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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영화·문학·음악·사진)

밀양(密陽)

by 홀쭉이 2009. 7. 26.

밀양(密陽)

07.09.26

후까시(들어가기)

지난 5월엔가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받았다길래 관심을 끈 영화였다.  노빠코드의 간판 나팔수격

으로 지난해까지 문화부장관을 지내고 나와 처음 만든 영화

였다. (이창동감독)  우리나라도 현직 예술인이 장관을 하고

그리고 내각에서 나오자 마자 영화를 만들고 해외영화제에서

수상까지 하는 나라가 되었다.  아무튼 예사롭지않은 인물이고

품성도 그렇다.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 그리고

‘밀양’…  내가 손꼽는 감독의 반열에 드는 훌륭한 예술인이다.

 


왜 하필 ‘밀양’이였을까?

밀양아리랑, 영남루, 아랑의 전설, 재약산과 사자평, 표충사,

얼음골....  밀양은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때묻지 않은 토속적

인 우리 마음의 고향이다.


밀양은 내가 자주 들리는 곳이다.  언양 가지산과 청도 운문산

을 갈 때 마다 ‘석남재’를 넘어 밀양을 들른다.  재약산과 천황

산에 걸쳐 우리나라 최대의 억새밭인 사자평이 있고 그 아래로

천하명찰인 ‘표충사’도 있다.(적어도 산수나 풍광을 포함한 입지

가 그렇다.)  밀양은 높은 산과 깊은 계곡 그리고 거기서 흘러나

오는 물이 풍부한 곳이다.  지금은 경부선 철도가 지나고 교통이

사통팔달이지만 그 이전에는 서쪽으로는 낙동강으로 그외 남,

동, 북으로는 모두 높은 산으로 막혀 고립무원의 땅이였을 것이

다.  남쪽으로 들어가는 길은 낙동강을 끼고 산허리를 굽이굽이

돌아 들어가고 동쪽으로는 거의 800m가 넘는 석남재를 넘어 들

어간다.  북쪽으로는 청도의 운문산과 창녕의 화왕산 줄기에 막

혀있다.


 



왜 하필 그런 곳을 선택했을까?  내가 좋아하는 그곳이 어떻게

비춰졌는지 궁금했다.  얼핏 나는 밀양사람들이 칸 영화제 수상

으로 영화의 주인공인 전도연과 조연인 송강호를 초대하여 성대

한 축하행사도 벌이고 ‘전도연의 거리’와 그들에게 명예시민증

수여를 하고 관광개발을 대대적으로 한다 해서 밀양의 명승지들

이 영화의 배경이 되지 않았을까 짐작을 했었다.  하지만 영화

내내 단 한번도 밀양시내와 강가 부근의 억새풀밭을 떠나 찍은

장면은 없었다.  밀양이 가진 특징적인 것을 보일만한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서울을 떠나 외지인 한적한 소읍일 뿐이다. (최근

밀양시민들이 보여준 법석은 코미디이자 영화의 스토리를 닮아

가는 오늘날의 밀양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실소를 했다.)


 


그러나 그것이 기막힌 패러독스를 깔고있다.  

남편의 외도와 죽음 그리고 약간 자폐증상이 있는 아이를 가진

33세의 엄마는 지치고 막막한 삶을 남편의 고향인 밀양에서 다시

시작하는데…  그곳은 고립무원으로 무공해의 정겹고 해맑은 시골

소읍이 아닌 학원폭력, 부동산투기, 납치살인 그리고 현대판 교회

가 설치는 곳이였다.  


