 세대는 그런 기성세대가 이룩한 풍요와 자유 속에서 성장한 고학력자들. 일견 기성 고학력자와 신진 고학력자의 갈등이다. 하여 그 양상도 과거와는 많이 다르다.

최근 급변하는 국제정세나 세태 글고 진보정권의 아젠다 속에서 기성세대는 절망하고 분노를 느끼는 것같다. 특히 한국의 진보정권은 젊은 세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정권창출을 하였기에 사회 분위기나 정책에서 그들을 우선시했다. 또한 직장이나 일반 사회생활에서도 <IT 강국>이란 위상과 함께 그들은 급속도로 젊은 세대에게 밀려나고 주도권을 내줘야 하는 처지로 몰리고 있다. (작금 우리 산업계 전반적으로 기존산업+ICT로의 융복합이 진행되고 그것으로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여 나가고 있다.) 이런 급진적인 사회변화에 작금의 진보가 그 주도세력이고 그들로부터 핍박받고 주류에서 밀려나 소외된다는 피해의식이 강하다. 또한 그들 편에 서 있는 젊은이들이 자신들을 존중해주고 경청하지 않은 것에 억장이 무너진다.


그러나 그런 자식세대를 키운 부모세대로서 간절히 주장하며 항변하고픈 것이 있다. 그들은 전후세대로 식민지 해방에서 이어진 전후의 폐허에서 오늘날의 한국을 건설한 주역으로서 말이다. 그것이 자랑이든 훈계든 꼭 해주고 싶은 스토리가 무척 많다. 하지만 그들을 <무조건적 꼰대세대>로 몰아가는 풍토에서 그 할 말을 못하는 답답함과 분노가 있다. 그것이 극우로 또한 태극기 부대로 나타난다. 작금 도무지 이해불가의 여론과 지지율 양상도 그것을 반영한다. 보수후보는 60대 이상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진보후보는 나머지 세대로부터 고른 지지를 받는다. 과거의 이념적인 것보단 급격한 사회변화에 따라 수세에 몰려 그들 과거 어려운 여건에서 일궈낸 성취에 대한 인정과 충고 정도의 할 말도 못하게 입을 막는 것에서 오는 분노이고 반발이다.


                                                                   3.
집이나 직장에서 오늘날 부모세대는 자식세대에 할 말이 많다. 전후에 태어나 격변의 세상을 살아오며 벌어진 숱한 사건과 사고들. 4.19혁명, 5.16군사쿠데타, 장기 군사독재, 박대통령 부부 암살, 급속한 경제성장, 12.12 군사반란과 신군부, 장기 민주화 투쟁, 외환위기와 IMF, 미국의 재정절벽 파문, 북한의 군사분계선 도발과 또한 미사일과 핵 도발, 전직 대통령 자살, 최근엔 촛불거사와 대통령 탄핵에 이은 전직 대통령 구속까지... 등등... 이런 엄청난 일들 속에 그들이 보고 느낀 바를... 글고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그 시절을 보다 생생하게 전하고파 애가 닳았다.

자식세대도 교과서를 통해 아니면 매체를 통해 보거나 배우지만 체감이 잘 안된다. 그들이 관광지에서 부모세대 체험이란 프로그램으로 코스프레를 해도 일시적인 흥미는 있을지언정 체감이 안된다. 그들은 이미 풍요로운 선진국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고 유수의 선진국의 젊은이와 비교해도 전혀 주눅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부모세대의 그런 간절함이 그들을 구차하게 보이고 꼰대로 만든다. 북한 문제도 그렇고 일본과의 관계도 그렇다. "그걸 뭐 자랑이라고... 그래서 어쩌라고요!" 참 할 말을 잃게 만든다. 그래서 억장이 무너지고 홧병에 걸리는 것이다.


자녀와 함께 TV에서 대학입시 관련 뉴스와 드라마를 같이 보며 예전 부모의 학창시절 입시제도나 공부했던 것을 얘기하면 1절은 들어주고 2절에는 바로 "됐어요. 충분히 알고 있어요!" 라는 대꾸가 터진다. 엄마가 고교시절 교련시간에 하얀 간호원 복장을 하고 전쟁시 다친 사람을 치료하고 간호했다는 얘기까진 들어준다. 거기다 아빠는 군복같은 교련복을 입고 총검술을 익히고 군사훈련을 했고 연병장이란 이름의 학교 운동장에서 열병같은 것을 했다는 얘길하면 그때부턴 부모세대의 상습적인 구라라고 생각한다. 억울해서 교련선생이 군복을 입은 중대장이었고 걸핏하면 목총으로 학생들의 엉덩이를 때리기도 했다는 얘길하면 깔깔거리며 비웃는다. 고교 입학이나 대학 입시에서 체력장이 있어서 모형 수류탄으로 멀리 던지기를 했다는 말을 하면 폭소가 터진다.

게다가 대학 캠퍼스에 사복차림의 대공담당 국정원 요원이 상주하여 운동권 학생들을 시찰하고 체포도 했다거나 게엄 때는 학교에 탱크가 들어왔고 학교 정문에서 독재타도를 외치는 데모가 매일 같이 격렬했고 데모진압을 위해 전투경찰에서 쏘아대는 최루탄 개스로 눈물 콧물을 흘렸다는 얘길하면 그런 건 드라마에나 나오는 거라며 냉담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아빠 구라가 쎄네요!"


그런 억하심정의 부모세대는 밖으로 나가 주변 산책길에서 모두 들어란 식으로 흘러간 옛노래를 크게 틀고 선술집에서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고성으로 "나 때는 말이야...."를 외친다. 누가 그들의 애처로운 항변을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줄 것인가. 그렇게만 한다면 여태 피땀 흘려 모은 재산을 선듯 내주는 선심도 쓸 수 있을건데 말이다.

상처받은 그들이다. 그들은 좌절하고 분노한다. 글고 그들의 억하심정은 묻지마식 극우 지지로 나타난다. 진보 집권세력은 반드시 그런 그들의 분노를 이해하고 경청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들의 몰락은 과거 정동영의 발언부터이고 지금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는 걸 똑바로 알고 처신해야 할 것이다. 이상과 이념적 소신을 실현하는 것이 정치가 아니고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고 통합하는 것이 정치임을 똑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 KW

PS. 작금 이해하기 힘든 보수후보의 강한 지지율과 60대의 지지성향을 이런 이유로 밖에 해석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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