영화의 밀양은 영어로 ‘The Secret Sunshine’ 이다.  이청준의 원작

을 안봐서 잘 모르겠지만 뭔가를 은유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을까

기대했다.  실제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전도연이 만신창이

가 되어 집에서 스스로 머리칼을 자르는 장면에서 마당 귀퉁이에

플라스틱 병과 콘크리트 바닥, 시멘트 블록 그리고 쇠막대기 사이의

 조그만 땅으로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쬔다.  그것이 희망을 보여주

고자 함인지 아니면 그런 외래문명에 포위당하여 고통받는 이땅의

현실을 보여주고자 함인지는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몫이다.  그러나

그것이 제목을 설명한다는 것은 좀 억지스럽다.  그리고 원래 지명

으로서 ‘밀양’은 햇살이 진한 따뜻한 양지로의 의미지만 오히려 영화

제목으로서 밀양은 뭔가 은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영화는 섬세하고도 철저하고 신랄한 사실주의만 보여준다.  

그것을 희망으로 해석하자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카

릿 오하라(비비안 리)가 자신이 속한 남군이 전쟁에 패하여 방대한

농장과 노예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 모두를 잃고서도 재기의 의지를

보여주는 장면과 비교할 수 있다.  신애(전도연)는 미용실에서 아들

유괴살인범의 딸이 미용사로 나와 자신의 머리칼을 만지는 것을 뿌리

치며 집으로 돌아와 스스로 자신의 머리칼을 자른다.  그것은 또 다시

신의 손바닥속에 놓인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고 인간의 의지를 보여

준다.  그리고 밀양의 햇살은 각종 플라스틱병과 콘크리트 바닥 사이로

드러난 마당의 귀퉁이 땅에 따뜻하게 비춘다.  이땅에 살고있는 우리의

의지와 희망이 동시에 보인다.  

전도연과 빛나는 조연들

20년전쯤에 임권택감독의 영화 ‘씨받이’에서 열연한 강수연이 칸영화제

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길래 다소 실망스러웠다.  내가 보기엔 씨받이

라는 영화는 동양 그리고 한국이라는 동방의 조그맣고 신비한 나라의

희안한 풍습 정도에 호기심을 보인 서양사람들이 기특하게 생각하여

준 상으로 여겨진다.  사실 강수연은 그 영화에 잘 안어울리는 케스팅

이였다.  그뒤 강수연의 후속작에서도 별로 강렬한 기억에 남는 작품이

없다.  그래서 별 기대도 안했는데 ‘밀양’에서의 전도연은 20년전 호기심

의 한국에서 예술적으로 진일보한 한국을 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

한다.  참으로 잘 어울리는 캐스팅이였고 훌륭한 연기였다.  극중 연약한

여인과 엄마에서 현실과 운명, 그리고 신에게 항거하는 강단있는 여자

로의 ‘신애’는 전도연에게 적격이였다.  영화제작후 인터뷰에서 처음에

전도연은 주인공의 과도한 역할과 강렬함이 부담스러워 망설였지만 촬영

중 모든 것이 솔직하고 가식없는 이창동 스타일에 몰입하여 자연스레

분출된 연기력이 발휘되었다고 했다.  


극중 송강호의 역할도 만만찮다.  그가 비중있는 남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뛰어난 조연이라서 그렇다.  밀양의 순수함이 단 하나에 일관성

있게 나타나는 것이 그를 통해서이다.  밀양시민은 오히려 송강호에게

그런 명예를 베풀어야 했다.  송강호는 영화 ‘넘버3’에서부터 조연이 훨씬

잘 어울리는 배우다.  아무튼 우리는 늙어 죽을때까지 함께할 든든한

예술인을 하나 더 가진 셈이다. (실제 영국이나 프랑스에서는 정치인이나

군인 혹은 기업인 보다는 뛰어난 예술인이 죽었을 때 사회장이 더 흔하고

애도를 하는 편이다.)


송강호가 이미 거물급 남우라면 극중 웅변학원 원장으로 나오는 ‘조영진’

은 이 영화로 새롭게 등장한 다크호스다.  웅변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

는 교습술에서부터 납치살인범 그리고 회개하여 구원받아 평온한 어린

양으로까지 또록또록하면서도 절제된 연기에 놀랄만하다.  그래서 극적인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아니나 다를까 예수님에 의지하여 용서를 베풀려던

신애는 폭발하고 만다.  온 몸을 바쳐 독실한 신자가 된 신애에게 갑자기

배신감과 분노를 폭발하게 하려면 그냥 말로서 능글 능글맞은 정도가 아

니고 조영진과 같은 완벽한 악의 변신과 분장술이 있어야 했다.  얼굴 생김

새와 표정과 말투 모두가 그런 분위기를 연출하기에 완벽했다.


이창동과 그의 영화

사실 이창동 감독에 대해 잘 아는 것이 없었다.  ‘노사모’의 앞잡이 정도로

어설픈 정치꾼 혹은 영화감독 정도로만 생각했다.  언론과 세간의 관심은

‘노사모’의 두목정도가 코드인사로 입각하게 되었다는 것만 떠들었는데

제법 장수한 문화부장관으로서 무슨 일을 했는지는 아무도 관심이 없고

나도 아는 바가 없다.  영화 ‘밀양’을 보고나서 그가 무슨 정책비젼을 제시

했고 어떻게 대한민국 문화계를 이끌어 왔는지 새삼 궁금해진다.  아직도

운영중인 영화 ‘밀양’의 홈페이지에서 사람들에게서 무슨 소리를 듣고자

함인지 긴 여운을 남기고 있다.  무덤덤한 표정과 소란스럽지 않은 말주변이

현실을 가식없이 표현해주는 방식이자 성격으로 보인다.  그는 타고난 사실

주의자이다.  그의 영화는 그만큼 섬세하고 치밀하고 진지하여 팽팽한 긴장

감이 감돈다.  일부러 재미를 가미할려고 하지도 않고 무리도 하지 않는다.  

그것이 이창동의 영화다.  따라서 씹을수록 맛있다.  영화가 끝나자 마자 한번

더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이 비밀스런 뭔가를 내포하고 있으니

테이프를 자꾸 돌리다 보면 또 다른 수수께끼를 풀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는 절대 Pessimistic한 인물은 아닐 것같다.  초록물고기와 오아시스

에서도 그랬지만 현실은 암울해도 포기와 좌절만을 표현하지 않았다.  그래서

단순한 현실고발이 아니라 은밀하게 희망의 메시지를 넣었다.


극중 현실

극중 신애에게 닥친 여러가지 운명과 현실에서 가장 큰 지배적 수탈자는 이땅의

기독교와 교회다.  서울을 떠나고 남편과 아들을 잃어버린 신애에게 마지막 귀착

지인 듯한 교회는 그녀의 실낱같은 희망마져도 산산이 부셔버린다.  슬픔이 분노

로 복수로 돌변한다.  그래서 그녀는 부흥회에서 김추자의 ‘거짓말이야’ 라는 노래

로 조롱하며 복수하고 또한 그녀를 위한 기도회에 돌을 던진다.  문득 예수가 저자

거리에서 돌을 맞고 있던 창녀 앞을 가로막고 ‘너희들중 죄없 자.  돌을 던져라.’ 라

고 한 말이 생각난다.  거꾸로 이땅의 기독교와 교회는 돌을 맞고 있다.  입으로는

예수를 말하지만 예수가 없는 교회 그러면서 직업화되고 상업화되어 이땅의 골속

골속을 스며들어 지배자가 된 교회권력에 대해 현실과 운명에 고난받는 한 여인이

거꾸로 던지는 돌팔매질이다.


마무리

재미있고 긴장감돌고 섬세하고 섬뜩하고 신랄하여 다시 곱씹고 싶은 영화다.  이런

발견을 하는 기쁨이란 흔치 않다.  그래서 영화 ‘밀양’은 내 머릿속 명작 리스트상에

수록이 되었다.


END.


PS : 어떤 것이든 자기식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나도 그렇고 다른 사람도 그럴 것이

라 인정한다.  강요만 않는다면 우리 속에 서로 다름이란 뭐 어쩌겠는가.  특히, 이런

영화는 여러 갈래로 해석이 가능하고 느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이런 감상의

글은 모두 어쩔 수 없는 내방식이고 취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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